한국교회는 1980년대 중반까지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선교를 사회적 환경변화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펼쳐, 교회의 공공성과 사회성을 유지해 왔다. 이것은 나름대로 한국교회 성장의 전도자원이기도 했다.그러나 전두환 정권과 노태우 정권, 그리고 김영삼 정권,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 이명박 정권 등을 거치면서, 가난하고 소외되고
한국교회연합을 비롯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그리고 교단 및 교회가 동성애 축제 반대집회를 대대적으로 벌였음에도, 동성애자들의 퀴어축제가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버젓이 진행됐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무너진 오늘 한국사회의 면모를 그대로 드러내는 자리였다. 보수적인 단체와 교단, 교회가 조직적으로 벌인 동성애 축제 반대집회는, 오히려 한국교회가 동성애 퀴어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이며, 나눔의 공동체이다. 그럼에도 오늘 한국교회 교인들은 목사와 교회를 동일시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한마디로 교회가 곧 목사이다. 그것은 대부분의 교인들이 교회에 발을 디디면서부터 시작된다. 입교교육을 비롯하여 초급성서교육, 중급반성서교육, 고급반성서교육, 제자교육, 셀 교육 등의 성장프로그램을 통해 교회를 이해시키고, 교육을 이수한
분단 70년, 6.25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 지 65년을 맞은 한국교회 모두는, 하나님의 영,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는 새로운 공동체를 향한 평화교회로 전환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그것은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영, 성령을 강조하며, 반통일적, 반교회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는 사실에서 극명해 진다. 사실 한국교회는 남북분단의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은 한마디로 이중적인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겉으로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지만, 안으로는 누구보다 세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겉과 속이 다르다. 그렇다. 일부 이단사냥꾼은 문제의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사례비를 두둑이 챙긴다. 그것도 이단 세미나 강사료라는 명목으로 챙기고 있다. 또한 통일을 이야기 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무거운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올라가셨다. 때문에 십자가는 고난의 상징이 되었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은 십자가를 보면서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졌다. 때문에 기독교를 고난의 종교, 생명의 종교, 사랑의 종교, 희망의 종교라고 말한다. 이렇게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한국교회는 더 이상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공동체가 아니다. 때문에 한국교회를 향해 ‘생명력을 잃어버린 죽은 교회’라고 말한다. 사실 한국교회는 민족의 고난에 동참하기 보다는 교회의 분열과 갈등을 일삼으며, ‘하나님의 거룩성’을 훼손하는 범죄를 저질렀다.이런 한국교회가 민족 앞에서, 교인들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다. 이것은 분
박재순 목사는 자신의 저서 (1988년, 도서출판 천지)에서, 성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책이라고 단정했다. 그것은 ‘구약성서’는 히브리 노예들의 해방과 시련을 주제로 해서 생겨났고, ‘신약성서’는 가난한 민중들이 주인이 되는 하나님나라 운동에 의해 생겨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구약성서나, 신약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은 역사적으로 가난
한국교회가 말하는 이단?사이비의 잣대는 어디에 두고 있는가(?) 한국교회 교인 모두는 이단 및 사이비로 혼란을 겪고 있다. 그것은 교인, 아니 국민들이 보기에 대부분의 교회가 성경과 다른 모습인데, 누가 누구를 이단이라고 정죄 할 수 있느냐(?)는데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분명 성경말씀에 벗어난 신앙생활과 교회공동체는 이단 아니면 사이비라는 것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따로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을 말함으로써 인간을 말하고, 인간을 말함으로써 하나님을 말해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과 더불어 사는 존재로 창조했다. 하나님 안에서 산다는 말은 이웃과 더불어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문제는 아담과 이브가 범죄를 저질렀듯이, 인간 모두는 탐욕에 길들여진 나머지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한국교회는 물질문명의 발달과 함께 크게 성장했다. 또 그 만큼 부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많은 것도 잃었다. 한국교회가 첫사랑, 아니 목회자들의 처녀목회당시의 초심을 잃으면서, 많은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그것은 모두 돈과 관련되어 있으며, 교회공동체가 해체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또한 그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닌, 돈이 많아서가 문제이다. 사실 한국기
목사들의 범죄행위가 교회를 넘어 사회로 확산되고 있다.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되는 목사의 범죄는 이제 일상화되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언론매체는 교회내부에서 일어나는 목사와 교인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 교회와 지역사회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에 대해 심층 보도했다. 이에 대해 한국교회는 특정종교에 대한 언론탄압으로 치부해 왔다.헌데 최근에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오늘 한국교회 안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가 ‘영성’, ‘성령’이다. 이 단어를 놓고, 보수, 진보적인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논쟁을 벌였다. 그것도 영국의 신학자 존 오웬의 ‘죄 죽이기’를 통해 한국교회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논지이다. 성경의 거룩함을 상실한 한국교회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외면하고, 부자들의 교회로 변질된 상황에서, 오웬의
부활의 아침, 대지를 적시는 비가 내렸다. 갈기갈기 찢겨진 한국교회를 통탄이라도 하듯이 하늘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언제쯤 화합과 일치로 하나되는 한국교회를 이룰 수 있을지. 부활의 아침 기쁨과 희망의 햇살보다 슬픔과 절망이 드리운 그늘이 커가는 한국교회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올해는 하나가 되어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릴까라는 기대를 처참하게 짓밟듯이
교회연합과 일치운동에 대해 한국교회 내에는 여전히 왜곡된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교회연합과 일치운동을 단순히 여러 단체들이 함께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몇몇 교단이 참여하는 부활절연합예배를 비롯한 부흥사들의 연합성회, 교단과 교회가 모여서 구성하는 연합단체, 단체가 모여서 협의회를 만드는 것을 연합운동의 전부인 양 착각하고 있다. 따라서 연합과
한국교회도 크게 성장했으며, 성숙해졌다. 한국교회가 성장한 만큼 책임감도 무겁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서양의 지배이데올로기적인 신학에 매몰돼, 지구촌 곳곳에서 억압당하는 자, 굶어 죽어가는 자, 전쟁으로 희생당하는 자들의 신음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세계 곳곳에서 인간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IS 등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단체들에 의한 외국인 피랍 및 살해 등으로 이슬람지역의 선교와 구호활동에 빨간불이 켜진 가운데,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한 대테러 국제공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IS 등 이슬람 극단주의의 테러에 대해 종교를 넘어 국민 모두가 우려하는 것은 물론, 전 세계가 경계령을 내린 상태이다. 최근 몇 년간 이슬람 국가(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이라 했다. 말 그대로 오이 밭에서나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신발을 고쳐 신거나, 관을 고쳐 쓰려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남에게 괜한 의심을 살 행동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온갖 유혹이 판을 치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교훈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한국교회연합기관만은 교훈
2015년은 광복 70년, 분단 70년, 한국선교 130년을 맞는 해이다. 이 역사 속에서 이 땅의 어머니들은 역사의 중심, 민족의 중심, 가족의 중심에서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아리랑고개를 넘나들며, 피압박민족, 가난하고 천박한 민족에게 희망을 주었다.그렇다 보니 이 땅의 어머니들은 민족과 역사, 그리고 가족의 중심에서 희생만을 강요당하며, 고난의 십자가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는 한국개신교가 이단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에 대해 이단들의 반격도 시작됐다. S단체는 연일 개신교의 성지인 종로5가 한국기독교연합회관 앞에서 연일 시위를 벌이며, 한국개신교 이단감별사들을 비난하는 유인물을 배포하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을 이단으로 규정한 인사들을 테러 또는 교회로 찾아가 예배를 방해하는 등 한국개신교를 혼란에 빠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