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의 훈장인 ‘욱일장’은 나라를 통째로 일본에 받친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5적이 영광스럽게 받은 훈장이다. 대부분의 친일파들도 이 훈장을 받아 가슴에 달고 다녔다. 문제는 지금도 우리나라의 일부 외교관과 정치인, 경제인들이 이 훈장을 자랑스럽게 받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민족의식도, 배알이도 없는 인사들이다. 과거 피압박민족의 고통을 잃어버리지 않
아기 예수가 탄생한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 거리에는 경쾌한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축하의 카드를 교환한다. 성탄절은 기쁘고 유쾌한 세계적인 명절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아기 예수의 탄생은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 땅에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평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기 예수의 탄생의 의미는 희석되고, 술과 환락 속
성탄의 계절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 왔다.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상흔에 물든 나머지 성탄절이 인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초림의 의미는 퇴색되고, 그저 역사 속 위대한 성인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 쯤으로 여기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마저도 성탄절을 가족과 연인들 사이에 선물을 주고받고,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축제일
기독교의 세계화를 주장하던 사람들은 적 공산주의가 붕괴되면 세상은 진정한 평화가 온다고 믿었다. 그러나 기독교와 맘몬의 결합으로 낳은 오늘날의 세계화가 정말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가 주고 있는가.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했는가. 산업자본에서 금융자본으로 변신한 오늘날의 자본은 노동자의 절반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었고,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버렸다.
1917년은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500년이 되는 해 였다. 지난 1년 동안 한국교회는 중세교회보다도 타락한 우리의 변화와 개혁을 외쳤다. 그럼에도 한국교회의 변화와 개혁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성서에서 이탈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성서로 복귀하지 못하고, 예수님께서 그렇게도 거부하던 맘몬과 바벨에 갇
몇 년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한국교회 신뢰도를 조사한 일이 있다. 조사결과, 교인 중 50%이상이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대답해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오늘 한국교회가 130년의 역사 속에서 최대 위기에 놓였다는 것을 반증한다. 예수 그리스도인의 지체인 교회는 하나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교회공동체를 형제자매라고 부른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는 각
오늘 한국교회는 목회자들의 무질서로 인해 교인들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 혼란과 혼동을 겪고 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예수님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나라운동을 펼치지 못한 결과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성서로 돌아가 하나님의 역사와 예수님의 하나님나라운동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우리는 항상 가난과 질병, 그리고 전쟁과 기아로 인해 고
사람이 법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법이 사람을 위해서 있다. 예수님도 안식일법과 정결법을 말하면서,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다고 했다. 그런데 정치인이나, 법조인, 종교인 등등은 법을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악용해 사람들의 인권을 짓밟는 일에 앞장서 왔고, 악용되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상고법원을 위
선교는 인간구원을 목적으로 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지구상의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모든 사람은 한 신(하나님)을 믿는다. 그것은 이단으로 규정된 교회들도, 잘난 교단의 교인들도 같은 신앙고백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래서 같은 신앙고백을 하고, 같은 주기도문을 외우며, 같은 성경과 찬송가를 부르면서 한국교회가 분열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리고
남북한 민족 모두는 전쟁을 거부한다. 전쟁은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남북한 민족 모두가 공멸하는 것이다. 그래서 남북한 정상들이 판문점에서 만나 한반도의 비핵화와 한민족의 화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노력한다는 내용의 ‘판문점선언문’을 발표했다고 본다. 그러나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남북한 민족이 스스로 결정
광복 73주년을 맞았다. 암흑 같은 일본제국주의의 신민지 지배 아래서 한민족이 해방된 것이다. 그런데 해방 73년을 맞은 대한민국은, 민족해방을 만양 즐거워 할 일만은 아니다. 일본은 제2차 대전에서 패망했지만. 한민족을 위협하는 새로운 세력이 한반도에 몰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잊었다. 그래서 8.15 민족해방을 미완의 해방이라고 말한다. 일본의 패권주의 부
사랑아! 너는 평화!읽을 줄로만 알았던 사랑 하나가옷을 입었네사랑 하나가 빗줄기 되어초목 적시네사랑하나가 반달이 되어 사랑 하나가 파란별빛이 되어너에게 그리고 나에게가까이 다가오면 그 무엇이 된다푸른밤 고이맺은 이슬같은 보람보밴듯 감추었다 내어드리마너를 위하여 내 마음에 지피어서솟구쳐오는 그 이름아! 너는 평화!사랑하나가 산새들 나래짓만들고사랑하나가 이슬머
법은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법이 몇 사람의 기득권자와 권력자를 위해서 악용된다면, 그것은 법의 보편적 가치를 잃어버린 것과 다르지 않다.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다”고 선언했다. 그렇다 법은 사람을 위해서 있다. 그런데 사람을 위한 법이 일부 권력자와 기득권자를 위한 법이 되어, 사람을 강제하는데 악용되고 있다. 독재국가들의 법은 소수를
최근 경찰은 여고생 한명을 산과 자취방 노래방 등에서 집단폭행한 중고생 10여명을 붙잡아 조사중이다. 피해자 가족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피해 사실을 올리고 엄중한 처벌을 요구했다. 서울도봉 경찰서는 지난달 26일부터 2일간 고등학교 2학년 A양(17)을 야산과 피의자 집 등으로 끌고 다니며 집단폭행과 성폭행을 한 혐의로 (공동폭행 및 강제추행) 중학교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 야훼신은 고정화된 군주체제를 거부하고, 살맛나는 새로운 나라의 활력소가 되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군주국으로 강제된 것과 때를 같이하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파라오의 압제 밑에서 해방되어 오랫동안 평등사회를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이러한 군주에 대한 저항정신과 신앙심은 십계명에 그대로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전역에 평화의 바람이 힘차게 불고 있다. 서로를 향해 총칼을 겨누었던 동족상잔의 비극이 끝이 나는 것이 아닐까라는 기대감과 함께, 판문점 선언과 북미 공동선언문이 종잇장에 불과한 것인 아닐까라는 우려가 동시에 몰려온다. 어찌됐든 남북 평화 분위기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어 이 땅에 평화를 갈
한반도에 평화의 훈풍이 불어오고 있다. 이 평화는 남북한 민족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 의해서 결정되고, 결정되어 왔다. 대한민국 국민과 세계민족의 시선이 북미 정상회담에 집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남북한민족은 민족의 문제, 한반도의 문제에 대해 우리 땅에서, 아니 우리민족끼리 결정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주변 강대국들에 의
요즘같이 통신이 발달한 때에 편지를 받아 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혹 편지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 편지가 고대하던 사람으로 부터 온 것이라면 기쁨은 그 배가 되리라고 본다. . 어느 주말 부부의 이야기이다. 남편은 지방에서 근무하고 부인은 세 아이와 함께 서울에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부인은 가족들의 근황을 적은편지 한통을 남편에게 썼다.그리고 그
오늘 한국교회의 십자가는 없는 곳이 없다. 큰 도시는 교회당이 구멍가게처럼 많아졌다. 거대하고 화려한 교회당이 경쟁적으로 세워지고 있다. 하지만 교회에 대한 신용과 기대는 과거와 갖지가 않다. 겉은 요란한데 속은 비어 있다. 또 교회가 있어야 할 곳에 교회를 세우지를 못했다. 여기에다 맘몬과 바벨을 쫓던 교회들이, 전도의 문이 막혀 교회의 문을 닫고 있다.
하얀 모시적삼을 걸치고 산 중턱에서 꾸물꾸물 무언가 채취하는 老 牧師님의 모습을 보면서 오다가다 동구 밖에도, 집 앞에도 지천으로 널려있는 나물을 두고서 머∼얼리 산 중턱까지 올라 나물캐는 老 牧師님을 보고서 궁시렁 거리는 촌노들의 이야기 인즉. 마을 앞 교회 老 목사님께서 집 앞에 있는 나물은 바쁘게 일하는 여집사님들과 동네 아낙네들이 오며 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