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돼지고기 생산국이자 소비국인 중국이 아프리카 돼지열병으로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그저 이웃나라 이야기로만 방관하던 우리나라마저 결국 아프리카 돼지열병의 공격에 속수무책 뚫리고 말았다. 정부와 방역당국에서 확산을 막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지만, 무려 2억 마리에 가까운 돼지들이 살처분 됐다는 중국을 볼 때 주의가 요청된다.이번 사태로 돼지농가들
한국교회가 어지간히 잘못은 했나보다. TV를 틀면 자연스럽게 한국교회를 주제로 한 뉴스들이 쏟아져 나온다. 연일 지상파와 종편을 통해서 공개되는 한국교회의 민낯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다. 목회자로서 부끄러움과 함께 한국교회가 정말 끝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부터 앞선다.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대서특필할 사건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오히려
한국장로교 각 교단의 가을 정기총회가 코앞에 다가왔다. 올해는 민족 대명절인 추석까지 예년보다 일러, 명절 전인 9월 초부터 시작되는 교단이 적지 않다. 각 교단은 저마다 산재된 현안을 다루고, 교단의 성장과 부흥을 이끌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기 위해 골몰한다.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각 교단별로 크고 작은 가을의 축제가 열리는 셈이다.올해는 유독 더 9월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권력은 국민을 섬기는데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을, 국민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보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이씨 조선부터 일제 36년, 해방이후 이승만 정권-군사정권 아래서 권력이 국민들을 위해서 있었다는 것에 동의하는 국민은 거의 없다. 일부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준 권력에 맹종하며, 국민들을 억압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나는 죄인이 아니다”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 우리가 기도를 하면서, “이 죄인을 용서해 달라”고 말하는가. 그것은 사랑해야 할 이웃을 사랑하지 않아 죄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서에 나오는 유대인에게서 ‘악’을 본다. 이들은 이웃을 사랑 할 줄을 몰랐다. 유대인들은 안식일법과 정결법을
7월 17일은 제헌절이다. 아울러 7월은 법의 달이다. 구약의 법정신은 철저하게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것은 오늘 현대국가의 법도 마찬가지이다. 법은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구약성서에는 3개의 법전이 나온다. 계약법전(출애굽기), 신명기법전(신명기), 성법전(레위기)이 바로 그것이다. 이 3개의 법전 모두 시대적 상황의 차이는 있다. 그러
새벽부터 밤중까지 열심히 일해도 집한채 마련하지 못하고 가난한 직장인들이 우리주변에는 많이 있다. 보도에 의하면 국회의원들은 일하지 않아도 세비를 꼬박꼬박 받고 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빈부의 차이가 극에 달하고 있다. 과연 누가 부자일까? 국민의 대표라는 사람들이 일하지 않고 월급을 받아야 되겠는가?
얼마전 우리교회(샬롬교회) 교인 24명과 성지 순례를 다녀왔다. 많은 기대와 부푼 꿈을 가지고 성지 순례를 갔지만, 공항에 내려서부터 부푼 꿈과 기대는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우선 성지 순례를 인도하는 가이드가 도대체 기독교 순례자를 위한 가이드인지, 아니면 카톨릭 교회를 선전하는 가이드인지 분간이 가지를 않았다. 분명 가이드는 필자가 잘 아는 신실한
“못하는 설교는 뒤로 하고 27년 동안 교회 청소와 화장실 청소를 하신 설교전문 목회자가 아닌 미화전문 목회자였던 나의 아버지, 장단 맞춘다고 27년간 교회의 부엌일을 하셨던 어머니, 그분들이 이제는 자랑스럽다. 나의 아버지 어머니란 말로도 가슴 벅차다”이 글은 이름도, 빛도 없이 평생 시골교회를 섬기다가 은퇴하는 원로목사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드린 축하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경제학자이며, 신학자인 아담 스미스는 “인간사회의 혼란과 고통은 신이 원하는 질서를 파괴하는데서 온다”고 했다. 허버트는 “종교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의 원인이 되는데, 그것은 곧 ‘사제’들과 그들의 제의 및 교리 때문이다”고 했다. 한마디로 계시종교들은 시간이 경과되면 제도화되고, 그 과정에서 권력투쟁이
5월 가정의 달이 시작됐다. 5월은 5일 어린이날을 비롯하여 8일 어버이날, 15일 성년의 날과 스승의 날, 21일 부부의 날로 이어진다. 그 어느 때보다 가정의 소중함이 피부에 와 닿는 절기이다. 올해 가정의 달도 이혼율의 급증, 가정폭력에 의한 죽임당하는 아이들의 증가 등으로 많은 가정이 붕괴되고 있다. 봉괴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는 가정의 달의 의미
예수 부활의 기쁨소식이 온 천하에 울려 퍼진 날, 스리랑카에선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스리랑카 최대 도시인 콜롬보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폭탄테러가 발생한 것이다. 특히 부활절을 맞아 거룩한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던 무고한 성도들과 모처럼 휴양을 즐기던 여행객들이 이 끔찍한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쳤다. 그 수만 헤아려도 사망자가
십자가 없이 부활은 가능한가? 이것은 언어의 구성이 되지 않은 말이다.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신다면 한국교회가 십자가의 자기 몫을 담당하고 있을까? 이처럼 염려스러운 것은 웬일일까?다른 표현으로 말하자면 죽음이 없이 부활이 있을 수가 없다는 단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한국교회의 모습을 염려하는 것은 죽음이 없이 부활의 영광만 차지하려고 하는 무리가 너무 많은
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위대한 선물이며, 사회를 구성하는데 기초이다. 때문에 가족의 구성원 한명 한명의 인격은 존중되어야 하며, 누구도 인격을 침해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의 피조물들이 각종 사고로 인해 죽임을 당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은 결과에서 온 것이다. 오늘도 산업현장과 공사판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이익을 우선한
지난주 수요일 6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다. 저마다 절제된 가운데, 다양한 예배를 드리고 예수의 고난을 묵상하며, 예수님의 수난을 생각한다. 매 예배 시간마다 목회자와 성도들의 뜨거운 기도로 인해 열기가 식을 줄을 모른다. 그러나 절기예배를 드리는 데에는 열과 성을 다하면서도, 정작 고난당하는 이 땅의 소외된 자들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3.1절을 맞았지만 애국자이며, 기독교지도자 중 한사람인 고 전덕기 목사에 대해 교인들은 잊고 살았다. 전덕기 목사는 교회의 울타리에서만 활동했던 민족의 지도자가 아니다. 민족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실현한 참 목회자이며, 민중과 함께 그의 나라를 위해 일한 애국자이다.1905년 11월 18일 을사조약이 공포되었다. 대한제국은 식물국가나 마찬가지였다. 을사
1948년 일본정부가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을 대대적으로 탄압하여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정부의 재일동포탄압은 계속되고 있다. 반성은 커녕 날로 심화되는 제국주의 근성이 높아지는 것을 본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일본국왕의 사죄를 촉구한 것은 그나마 우리국민의 마음을 대변한 지극히 당연한 발언이었다. 일본 아베정권은 법석을 떨며 문희상 국회의장과 우리 한국
오늘 우리들 삶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전문을 그대로 소개해 본다-나의 편지를 읽는 아직은 건강한 그대들에게!-오늘도 자네들은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겠지.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삼시세끼는 꼭 챙겨먹게나. 여기까지 와보니 알겠더군. 비싼 돈으로 산 핸드폰 70프로의 성능은 사용하지도 않았고, 나의 비싼 차도 70프로의 성능은 필요
2019년 새해를 맞이하며 이렇게 새해를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시작해보자! 첫째, 바른 믿음을 가져보자! 지난해 묵은 옛것은 보내고 새롭게 푯대를 향하여 힘차게 출발해보자. 새해에는 모든 이들이 정직하기로 탐욕을 부리지 않기로 작정했으면 좋겠다. 기독교인들 중에서 누구나 탐욕을 버리지 못해서 손해본 사람이 많이 있다. 무엇
사람에게는 누구나 기회가 찾아온다. 이 기회를 잘 이용하는 사람은 성공하고, 이 기회를 놓치면 실패한다. 기회가 찾아오면 과감하게 기회를 시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찾아온 기회를 이런저런 핑계로 놓쳐버리는 사람이 있다. 사람에게는 두 번의 기회가 절대로 찾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의 실패한 역사에 불과하며, 되돌릴 수 없다. 이탈리아는 피렌체 두오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