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너와 나, 그가 서로 기대어 살아가도록 창조됐다. 너와 내가 주고받으면서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질서이다. 창조적 섭리이라. 헌데 모두가 욕심쟁이가 되어 혼자만 살겠다고 아우성친다. 배려와 배품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됐다. 성경 이사야 63장7절에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 찬송을 말하며 그 긍휼을 따라, 그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 1888~ 19
인간은 누구나 혼자 살수 없다. 무인도에서 혼자 산다고 생각해 보라. 그렇다 인간 모두의 세상살이는 나의 마음을 열어 너와 그와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가도록 창조되었다. 오늘 세계는 전쟁과 기아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직면해 있고, 많은 사람이 고난과 고통을 당하고 있다. 성경은 문명하게 말한다. 이들의 아픔과 고통을 나의 아픔과 고통으로 받아드리지 않으면, 고인물과 같이 썩는다고 했다.그렇다 물은 흘러야 한다. 성령도 물과 같이 흘러야 한다. 나의 마음에서 너와 그의 마음으로 흘러야 썩지 않는다. 내가 받은 은혜를 혼자의
우리는 글로벌, 세계화시대에 살고 있다. 소유욕 강한 인간 모두는 자본의 노예가 됐다. 과거 인간은 재물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살았다. 자본이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오늘 날은 통장 하나면 자금을 얼마든지 쌓아둘 수 있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있는 오늘날 인간들은 “돈이면 안되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는 신의 자리를 돈으로 대치시켰다는 이야기이다.루터의 종교개혁 이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모든 삶은 천상을 향한 삶이었다. 한마디로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삶이 종교에 예속되어 있었다. 글로벌시대인 오늘날 인간의 삶
사람이라면 누구나 삶의 현장서 도전을 받고, 도전을 하면서 살아간다. 도전을 받지 않고, 도전을 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도전은 삶을 보다 보람되고, 진취적으로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도전 없이 현재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삶은 한마디로 미래가 없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갈 수도 없다. 도전 없는 삶은 한마디로 용기가 없는 삶이며, 성공이라는 참 맛을 맛볼 수 없다.성령 시편 1편3절에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
교회를 중심으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러난 1919년 3.1만세운동은 3천 년간 이어진 봉건통치를 종식시키고 민주국가 건립의 개시를 알리는 운동이었다. 또한 3.1 운동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를 뒤엎고 대한민국의 건립을 알리는 운동이었다. 3.1 운동은 1919년 3월 1일부터 1년에 걸쳐 한반도 전역과 세계 각지의 한인 밀집 지역에서 시민 다수가 자발적으로 봉기하여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일본 제국의 한반도 강점에 대하여 저항권을 행사한 비폭력 시민 불복종 운동이었다.한민족 최대 규모가 참여한 독립운동이며, 민족운동이고, 해방운
사람은 혼자살수 없다. 모두가 혼자 산다고 생각보라. 얼마나 삭막한 세상이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은 너와 나, 그와 함께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창조했다. 이웃과 기대어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적 선물이다. 그래서 세상은 다양하다. 우리는 다양성 속에서 다양성을 인정하며 살아간다. 곤궁하지만, 너와 그가 있어 행복하다. 위로를 받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불러주는 사람이 있으면, 감사하고 행복하다.항상 동행하는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경제적으로 나보다도 넉넉했다. 그래서 항상 식사를 대접받고, 대접하기를 좋아했다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오늘날, 화해라는 말처럼 아름다운 말은 없다. 오늘 세계는 적대적 관계가 조성되면서, 나라 간에 전쟁이 일어나고, 종교 간의 분쟁으로 종교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이로 인해 많은 피조물들이 살해당하고 있다. 국제적인 종교분쟁과 전쟁은 탐욕에 길들여진 인간들에 의해서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다. 한마디로 잘난 인간들 때문에 힘없는 백성들은 죽임을 당하고, 어린 아이들이 살해되고 있다. 오늘 대한민국의 상황도 전혀 다르지 않다. 세대갈등, 노사갈등, 이념갈등, 지역갈등, 정치적 갈등 등으로 인해 국민 모두가 고통을 당하
“인간의 마음은 흔들리는 갈대와도 같다”는 말이 있다. 이 말과 같이 인간의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 바꾸기 일쑤다. 그래서 마음을 먹었으면, 즉시 실행에 옮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갈대와 같아 행동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누구든지 실행에 엎서 망설이며, 실익을 계산한다. 특히 가진 자와 힘 있는 자들의 마음은 더욱 그러하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많은 정치인은 “마음을 비웠다”고 말한다.하지만 총선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 마음은 변한다. 성경 신명기 23장23절에 "네 입으로 말한 것은 그대로 실행하도록 유의하라
인간은 일생을 사는 동안 누군인가와 함께 동행 한다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은 없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평생을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평화롭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주님과 동행한다고 말하면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주님과 동행하는 것은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말라기 2장 6절에 "그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의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기다릴 줄을 모른다. 빨리빨리 외치다가 큰 일을 일으키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고 목격한다. 특히 한국 사람처럼 급한 사람은 없다. 외국사람들에게 한국 사람들에 대해서 물어보면, 한마디로 ‘빨리빨리’라고 연발한다. 그만큼 한국 사람들이 조급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말이다. 남녀간에 사랑을 나누면서 상대에 대해서 알아보지도 않고서 급하게 달려든다. 그러다가 낭패를 본다. 아이의 손에 두 개의 사과를 들려주었다. 이를 본 엄마가 아이에게 “사과 하나를 달라”고 한다. 아이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사과
사람은 누구나 사람을 미워하고, 원망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것은 새 인간으로 거듭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슨 일을 하면서,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누구로부터 제안을 받고, 그것이 자신의 목표에 도달하지 않으면, 원망하고, 미워하기 일쑤다. 심지어 상대를 원망하며, 평생 ‘적’으로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세상은 너를 받아드리지 않고서는 ‘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고, 미워할 수밖에 없다.서로 미워하고 증오하다가 보면, 전쟁밖에 일어나지를 않는다. 이것이 인간의 내면에 죄의식이 내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 하마스와 이스
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몸에 대해서 관심을 더 갖게 된다. 젊어서는 몰랐는데 70대에 들어서면서, 건강에 대해 염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젊은 시절에 몸은 자신하고 가장 친하면서도, 만만한 친구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몸에서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다. 70을 넘긴 요즘 내 몸은 한평생 모시고 온 가장 무서운 상전이 됐다.(박완서의 ‘호미’ 참조) 나이가 들면서 몸은 계속해서 경고한다. 40대때 다르고, 60대 다르다. 처음에는 아주 미세하게 경고하더니, 마지막에는 크게 경고한다. 처음에는 아무 일이 없겠지 하면서, 그냥 대수
목회자 아니 그리스도인 모두는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예수님 당시 안식일법과 정결법은 생활전반에 파급되어 있었다. 안식일법과 정결법은 가난한 자, 병든 자, 불결한 직업을 가진 직장인들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속시켰다. 그 중에 예수님과 충돌의 계기가 된 것은 식사 전에 손을 씻는 것이었다. 손 씻는 것은 제사 전에 사제가 제사를 집행하기 위한 사제법에 근거한 것이었다.이것은 종교적 권위로써 제재하는 법규가 되었다. 오늘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도 바리새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은지. 일부 목회자들은 법과
골로새서 3장13절에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 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은 일곱번씩 일흔번을 용서하라고 했다. 유대교 랍비이며, 신비주의자이자, 탈무드학자이며, 법전편찬자인 엘레아자르 벤 유다(Eleazar ben Judah, 1160~1238)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하는 것이다"고 했다. 분명 용서는 아름다운 일이다. 오늘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을 36년 동안 침탈한 일본에 대해서 용서하는 문제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
8월 8일이 무궁화의 날이라는 것에 대해서 국민 대부분은 모른다. 그러면서도 말로는 모두가 애국자라고 말한다. 그것은 진보, 보수 모두가 마찬가지이다. 모두 ‘애국’을 입에 달고 산다. 한마디로 모두가 ‘애국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특별한 날 모두 손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거리로 나와 흔들면서, ‘애국자’임을 자처한다. 애국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모두 잊고 사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무궁화 꽃은 매우 아름답다. 우리 민족은 무궁화 꽃을 겨레의 꽃으로 받아들여 예부터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왔다. 무궁화 꽃을 하늘의 꽃으
우리는 편견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우리의 삶 전체가 편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흔히 우리는 부모가 없는 아이를 보면, 한마디 불쌍하다는 편견을 갖는다. 고아는 부모가 없어서 불쌍한 것이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하기 때문에 안타까운 것이다. 특히 부모를 잘 만나 곱게 성장한 아이들과 그 부모들은 고아들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자신의 아이들이, 고아들과 어울리는 것을 경계한다. 이는 편견이며, 잘못된 인식이다.고아들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할 뿐이다
분열과 갈등이 끊이지를 않는 한국교회처럼 송사가 많은 종교단체도 없다. 7월 법의 달을 맞아 한국교회에 속한 목회자와 교인 모두가 생각해야 할 대목이 아닌가 싶다. “성경은 세상 법정으로 가느니 차라리 손해를 보고 불의를 당하고 속는 편이 낫다”고 교육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이며, 자매이다. 형제간에, 자매간에 송사할 수 있는가. 고린도전서 6장 1절부터 8절을 보면 그것에 대한 해답은 분명해진다.“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
“화 있을진저 너 학대를 당치 아니하고도 학대하며 속임을 입지 아니하고도 속이는 자여 네가 학대하기를 마치면 네가 학대를 당할 것이며 네가 속이기를 그치면 사람이 너를 속이리라”(야고보서 33장1절)성경은 회개하지 않는 외식하는 자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분노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분노와 화 때문에 살인하고, 이웃과 등지며, 살아가기 일쑤다. 그래서 어르신들은 화를 많이 내고, 분노에 가득 찬 사람을 향해 분노와 화를 삼키라고 교육한다. 하지만 화, 분노를 그대로 삼키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
오늘 인간사회는 지나친 소유욕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사건이 하루가 멀다고 일어나고 있다. 소유욕이 지나친 나머지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사기사건이 곳곳에서 일어난다. 그것은 교회의 교주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전세사기사건의 면면을 들여다가 보면, 인간의 지나친 욕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결국 평생 동안 일해서 어렵게 전세자금을 마련한 간난한 사람들에게 상처만을 남기고 있다. 또한 전세사기 피해자 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도 이 땅에서 일어났다. 오늘 언론매체에 보도되는 젊은
인간의 가치, 삶의 무게 중심을 돈에 두면서, 부모와 아이들은 가정에서 이탈하기 시작했고, 세상은 출세지향주의가 되면서, 세상은 반칙으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간다. 장관 후보자들의 청문회 때마다 일부 후보의 모습은 한마디로 오늘 잘못된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모 장관 후보의 자녀교육은 한마디로 부모찬스의 출세지향주의 오늘 잘못된 자녀교육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것은 파괴되어 가고 있는 인간의 가치관, 편법과 반칙이 판치는 잘못된 세상, 가족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는데 안타깝다. 이런 출세지향주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