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2년을 넘기면서, 영적으로 메마른 교인들의 영성회복과 침체 및 마이너스성장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어려움에 처한 지역교회에게 교회성장의 동기를 부여해 주기 위한 운동이 실천사역연구원 원장 김록이 목사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김록이 목사는 실천사역연구원 인적자원을 최대한 활용, 지역복음화운동본부(이사장=김록이 목사, 본부장=배정식 목사)를 창립하고, 전국 순회 집회에 들어갔다. 동 운동본부는 첫 번째 집회로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대구 광진중앙교회(담임=지태동 목사)에서 연인원 1만여명이 참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갈릴리와 베다니에서 제자들과 다니시면서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보이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는 말씀을 마치신 후 제자들 500여 명이 보는 가운데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승천하신다. 천사들은 제자들에게 왜 하늘만 보고 있냐고 한다. 그리고 너희 가운데 오른 이 예수님은 하늘로 영광 가운데 가신 그대로 오신다고 말한다. 낮은 인성을 가지고 초림으로 오신 예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을 향해 가고 있는 성도 여러분, 한때 욜로(YOLO)라는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용어가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미래 또는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현재의 내 행복만을 위해 자신이 가진 물질, 시간을 소비하는 삶의 스타일’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의 보편적인 삶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스타일은 ‘현재의 삶을 사는데 집중하는 게 아니라 온 우주와 모든 사람에게 임할 미래의 소망을 기다리며 사는 삶’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욜로가 현세적, 자기중심적, 세상적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예수님을 사모하여 만나고자 했던 사람들은 어디든 예수님을 따라다녔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셨다. 백성들은 표적과 기사를 보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라왔지만 예수님은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영생의 말씀, 복음을 전하심으로 영혼들에게 영육의 복을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날이 저물기까지 예수님 곁에 머물러 있던 백성들이 예수님이 말씀을 마치신 후 돌아가려고 할 때 백성들에게서 목자 없는 양들 같은 모습을 보셨다.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해
교회 건물에는 건축과 더불어 흔히들 담을 둘러치는 것은 교회 소유의 경계를 알리기도 하지만, 사실은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하기 위한 장애물로도 사용된다. 교회가 과연 벽을 쌓고 담을 둘러치는 이유가 단순히 불필요한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하고 사회 일반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표식인 관계자 외 출입 금지를 알리는 단순한 표식인가 하는 것은 조금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다. 과연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막은 철제 장막과 같이, 또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경을 가로막은 철 기둥 장벽처럼, 아니면 대한민국 휴전선에 설치된 철조망처럼 누군가의 출입
야구 경기를 보면 심판들이 세이프나 아웃 스트라이크를 표현할 때 특이한 손동작을 한다. 이 독특한 야구의 수신호는 100년 전 언어와 청각장애를 지닌 야구 선수 ‘윌리엄 호이(William Hoy)’와 같은 이들을 돕고자 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윌리엄 호이(William Hoy)’는 말을 못 하고, 듣지도 못하는 야구 선수였다. 처음에는 '바보' 라고 놀림을 받기도 하였지만 놀림을 받을수록 그는 더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하여, 장애의 한계를 극복하고 야구 선수들의 꿈이라 할 수 있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는 선수가
애정의 고백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언어가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해서 무슨 말을 하든 말만 했으면 끝나게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말 제주가 아무리 많더라도 아무 데나 남용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볼 때도 있다. 특히 애정 문제에 있어서 그렇다. 사랑은 사실은 말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고백하고 행동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그것이 훨씬 더 말보다도 더 많은 진실성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우리는 눈동자를 가리켜서 내 마음의 호수라고 부른다. 검은 눈동자는 푸르다 못해 파랗게 빛나고, 조용히 맑은 정서가 흐르는 눈
주의 헤세드가 나의 생명보다 소중합니다(3절). 지고한 신앙과 지순한 고백을 담은 이 한 구절만으로 히브리 시편의 대표작이라 부를만한 시편이다. 하나님 부재와 박해자들의 공격 현실에서 앞당겨 부르는 감사와 찬송이다. 이 구절은 심지어 순교자의 각오까지 읽힌다. 그것은 자신의 목숨을 하나님의 자비로 맞바꿀 수 있는 결연한 믿음이다. 시인은 영혼이 하나님을 갈망하고 육체가 주를 가슴 깊이 앙모하기에 헤세드 앞에서 자신의 생명을 가치로 견줄 수 없다. 시인의 단호한 하나님 찬양에 대한 결의는 독자에게 마음가짐을 추스르게 한다. 사실 안정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 날”이 바로 가깝기 때문에 열심히 모이라고 권면한다. 참되고 온전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함께 모인 성도들이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것이다. 이런 집회를 거부하는 자들은 잘못된 습관에 빠진 자들이다. ...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 10:22-25).왜 초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섬기러 오셨습니다. 섬긴다는 것은 종노릇한다는 말입니다. 온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섬기러 오셨다는 것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생각할 때 참 쓸모없는 자, 죄인이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그런 우리를 섬기러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을 닮았고 영적으로 성숙했느냐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얼마나 섬기고 그들의 종노릇하느냐 하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성경 구절을 많이 외우고 지식이 많은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 속에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
“오늘 대한민국은 경제, 정치, 외교, 문화 어디하나 성한 곳이 없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나라와 민족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는 말이다. 이럴 때 이 땅의 어머니된 민족의 어머니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며, 경제회복과 건강한 정치회복, 외교회복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청을 드려야 한다. 민족의 어머니들은 나라와 민족에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마다 어떠한 모양으로든지 하늘을 향해 기도했다는 사실.오늘 한반도의 상황을 보면, 구한말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이 각축전을 벌였을 때의 모습이 재현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국론은 분열되고,
본문은 역설적인 복음으로 해석 된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한 알의 밀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이 한 알의 밀은 바로 예수님으로 비유된다. 인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속 제물이 되기 위해 인성을 가진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이 신성하신 부활의 주로 영광을 얻을 때가 가까이 왔다고 22절에서 말씀하고 있다. 아담의 원죄와 자범죄로 인하여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부활의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초림으로 오신 예수님을 우리는 지금 은혜로 믿고 있다. 로마서 12장 1~2절에서는 영적인 사람의 진정한 예배는 자신의 몸을
본문에서는 위대한 사람이라 칭함을 받는 다윗이 나온다. 다윗은 자기 심복의 아내를 취하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른 사람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직접 보내신 나단 선지자의 회개하라는 충고에 그 자리에서 아멘하고 침상이 적셔질 정도로 눈물을 흘리며 회개한 겸손한 자이기도 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던 다윗은 솔로몬이라는 훌륭한 자식을 낳았다. 다른 아들 압살롬과 전혀 달랐던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처럼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했다. 하나님은 이런 솔로몬에게 성전을 건축하라고 허락하셨다. 다윗은 자신의 손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한국기독교원로목사회(이하 한기원)는 제25대 대표회장 김원식 목사 취임식을 9일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 갖고, 원로목사들의 친목도모의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제25대 대표회장은 김원식 목사는 분열과 갈등을 거듭해 온 한기원 회원들의 화합과 연합을 위해서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김 대표회장은 “25년전에 창립된 한기원은 목회현장을 떠난 원로목사들의 침목을 도모하고, 목회현장에서 하나님의 참사랑(기쁜소식=복음)을 실현하기 위해 수고하는 후배목사들을 응원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창립됐다”면서, “한기원은 그동안 원로목사들이 모여 하나님께
이웃을 사랑 할 줄 모르는 사람을 인간 이하라고 말한다. 인간이기를 포기했다고도 한다 이런 사람이 있는 공동체는 언제가는 무너진다. 결속된 유대를 포기한 공동체는 해체된다. 한사람의 아픔에 동정하지 않으면, 죽은 공동체이다. 무능한 인간, 보잘 것 없는 인간, 버림받은 인간을 어떻게 돌봐 주느냐에 따라서 그 사회의 성숙도를 가름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과거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과 함께 성장했다.교회는 세상의 빛이 됐다. 소금이 됐다. 한사람을 버리는 공동체는 100사람도 버릴 수 있다. 정신박약아. 불구자, 고통 받는 사람을
시편 67은 일곱 구절로 구성되었다. 실제 본문을 자세히 보면 4절을 중심에 두고 같은 내용의 3절과 5절이 양쪽에 위치하고, 2절과 6절이 땅을 공통 매개로 노래하고, 1절과 7절은 하나님 은혜와 경외로 감싸는 형국이다. 따라서 유대 신앙인들은 시편 67을 여러 시편 중의 하나로 간주하지 않고 등잔대의 일곱 촛불을 떠올리며 ‘메노라 시편’이라고 부른다. 크라우스는 메노라 형태의 특징을 직접 언급하지 않지만 시편 67의 동심원적 구조와 본문의 상호성은 여타 시편과 구약 전체에서 찾아볼 수 없는 거의 유일한 예라고 밝힌다.
신약성경이 증거하는 바, 초대교회 성도들은 미래를 기대하면서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소망”(hope)을 품고 살았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재림이 임박하였음을 굳게 확신했고, 최후 심판을 준비하면서 죄를 멀리하고, 날마다 깨어있으면서 경건한 삶을 추구했다. 이들의 종말론적 신앙은 하늘나라에서의 영생을 소망하는 것이다. “그 날”이 도적같이 올 것이라고 믿었기에, 승리의 소망을 가진 성도들이 교회에서 집회로 모이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성도들이 가진 참된 ‘소망’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섬기러 오셨습니다. 섬긴다는 것은 종노릇한다는 말입니다.온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섬기러 오셨다는 것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생각할 때 참 쓸모없는 자, 죄인이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그런 우리를 섬기러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을 닮았고 영적으로 성숙했느냐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얼마나 섬기고 그들의 종노릇하느냐 하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성경 구절을 많이 외우고 지식이 많은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 속에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CEO는 세속의 최고경영자와는 그 경영에 있어서 목적의식이 달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속의 CEO는 오직 기업의 성장의 경제적인 요건의 충족만을 위한 경영에 그 목적을 둔다면,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준행 한다는 신앙 안에서 모든 계획과 목적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말하게 된다면 이는 반드시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며 그 결국은 타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세속의 CEO들도 공익성을 갖는다해도 분명 성장 과정(수단)은 별로 문제다 되지 않는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대 교회가 세워진 목적은 영혼 구원과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에 대해 계시하고 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해야 하는 주요한 일은 바로 과부와 고아 그리고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는 일이다. 초대 교회의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소유한 동산이나 부동산 팔은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아두었으며, 사도들은 그 재물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한 끼 식사라도 제공하는 교회와 아예 요일을 정해 배고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있어 마음이 든든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