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는 탄원시에 속한다. 탄식의 대상은 원수(2-4절)와 악인(8절)이다. 그들은 경건한 자를 괴롭히고 위협한다. 그들의 무기는 거짓말과 아첨과 두 말하는 이간질이다. 시인을 입술과 혀로 상처 입히고 마음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다. 시편에 나오는 대표적인 원수에 속한다.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로 대변되는 원수들의 거짓말은 순결한 야웨의 말씀과 극명하게 대조된다(5-6절). 야웨는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의 편이다. 원수들의 공격을 막고 위협에서 보호해줄 것이다. 시인에게는 경건한 자가 끊어지지 않도록 탄식을 멈추게 하
이사야 1장 12-13절을 읽어보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성경에 적극적으로 권고하는 내용들이 아니라면, 우리는 예배 시간에 그런 내용들을 포함하지 말아야 한다. 인터넷 교회에서의 예배는 실제적으로 지역 교회에 나가서 드리는 예배에 연결해야만 하고, 모든 우선순위를 지역교회 예배로 돌려야 한다. 특히 선
지난 15일은 광복 78돌이었다. 또한 9월 1일은 ‘조선인’ 학살(虐殺)의 만행이 자행(恣行)된 ‘관동대지진’ 100년째 되는 날이기도 하다.그러나 한반도는 남북분단으로 일제의 36년의 만행보다도 동족 간의 대치, 사상, 이념전쟁이 계속되고 있으니 참으로 비극이 아닌가? 이 비극의 모든 원인이 분명 일제의 침탈에 있음에도 매국노들과 현대의 종일주의(從日主義)자 들의 득세로 또다시 ‘을사늑약’에 의한 일제 36년의 참극이 되풀이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독립을 위해 가족, 재물, 목숨 등을 희생한 분들을 잊을
한국 사회는 아직도 8,15 이전의 일본 식민 시대의 잔재와 6,25 동족상쟁의 잔재가 뿌리 깊이 내려 이해가 충돌하는 현장이다. 아마도 지구가 종말을 맞이하여도 끝이 날까 하는 염려다. 그러다 보니 현실 정치에는 보수와 진보라는 두 거대한 이념과 사상이 벽처럼 쌓여 양 진영이 절대 화합할 수 없는 모습이다. 실제 싱식적으로 생각하면 보수는 자유민주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며, 진보는 사회주의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본다, 그 사회주의를 깊이 들여다보면 구소련이 이념으로 주창한 볼세비키 혁명을 이룬 공산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국내대학 최초로 1953년 사회사업학과를 개설하는 등 우리나라 사회복지학의 초석을 다진 강남대학교(윤신일 총장)는 ‘2022학년도 후기 학위 수여식’을 지난 18일 대강당에서 개최하고, 사단법인 미래복지경영 이사장 최성균 장로 등에게 명예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최성균 장로는 “긴 세월 사회복지 한길만 걸어왔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이 길을 함께 해온 많은 동료가 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사회복지의 길에 들어선 전문가들도 배출되고 있다”며, “쉼 없이 달려온 15년간을 되돌아볼 새 없이 미래를 향해 내달음을 해야 할 시기를
중풍 병자였던 사람은 스스로 거동이 불가하여 주위 사람들이 침상째 메고 움직여야만 이동이 가능하였다. 친구들이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오기 위하여 침상을 메고 나왔다. 예수님이 계신 곳까지 오긴 했지만,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을 헤치고 예수님 앞에 가기는 쉽지 않았다. 당시에 예수님을 만나면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병도 고치고, 앉은뱅이도 일어나고 소경이 눈을 떴으며 가난한 자, 불쌍한 죄인과 세리들까지도 주님께 인정받았기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바리새인들은 이런 예수님을 향해 손가락질하였지만, 사람들 사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애굽의 노예로 살다가 고센 땅을 출발하여 숙곳에 도착한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 가나안으로 갈 수 있는 길로 가지 않고 광야로 인도하신다. 홍해를 건너 광야라는 곳에는 지도도 안내판도 없고 어디로 가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인지 전혀 알 수 없다. 17절 18절에 보면 블레셋 땅으로 가면 반드시 전쟁이 일어나기 때문에 하나님이 숙곳으로 이르러 홍해 앞으로 인도하셨다. 그런데 이 백성들은 하나님의 의도는 생각지 않고 내 앞에 가로막힌 홍해 문제를 놓고 원망하고 불평했다. 창세기
혼자의 힘으로 자립 한다는 것처럼 힘든 일은 없다. 특히 어려서부터 부모의 그늘 아래서 도움을 받고 성장한 현대인은 더욱 그렇다. 대학교육까지 부모의 도움으로 졸업하고, 결혼한 현대인들을 보면,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아빠찬스, 엄마찬스로 교육을 받은 인간들은 너와 그를 모른다. 자신만 출세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자신들만의 세상을 구축한다. 이들에게는 ‘자립’이라는 단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오늘날 세상은 부모를 잘 만나야 출세하는 세상이다.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부모를 잘 만나
시인의 절박하고 간절한 호소는 두 겹으로 나타난다. “내게 은혜 베푸소서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 베푸소서(יננח).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고(היסח)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합니다(הסחא).” 그만큼 주의 은혜가 갈급하고, 그만큼 안전 공간이 절실하다는 뜻이겠다. 특히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눈길이 머문다. 시편에서 이 표현은 마치 관용구로 쓰이듯 상당히 익숙하다(시 17:8; 36:7; 61:4; 63:7; 91:4). 그런 만큼 ‘주의 날개 그늘’은 하나님의 보호와 안전이라는 상징이 강할 뿐 아니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이야기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미 성경을 통해서 제시된 엄청난 은혜의 역사를 기억해야만 한다. 성경은 유기적 영감을 받은 인간 저자들이 기록을 했기 때문에, 구속역사를 다루는 연속성과 다양성이 풍성하고도 분명하다.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고, 계시된 가르침을 벗어난 사람들의 제안들은 결코 믿을 수 없다. 하나님으로부터만 구원하시는 진리이자, 거룩하게 하는 진리가 나온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당신의 말씀은 진리니이다”고 기도했다(요 17:17). 우리가 구원을
작금에 갑자기 무속(巫俗), 풍수(風水) 명당(明堂)등의 이야기가 회자되는 데, 명당(明堂)이란 풍수(風水)의 용어가 되어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로 둘러싸인 요지로 인식되어 왔지만 사실 그 본뜻은 글자 그대로 "밝게 비추는 마루", 즉 임금이 정치한다는 함으로써 "천하를 밝히는 대청마루"일 뿐이다. 지금 말로 하면 대통령의 집무실이 되는 샘이다. 따라서 지금의 묘터나 집터와는 멀어도 한참 멍 이야기다. 본시 왕의 집무실이라면 만인이 우러러보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을 법도 한 데 사실은 그렇않았다. 역대의 천자(天子)라고 자처
기독교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양팔을 벌리고 손과 발에 녹슨 쇠못에 박히시고 옆구리에 창으로 찔리실 때 물과 피를 다 쏟으셨다. 교회는 교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양팔을 벌린 것은 하나도 없이 다 주었다는 의미가 있다. 교회는 예수님이 흘리신 물과 피로 세워진 교회요, 사도들의 희생의 터 위에 세워졌다고 계시한다. 그런 교회인데 지금 교회는 어떤 모습인가? 성경에 계시 된 초대 교회와 어느 정도 다른면이 있으며 교회의 형태가 초기와 얼마나 멀리 떨어졌는지
이 시간 무엇에 의인의 기준을 두고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행동을 하는 사람이 의인인지 또 의인의 집에 있는 보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본문을 통해 말하고자 한다. 잠언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의인으로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과 생활의 지혜를 가지고 분별함으로 영혼이 상하지 않게 되는 길을 말해주고 있다. 잠언은 우리가 걸어가는 길에 꼭 필요한 필수적인 생활의 지혜와 믿음의 길을 가르치고 알려주는 지혜서이다. 현시대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불안한 환경과 생각에서 부딪히고 하나님을 자신의 생각의 기준에서 믿어지면 믿고 안 믿는 자유
“광복 78주년을 맞았지만, 서울시 서대문독립공원 내 유관순 열사 동상은 2021년 12월 28일 우여곡절 끝에 제막을 했다. 그러나 봉헌은 신종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등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계속해서 미루어지고 있다. 봉헌되지 못한 아쉬움을 해결하기 위해 범시민 모금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애국시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마음을 모아주었으면 한다. 3.1만세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한국교회도 적극 참여해 줄 것을 당부한다”서울시 서대문독립공원 유관순 열사 동상 봉헌위원회 위원장 류언근 박사는 유관순 열사 동상 봉헌에 한국교회와 애국
애굽 궁전에서 40년 동안 살았던 모세가 자신의 동족을 괴롭히던 애굽 사람을 향해 의분이 일어나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 사실을 안 애굽 왕 바로가 모세를 죽이라 명령했다는 것을 듣고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가게 되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의 훈련을 받게 된다. 애굽의 포로가 된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애굽에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통곡을 하며 기도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을 아뢸 때 하나님께 상달된 시간이 430년이 걸렸다. 상달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때가 된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
성경66권의 말씀은 온 인류가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 미혹자, 유혹자 사탄 마귀에게 속아서 죄 가운데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 우상을 섬기고 있음을 반증한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흘리신 보혈의 피로 죄 사함 받고 성령 받아 거룩하신 하나님의 창조목적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나를 통해 성취되고 이루어지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이름은. 1) 하나님은 창조자이시다(창1:1, 롬1:20). 2) 여호와는 구원과 심판이다. 언약, 계약의 하나님이다(출6:6~8), 3) 주 : 주인, 소유주, 승천 후 보좌우편에 계신다. 4) 하나
본문에서 사도들은 주님께 자신들에게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한다. 주님은 사도들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명령할 때 그대로 사도들의 말에 순종하였으리라라는 뜻밖의 대답을 하신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죄를 짓지 않고 거룩하게 사는 삶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율법이라는 속박에서 살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항상 모세의 율법을 준행하며 살았다. 행여 율법 중 하나라고 어기게 되면 그에 대한 형벌을 받게 될까봐 늘 조심하여 삶에 자유와 평안이 없는 사망의 법에 매여있었다. 본문의 말씀을 하신
미국의 작가, 교육자이자 사회주의 운동가인 헬렌 켈러(Helen Keller, 1880~1968)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작다. 함께 할 때 는 큰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무리를 말하는 것이며, 혼자 아닌 하나의 공동체를 뜻 한다. 헬렌 켈러의 말대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하나하나가 모여 무리가 되면 큰일을 이루어 낼 수 있다. 적으로부터 공동체를 지킬 수 있고, 많은 일을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 성경 시편 133편1절에도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
창세기에 의하면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 선언으로 드러난다. 곧 빛과 어둠, 해와 달 등은 ‘있으라,’ ‘나뉘라,’ ‘드러나라’ 등처럼 하나님의 명령으로 창조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명령이 아니라 야웨 하나님이 ‘흙의 먼지’로 창조하셨다고 밝힌다(창 2:7). 히브리어 동사 ‘말하다’(רמא)는 창조자의 위엄을 강조한 표현이지 구체적인 창조 행위로 보기는 어렵다. 이른 바 ‘말씀의 창조’는 뜻밖에도 시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의 말씀으로 하늘이 펼쳐지며 그의 입김으로 모든 별이 생겨났도다. 주가 말씀하시니 이루어졌으며 그가 명하시니
믿음의 공동체는 사탄의 계략 때문에 거짓 교훈들로 속임수에 넘어가기도 하고, 함정에 빠지기도 하고, 심각한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이단들이 감언이설로 속이는 자들에게 넘어가기도 한다. 성도들은 영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고 침체에 빠지거나 영적인 무력증에 휩싸일 수도 있다. 불신앙의 미혹에 넘어가게 되면,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거나, 은혜의 감격이 소멸되어지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데, 이런 것들이 습관적으로 되어 버린 자들도 있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오고 있을수록,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