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대한민국장’ 훈장 수여와 함께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 무한 감동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제2베트남…20년 아프간 전쟁 이렇게 끝났다”(중앙일보. 2021. 8. 16 조간), “무능한 정부, 탈레반에 나라 넘겼다”(국민일보. 2021. 8. 16 조간) 등으로 신문들의 1면 탑에는 ‘홍범도 장군’에 대한 기사에 시선을 돌릴 틈이 없을 정도로 ‘아프칸’ 소식의 보도로 가득 채워져 있다.국민 대다수는 ‘아프칸’이 어디 붙어 있는 나라인지도 모르며 ‘시리아’ 등과 같이 내
8월 하면 먼저 떠올리는 것은 8·15 광복절이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매우 중요한 역사는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은 일본(왜구)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조약이다. 을사늑약을 시작으로, 일본(왜구)은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뺏는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공포한다. 그해 곧 경술년에 국가가 치욕적인 일을 당했다 해서 경술국치(庚戌國恥)하낟. 또한 한일 병합 조약(韓日倂合條約, 한일 합방 조약(韓日合邦条約), 한일 병탄 조약(
덴마아크 코펜하겐의 "티·제이·바하라"는 젊은 공대 학생은 자신의 과거를 이렇게 회상했다. “저는 전도지를 제 손으로 짓구기며 전도지를 건네 준 청년에게 .당신은 왜 이런 걸로 사람들을 괴롭히죠. 관심이 있으면 다 자기가 알아서 할 텐데.라고 쏘아 붙였습니다. 그리고 그 전도지를 갈기갈기 찢어서 제 호주머니 속에 쑤셔 넣었습니다. 저에게 전도지를 건네준 그 청년은 제 말에 아무 대답도 않고 서 있었습니다. 제가 그 자리를 뜨려고 돌아서자 그는 얼굴을 출입구 쪽으로 돌렸습니다. 그런데 그의 뺨에는 눈물이 방울져 굴러떨어지고 있었으며.
6월하면 먼저 나라와 민족을 위한 각오들을 다짐하게 된다. 그러나 작금에 일어나는 현실 앞에서 애국, 애족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를 생각해 본다.나라 없는 백성이 없지만 백성 없는 나라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와 달리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에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헌법에 명시 되어 있다. 이는 일부 소수 특권층만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국가가 아니라 단 한 사람의 힘없는 백성이라도 그 안위와 행복추구권이 우선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명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일
살다보면 알게돼 일러주지 않아도 너나 나나 모두다 어리석다는 것을살다보면 알게돼 알면 웃음이 나지 우리모두 얼마나 바보처럼 사는지잠시 왔다가는 인생 잠시 머물다갈 세상 백년도 힘든것을 천년을 살것처럼살다보면 알게돼 버린다는 의미를 내가가진 것들이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띠리 띠리 띠리 띠리 띠리 띠리 띠리 띠리 띠리 띠리 띠리 띠리 띠리 띠리 띠리 띠리살다보면
2011년 7월 22일 “노르웨이”에서 “브레이비크”라는 한 극우주의 자에 의하여 약76명이란 어린 생명들이 무차별 학살을 당했다. 그런데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범죄행위를 저지른 자가 “극우민족주의자이며”, “보수적인 기독교인”이라 자처했다는데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믿음 있는 한 사람은 이익에만 관심 있는 10만명의 힘과 맞먹는다.’는 글을 남
2014년 12월 21일 교수신문에 따르면 지난 8∼17일 전국의 교수 724명을 대상으로 올 한해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를 규정지을 수 있는 사자성어를 설문한 결과 ‘지록위마(指鹿爲馬)’를 선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진시황’이 죽고 2세인 ‘호해’가 황제였던 환관 ‘조고’가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 다른 신하들이 자기 말을 들을지 시험하기 위해 말
필자는 2012년에 여수에 엑스포에 다녀오면서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 기념관을 경유해 오면서 사진 몇 장을 남겨 왔다. 무심코 사진을 정리하던 중에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라는 흑백으로 된 ‘손양원’ 목사님의 친필을 보면서 가슴 뭉클함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글의 내용은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말지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도 벌써 7해가 되었다. 그러나 그 무엇하나 속 시원하게 밝혀진 것이 없어서일까? 그 유가족들은 그제나 오늘이나 눈가가 부풀어 올라 잦아들질 않고 있다. 그뿐인가 용산 참사 등 여러 참사 때도 사악(邪惡)함을 보여주는 이들이 있었음에도 예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지지 않은 보도 태도를 보이는 일부 언론 등이 존재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요일 1:6) 라는 말씀을 새기며 지금 하는 말이 저주. 비난 등을 하기 위해 말의 본질, 성격, 의미 등을 변개, 왜곡 등을 하고 있지 않은가 스스로 살펴보고 거짓말이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에드먼드 버크는(1729-1797) “악의 승리를 보장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적당히 타협을 하면 대충 벌금형으로 감옥에서 나올 수도 있었고 탈출할 수도 있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에게 도망을 가라고 권유도 했었다. ‘소크라테스’는 재판을 마지막 진술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이제 떠나갈 시간이 되었다. 각자의 길을 가자. 나는 죽기 위해서, 여러분을 살기 위해서, 어느 쪽이 더 좋은지 하는
해묵은 감이 있는 책들이 쌓여 있는 위치에서 노랗게 변색 되어있는 책(세계를 움직이는 100인”이란 1987년 1월호 신동아 별책부록)을 한 권 꺼내보았다. 이 책은 나로 하여금 과거를 통하여 작금의 우리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칼 발트(Karl Barth)’에서 ‘위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등 현대 신학자들은 “신학의 사명은 변하지 않
어느 신부님이 강론 속에 나는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내가 죽을 때 “ 그는 숟가락 몽둥이 하나밖에 없드라”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누어 주고 또 나누어 주어도 양복이고 무엇이고 늘어나니 고민 입니다.” 라고 말하여 장내의 웃음을 이끌어 냈다. 물론 그 웃음은 모두가 흐뭇해하는 평안의 웃음이었으리라. 나 역시 그의 말에 많은 것을 생각지 않을
COVID-19로 어려움이 있지만, 가슴의 빛을 계속 지펴라!이제 손과 발로 드는 촛불이 아니라 가슴으로 촛불(빛)을 불타오르게 해야 한다.촛불을 켜야 하나? 촛불을 꺼야하나? 하는 논쟁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종교계의 갈등이 생기고 나아가 어떠한 불행한 상처들을 품게 되지나 않을까 우려가 된다.그러나 촛불은 밝혀야 한다. 가슴에 지펴야 한다. 그리고 손과 발
신축년(辛丑年)을 두고 ‘흰 소’의 해라며 행운(幸運) 운운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누런 소’면 어떻고, ‘검은 소’면 어떻다는 것인가? 좋은 인사말을 건네는 것에 동의하면서 신축년(辛丑年)의 한자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신축(辛丑)의 신(辛)을 한자 사전에서는 매울 신, 고생 신 혹독할 신 등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 문자적(여자적)으로만 해석하
체코 출신 ‘리다 바로바’는 1975년 독일로 건너가 단연 최고의 배우가 되었으나, 오랜 와병생활 끝에 2000. 10. 27일 86세를 일기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된다.나치홍보 영화 제작에 직접 관여했던 ‘리다’는 그의 미모에 반한, 나치 정권의 핵심인물이었던 유뷰남 ‘괴벨스’와 눈먼 사랑에 빠져 최고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지난 호 계속)(2) 화환(花環), 위로금(慰勞金) 봉투 등의 기재위로금(慰勞金) 봉투에 기재하거나, 화환 등에는 전 호의 위로의 말을 참고로 하되, 필자의 경우는 ‘부활신위’[復活信慰, 부활의 믿음으로 위로 받읍시다(합니다)], ‘부활소망신위, [復活所望信慰, 부활소망의 믿음으로 위로 받읍시다(합니다)] 하는 내용을 주로 사용한다. 간혹 ‘성안신위’[聖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님 잘 믿고 이 땅(세상)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자녀)의 복을 누리다가 종국에는 ‘죽었다’는 등의 표현으로 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별 관심 없이 전통문화의 장례식(葬禮式) 틀 속에 생명[生命, 생동(生動)하는 신앙(信仰)]의 기독교를 죽음[사망(死亡)]에 가두어 놓았다. 물론 전통문화 가운데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은 많다. 하지만 기독교
승귀(昇貴)와 승천(昇天)애서 승(昇)이라는 같은 문자로 번역되었으나 그 의미는 전혀 다르므로 용어(用語) 사용에 주의가 요구된다.개혁파 신학은 신인(神人)인 중보자의 위격을 승귀의 주체로 하면서도, 승귀가 일어난 것은 인성이었다고 강조한다. 신성은 비하나 승귀가 불가능하다(중략) - 복음서의 기사는 그리스도의 비하 다음에 승귀가 뒤따랐음을 밝히 보여 주고
오보, 왜곡, 가짜 뉴스 등의 범람은 혼란, 악(惡)의 승(勝)으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 생명존중, 진실, 정의, 선, 도덕, 윤리, 행복관 등을 왜곡시킨다.영화 ‘NARCOS(나르코스)’에서 ‘미합중국 법무부 마약단속국(DEA) 요원’은 한계를 느꼈지만 굴하지 않고, 마지막 결단을 결행한다. 정의의 실현이라고 할까? 나름 바람대로 권력자들, 마약조직은 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