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글 하나가 감동을 주었다. 이 글은 가족의 소중함과 이웃 친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도 남았다. 특히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상담해온 필자는 진정한 이웃과 친구, 가족이 몇 명이나 될까 곰곰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재벌회장이 있었다. 이 회장은 기자와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회장은 기자에게 "오늘 저녁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19’바이러스 집단감염의 진원지로 한국교회가 언론의 몰매를 맞았다. 그것은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이 ‘믿음’을 내세워 이웃을 생각하지 않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매일 텔레비전 브라운관에 비춰진 일부 교회 목회자들의 모습은, 한마디로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운 보도였다. 군포·
온몸에 멍이 든 채 병원에 실려 온 16개월 입양아가 끝내 사망했다. 이 아이는 죽임을 당하기 전까지 학대당한 의심 신고가 수차례 있었다고 각 언론매체가 보도했다. 문제는 죽임당한 아이에 대한 어떠한 실질적 조치가 없었던 것에 안타깝다. 국민들은 어떠한 조치가 있었다면, 살릴 수 있었다는 안타까운 생각을 하며, 분노하고, 경찰서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제
사람은 평생을 걱정하면 하루하루를 산다. 한마디로 인생은 살 어름판 위에 있다는 애기다. 그 만큼 사람은 하루도 쉬지 않고, 걱정을 하며 산다는 것이다. 자식걱정, 생계걱정, 사업걱정, 남편걱정, 나라걱정, 교회걱정 등등 걱정 속에 산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근심걱정 모두 내려놓고, 모두 내게 와서 쉬라고 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근심걱
인간은 누구나 가다가 힘들면, 쉽게 포기한다.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의 결말은 훤히 보인다. 우리 속담에 “가다가 못가면 아니 간만 못하다”는 속담도 있다. 큰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포기 할 줄도 알아야 한다. 실패 할 것이 훤히 보이는데, 앞만 보고 가는 것은 문제이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현장서 닥치는 유혹을 포기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
지난 8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가정폭력 처벌 강화를 청원하는 글’이 올라 왔다. 올해 2월부터 사실혼 관계인 30대 남성으로부터 상습폭행에 시달인 20대 여성이 올린 이 글에는 “저는 살고 싶다. 저는 아이를 온 마음으로 지키고 싶은 엄마”고 소개하면서, “가정에서 일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범죄에 비해 약하게 처벌되는 것이 현실이다”고 적고, ‘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1)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신종바이러스 감염증 ‘코로나19’으로 인해 국민 모두가 곤궁한 삶을 살고 있다. 요즘처럼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을 때도 없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완전한 피조물인 인간의 행복을 위해 천지를 창조하셨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관리하고, 본전 할 의무가 있다. 헌데 인간은 탐욕과 욕망에 길들여져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도전한다. 그 결과 인간사회는
내가 너를 위해 희생한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 세상은 희생하는 사람이 있어야 아름답다. 한사람의 희생은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유익을 가져다가 준다. 문명의 발달과 이기는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 몰고 있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사고가 나면, 일단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그것은 모두가 이기주의자로 변했기 때문이다. 한사람의 희생을 통해 공동체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나를 위해 산다. 너를 생각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공동체의식이 결여됐다. 쉽게 신종 바이러스 감영증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있다. 우리가 마스크를 쓸 수밖에 없고, 써야만 한다. 우리가 마스크를 쓰는 이유는 공동체를 보호하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쓴다. 마스크는 이제 국민 모두의 생활이 됐다. 문제는 마스크를 쓰는 이유에 대
사람은 누구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희망을 갖는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미래가 없다. 삶의 의미도 없다. 칼뱅은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불우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으로 예정돼 있다”고 예정론을 말했다. 칼빈은 또 이 예정론에서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면서, 지옥에 갈 것인가. 아니면 천국에 갈 것인가에 대해 예정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오늘 우리사회는 예수님이 강조한 ‘인정공동체’, ‘사랑의 공동체’가 해체되고 있다. 그것은 인간 모두가 탐욕과 욕망에 갇혀 나의 마음을 열어 너를 받아드릴 수 있는 인정, 아니 사랑이 메말라 버렸기 때문이다. 가족 역시 부모 중심의 가족제도가 핵가족으로 변화되면서, 인정넘치는 가족공동체, 사람공동체를 찾아보기 힘든 세태가 되었다. 이런 상황서 SNS를 통해
하나님나라의 주인공인 우리의 아이들은 왜 계모, 계부, 부모에 의해 학대를 받으면서, 살아야 하는가. 계모의 학대에 의해 아이가 죽임을 당한지 얼마 안 돼, 이번에는 계부의 학대에 시달리다가 목숨을 걸고 탈출한 9세 소녀의 이야기가 국민들을 공분에 휩싸이게 했다. 이 소녀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살인에 가까운 학대를 당했다는 보도. 이 소녀는 이틀 동
우리의 아이들은 부모에 의해서 학대를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또 한명의 아이가 계모의 학대로 세상을 떠났다. 이 소식을 들은 국민 모두는 공분을 일으켰다. 국민들은 울었다. 검사도 울었다. 죽임 당한 아이들의 아우성 소리는 하늘에 사무쳤다. 이 아이는 여행용 가방에 7시간 감금됐다. 심 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그는 결국 3일 만에 사
“아름다운 입술을 갖고 싶으면 친절하게 말하라. 사랑스러운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보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네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눠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싶으면 하루에 한번 어린이가 손가락으로 네 머리를 쓰다듬게 하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너 혼자 걷고 있지 않음을 명심하며 걸어라. 사람들은 상처에서 치유되어야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봄 가몸이 계속됐다. 어제(8일)는 비가 내려 대지를 촉촉하게 적셨다. 창가로 들려오는 비의 소리는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가 주었다. 서재에 앉아 있는데 몇 년전에 돌아기신 아버지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마침 어버이날이라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했던 추억을 하나하나 더듬어 보며, 성경 신명기 5장 16절과 에베소서 6장 1~3절을
4월은 장애인의 달이며,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다. 제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시각장애인 김예지 당선인 안내견 ‘조이’의 국회 본회의장 및 상임위원회 회의장 출입에 대해 “당연한 것”을, 논의를 벌였다는 것 자체가 안타깝다.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이며, 미래한국당 김예지 국회의원 당선인은 국회법 제148조 “의원은 본회의 또는 위원회의 회의장에 회의 진
사람은 누구나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스승, 좋은 친구, 좋은 사람을 많이 가지는 일이다. 인간관계의 포인트는 정직과 이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감사한 생활을 해야 한다고 목회자들로부터 설교를
때론 두 눈으로도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희생이다. ‘코러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는 요즘, 이름 없는 하얀 천사들이 대구를 향해 달려가는 것을 보고, 이들의 희생정신과 봉사정신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19‘바이러스로 인해 대구시민들을 돌봐줄 수 있는 의료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자원한 백의의 천사와 의사들의
오늘날 도시에서 살다가 농촌마을로 귀농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중 상당수가에 농촌마음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시로 다시 돌아온다. 그들의 이야기를 빌리면 농촌마을 주민의 텃세 때문에 정착하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같은 알을 한다. 그래서 요즘은 온촌도 각박해졌다고 말한다. 분명한 것은 농촌마을도 사람사는 세상이며, 도시도 사람사는 세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