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계절을 맞아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과 예수님의 한량없는 사랑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본다. 그리고 골방에 앉아 묵상하며, 예수님이 가신 길, 가시밭 길을 묵묵히 따라 가겠다고 다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사 죄악 속에서 죽어가는 불쌍한 인간을 살리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명하신대
이제 2019년 마지막 달인 12월이다. 12월 첫날은 주님의 날이자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완성을 이루시고자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시는 성탄의 계절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고 온누리에 평화를 이루시기 위하여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 대속의 제물이 되시고자 아버지의 명을 받들고 평화의 왕으로 오실 우리 구주되시는 아기 예수님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장 32절) 온 세상을 평화를 주기 위해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절,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다. 분열과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오늘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금년도 성탄절은 화해와 평화의 기쁨이 온 누리에 가득하기를 소망하면서, 이 글을 전개한다. 작금의 정세를 바라보면, 이 사회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 또한 말은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기도 한다. 하지만 말이 악한 영향력을 나타내 이웃에게 해를 끼치기도 한다는 사실. 말 한마디가 행복을 불러오고 불행을 불러오기도 한다. 심지어 말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이처럼 말은 우리의 삶속에서 인간상호간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 우리가 하루를 보내면서 나의 하루의 생
우리는 곤궁한 사회에 살면서, 현실적인 일들을 회피한다. 분명한 것은 창조적인 일에 관심을 갖고,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경쟁사회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 오늘 우리사회를 보면, 부자 부모를 만나고, 돈이 있어야만 인류대학에 가고 출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상위 1퍼센트는 부모의 직업을 대물림 한다. 이제 귀족노조에 속한 자들도 직
“하나님. 이 나라 이 민족을 한번만 불쌍히 여기시고 한번만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간곡히 애통하며 기도하오니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이 하나님을 알게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모르는 저들이 자유민주주를 훼손치 못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주여! 이 나라를 굳건하게 지켜 주시옵소서.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모든 자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쌓아 나라를 반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차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에베소서 6장 10절-12절) 사람은 자기의 자리를 잘 지켜야 한다.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말로는 쉬워도, 참
옳고 그름을 떠나 급진보 세력의 반란을 보는 듯 하다. 조국의 뻔뻔스러움도 도를 지나치고 있다. 나라를 온통 시끄럽게 하고 있는 장본인이 조금도 미안함 없이 미소를 지어가면서, 끝까지 해보겠다고 버티고 있는 것은 참담하다. 설사 죄가 없다고 해도 대다수의 국민이 내정 자에게 반대를 하면, 국가의 평안을 위해 물러서는 것이 옳은 자세라고 생각한다. ‘사필귀정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덕목은 겸손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겸손하면 흥하고 교만하면 망한다"고 교훈하고 있다. 겸손하게 되면 남을 배려하고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온다. 겸손하면, 내 이웃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도 우러나온다. 더불어 살아가는 이 사회는 겸손함으로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고 베풀며 사랑을 나눌 때
일본의 아베정부는 미국의 눈치를 보며, 바짝 엎드려 스스로 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미국이 양해를 구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미국 트럼프에 대해서 배신감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위험에 처하든 말든 미국에만 안 쏘면 된다는 이기적인 행위가 아닌가? 국가가 외교적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미국의 눈치를 볼 수
우리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인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한다. 국민 모두는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있음을 굳게 믿는다. 또한 해외에 있는 국민인 780만 디아스포라 역시 조국 대한민국을 사모하고 사랑하며 살아간다. 간악한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고 있는 국내외 우리 국민들의 모습이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일부 친일 수구세력들의 경거망동한 망언을 듣노라면, 울분이 치밀
36년간 온갖 탄압과 수탈을 당하며 인간취급 받지 못하고 짐승취급을 받으며 악독한 일제하에서 노예같이 살아온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 해방된지도 어언 7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기조차 싫지만 우리 민족의 아픔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독일은 전범국가로 잘못에 대해 눈물로 용서를 구하며, 지금까지도 전범들을 법으로 다스리고 있다.
우리민족은 매우 곤궁한 처지에 놓였다. 요즘 같으면 힘없는 나라가 원망스럽다. 왜 우리는 튼튼하고 강한 나라를 만들지 못했나를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우리민족은 힘이 없기 때문에 정치적 메시아를 대망해 왔고, 대망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 아래서 그랬다. 지지리도 못난 이씨 왕조 말에는 가난한 백성들이 새로운 나라를 갈망하며, 능력 있는 정치지도
한일간 무역 갈등으로 인해 나라의 경제가 어렵다고 말한다. 여기에다 비정규직 파업,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또한 자립형 사립학교 취소를 둘러싸고, 사회적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또 일본 아베의 경제보복을 일으켰다며, 친일세력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위해서 봉사하라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우리는 종교적 관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인들의 태도에서 잘 안다. 유대인 600만명을 학살하는데 히틀러 혼자서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시 유럽인들은 “유대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장본인이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 ‘관념’이 유대인 600만명을 학살했다. 오늘 한국의 그리스도인은 남과 북을 적대적으로
오늘 한국교회는 민족 분단과 군사적 대립관계를 방치하면서 평화를 기도하고, 노래할 수 없다. 그럼에도 오늘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공 예배 기도와 골방기도에서 평화통일을 위해서 기도한다며, 허공을 친다. 이런 기도는 헛소리요 거짓말이다. 행동하지 않는 기도이다. 한국교회의 침묵은 비성서적이며, 반 그리스도적이다. 예수님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
한민족에게 있어 6월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잔인한 달이다. 6월25일은 동족상잔의 첫 시발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날을 잊을 수 없고, 이 상처를 씻기 위해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위해서 봉사하자”고 노래를 부른다. 6.25한국전쟁 69주년을 맞은 한민족은 더 이상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멈출 수 없다. 특히 한국교회는 분단의 현장에
이는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또한 대통령과 여당은 야당이 막무가내로 발목잡기에 급급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먼저 국민과의 약속을 이행하고 야당과 대화로 협조를 구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소통이 아닌 불통이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야당이 어떨 때는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황당한 주장도 하고, 역사인식이 결여된 막말도 쏟아내지만,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디모데후서 3장 16-17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상대를 쓰러트리기 위해서 온갖 권모술수를 다 부린다. 이것은 나 혼자 살겠다는 것이다. 세상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다. 너와 나, 그리고 그가 함께 사는 세상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지도 39년이 되었다. 그런데도 조사위원회조차도 꾸리지 못하고 있다. 민족해방과 함께 남북한이 분단 된지도 74년이 지났다. 오늘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