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에게 힘이 주어 질 때가 있다. 그 이유는그 힘을 잘 쓰라는 말이다. 내가 받은 힘으로 모멸감을 줄 수 있다. 이것은 힘을 잘못 쓰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모멸감을 주면, 폭력지수가 올라간다. 모멸감을 안으로 참고 삭이면, 비굴해진다. 비굴이 쌓이면, 최악의 경우 죽음을 선택한다. 모멸감이 밖으로 드러나면, 상대를 향해 폭력을 행한다. 나를 향하든, 너를 향하든, 모멸감은 폭력으로 드러나게 된다. 사회학자 김찬호가 쓴 “모멸감”이라는 책은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이 모멸감”이라고 말한다. 서로 모멸감을 주고 받으며 살
하나님의 정직을 고집하다가 회사 문을 닫고 망한 것도 일종(?)의 순교라고 믿는다. 그 같은 순교의 피가 우리 한국교회와 사회에 필요하다. 그래야만 교회가 다시 살고, 우리나라가 다시 살 것이기 때문이다. ‘정직한 자의 형통’이라는 열매를 맺기 위해 우리는 ‘정직한 자의 고통’ ‘정직한 자의 억울함’ ‘정직한 자가 바보 됨’ ‘정직한 자의 실패’ ‘정직한 자의 눈물’ ‘정직한 자의 망함’이라는 피를 이 땅에 뿌려야 한다.아이러니(irony)하게도 일제 때 죽으면 교회를 지킬 수 없다는 생각으로 신사참배를 한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리
낙엽이미지떨어지는 무게는 잴 수 없다가을의 저울로 재기 전엔중량은 미지수다눈금에 새겨지는 순금의 순도그런 무게와 빛깔쯤으로낙엽은 진다어쩌다 중량미달의 낙엽 하나그러나 그 속엔가을의 무게가 들어 있다 * 박진환 시인 : 문학박사 한서대학교 교수(역) 예술대학원 원장. 동아일보 신춘문예 《조선문학》 주간. 한국문학상. 펜문학상. 문덕수문학상 등먼저 시어는 은유라는 걸 서로 동의하여야 한다. 일단 낙엽은 비유이고, 시인이 원래 뜻(本意)은 숨겨두고 낙엽으로 둘러대서 말하고 있다고 전제해야 한다. 문학 용어로는 본의를 원관념이라 하고, 비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발생합니다. 우리는 그 어려운 일을 고난이라고 부릅니다. 아이들도 어른과 같이 나름대로 고난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도 어떻게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으로 고난 극복의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방법에는 성공과 실패가 있으나, 실망하지 마시고 믿음으로 계속 노력하면, 성령님께서 도와주셔서 자신도 모르게 고난 극복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어 신뢰와 자신감과 확신을 갖게 될 것입니다. 어린 자녀가 어려운 일이 발생 하면,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 부
오늘 세계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피조물들이 죽임을 당하고 있다. 죽이고 주이는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 전쟁은 힘없고 나약한 사람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결코 아니다. 힘 있는 자들에 의에서 일어난다. 이들은 자신의 아성을 쌓고, 자신의 욕망을 지키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백성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오히려 백성을 방패로 전쟁을 일으킨다. 여기에 주변국들이, 아니 힘 있는 강대국들이 개입하고 있다는데 주목해야 한다.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는 예측하는 이들이 많다. 이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에 서
프란시스 베이컨에 따르면 오래 묵을수록 좋은 것이 있다. 오래 말린 땔나무와 오래 묵어 농익은 포도주, 믿을 수 있는 옛 친구, 그리고 읽을 만한 원로작가의 글이다. 이처럼 오랜 세월 가진 풍파에도 견뎌내며 오늘에 이른 것들의 가치는 값으로 매길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계에도 오래된 친구가 있다. 바로 벼랑 끝에 내몰린 한국교회의 위기 극복을 위해 개혁과 갱신의 목소릴 높이고, 두 팔 걷고 하나님 나라 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이다. 2012년 11월 4일 교계 언론 홍수 속에서 우려와 걱정 속에서 돛을 올린
오늘 세계는 전쟁과 기아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피조물들이 죽임을 당하고 있다. 또 인간이 하나님께 도전한 결과로 인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자연재해로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고 있다. 기아와 전쟁, 재해는 모두가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고,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기대어 살지 못하는데서 비롯되었다. 인간 모두는 탐욕과 욕망에 길들여져 자신과 가족의 이익만을 위해서 일한다. 하나님에게 충성하지 않고, 자신에게만 충성한다. 성경은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소외된 사람이나 모두가 함께 나누며, 함께 어울리고, 평등의 공동체를
「무엇이든지 다 파는 가게」라는 이름의 가게가 있었다. 한 사람이 찾아와서 가게 주인에게 말했다. “권력과 명예를 사러왔습니다. 돈은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주인은 웃으면서 말했다. “얼마든지 드리지요. 그런데 우리 가게에서는 구하는 것을 그대로 드리지 않고 다만 씨앗으로만 드립니다. 이 씨앗을 가져다가 정성껏 잘 가꿔보세요. 그러면 당신이 원하는 권력과 명예를 얻게 될 것입니다.”카페 브랜드 중에 ‘Coffee Smith’가 있다. ‘Smith’는 영어 동사 ‘smite’에서 나왔다. ‘때리다, 내리치다’의 뜻이다. 원래 Smi
기후 위기는 올여름 기록적인 장마를 통해 우리에게 가슴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극한 기후’라는 말을 남기며 인간의 예측을 넘어서는 재해로 많은 이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식물도 고지대로 혹은 위도가 높은 지역으로 이동하며 기후 위기의 고통 가운데 있다. 이처럼 창조세계의 신음과 고통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자녀인 우리에게 큰 도전이다. 이는 외면하거나 방임할 수 없는 숙명적으로 대처할 과제이다. 창조세계의 회복과 보전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지구를 위해서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꼭 감당해야 할 사명이다.급변하는 지구
최근에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충격과 반전의 드라마를 쓴 이는 아마도 한국의 여자 배드민턴 선수인 안세영(21)일 것이다. 세계 랭킹 1위인 그녀는 결승전에서 세계 3위 천위페이(중국)를 2대 1로 제압하고 아시안게임 2관왕에 올랐다. 첫 게임은 이겼지만 막바지에 슬개건 부상을 입어서 두 번째 게임에 패했다. 모두들 세 번째 게임에서 질 거라는 예상(안 선수의 어머니와 일부 관중은 게임을 포기하라고 외쳤다)을 깨고 압도적 기량으로 21대 8로 이겨서 기어코 금메달을 따냈다. 그녀는 경기 후에 “오른쪽 무릎이 '딱' 소리가
최근 우리 사회에서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문제가 대두되면서, 이에 동조하는 기부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승만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지난 7월 발족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기부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이승만 대통령은 지금까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었다. 이 나라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하고, 6.25전쟁의 참혹함으로부터 이 나라를 지킨 것만으로도 초대 대통령으로서 엄청난 기여를 한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변변한 기념관 하나 없다는 것은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고, 벌써 했어야 할 일이 아니었나? 그런데 문
‘중동의 화약고’로 불리는 이스라엘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가 수천 발의 로켓포를 발사하며 일으킨 유혈 충돌이 전 세계를 긴장케 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대대적인 보복에 나서면서 충돌이 일어난 지 수 일 만에 벌써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확산 양상으로 치닫고 있어 우려스럽다. 이슬람 무장세력인 하마스는 무고한 민간인을 살상하고 납치했다는 것만으로도 반인륜적 만행이란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이스라엘의 보복성 반격이 정당방위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가 지지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분쟁이
지구가 인류를 공격하고 있다. 이것은 어느 영화의 소재가 아니다. 작금 우리에게 닥친 현실이다. 바로 인간의 이기가 불러온 기후위기가 부메랑이 되어 인간의 목줄을 쥐고 있다. 지구 곳곳에서 홍수와 지진, 해일이 일고 있으며, 매일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것에 따르면 수천, 수만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정말 기후위기의 칼날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기후위기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지구온난화의 경고를 들어왔고, ‘인류종말시계’의 바늘이 12시 방향을 향해 가리키는 것을 보고 또 봤다. 수치상 이제 90초
갈수록 출산율이 낮아지고, 이에 반해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비율이 높아지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가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1.0%도 채 되지 않은 0.78%로, ‘인구소멸국가 1위’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다. 정말 두 손 놓고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다가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암울하다. 천만 중 다행으로 정부와 지자체, 기업, NGO 단체 등이 두 팔 걷고 나서서 저출산 극복을 위해 다방면으로 애쓰고 있지만, 수치상 드러나는 결과는 참담하다. 정부의 예산에 더해 기
목회자 아니 그리스도인 모두는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예수님 당시 안식일법과 정결법은 생활전반에 파급되어 있었다. 안식일법과 정결법은 가난한 자, 병든 자, 불결한 직업을 가진 직장인들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속시켰다. 그 중에 예수님과 충돌의 계기가 된 것은 식사 전에 손을 씻는 것이었다. 손 씻는 것은 제사 전에 사제가 제사를 집행하기 위한 사제법에 근거한 것이었다.이것은 종교적 권위로써 제재하는 법규가 되었다. 오늘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도 바리새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은지. 일부 목회자들은 법과
성경 잠언 10장21절에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어 죽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허버트 스펜서는 “의 목적은 인격의 형성이다”고 했다. 교육은 인간의 삶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평생 교육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린아이에게서 배운다는 말도 있다. 10월2일은 노인의 날이었다. 노인의 날은 1997년 오늘 대한민국을 만든 어르신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감사하며, 오늘 사회분제 중 하나인 노인문제들을 점검하고, 새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제정되었다. 노인의 날을 맞아 어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 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 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 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출 16:4)인도가 원산지인 가지는 우리의 몸에 가장 필요하면서도, 하찮은 먹거리로 생각한다. '동의보감'에 가지는 신라시대에 재배와 생산에 관한 기록이 있다. 미루어 보아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가지를 재배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는, 1년생 초본식물이다. 6. 7, 8, 9월에 자주색의 통꽃이 핀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혼란스러운 것 중의 하나가 음식에 관한 규제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상고해야 할 내용이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이나 광야에서 음식에 관한 규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다시 말하면 영혼 구원에는 음식에 관한 규제가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애굽에서 구원받고 광야에 나왔을 때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규례를 주셨는데 그것이 시내 산에서의 계명이다. 계명 가운데 신 14:2-3에는 하나님의 성민에게 음식 문제가 등장한다. 즉 하나님의 성민으로 택하였기 때문에 가증한 것을 먹지
밥보다 더 큰 슬픔크낙하게 슬픈 일을 당하고서도굶지 못하고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하는 일이,슬픔일랑 잠시 밀쳐두고 밥을 삼켜야 하는 일이,그래도 살아야겠다고 밥을 씹어야 하는 저 생의 본능이,상주에게도, 중환자에게도, 또는 그 가족에게도밥덩이보다 더 큰 슬픔이 우리에게 어디 있느냐고. 슬픔의 크기를 측량할 수 있을까? 혹은 슬픔의 무게를, 슬픔의 넓이를 가늠할 수 있을까? 사람이 느끼는 슬픔은 저마다 달라서 어떤 슬픔이 더 큰 슬픔인지 알 수 없다. 각자 자신이 겪은 아리고 쓰라린 어떤 사연이나 사건으로 슬픔을 느낀다. 그때마다
최근에 가나안 교인(교회 안나가)단체 책임자와 장시간 식사와 차를 나누면서 한국교회의개혁을 주제로 심층적인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그단체 책임자가 가나안 교인들이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에게 던지는 직설을 함축해보면 다음과 같다1.교회는 거룩하고 교회 밖은 속되다"는 생각은 중세적 이원론의 무지다.교회의 집회,기도,찬송은 거룩하고 사회의 미팅,대화,노래는 속되다는 생각도 마찬가지다.성속 구분은 아니다.사랑과 정의로 사는 일상의 삶은 모두 거룩하다.2.뒷 배경이전혀 없는 목회자가 대형 교회 목사가 되는 건 하늘의 별따기다.평생 노력해도 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