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소설가이며, 시인인 톨스토이(Leo Tolstoy,1828~1910)는 “를 내면 주위의 사람들은 많은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상처를 입는 사람은 바로 를 내는 당사자이다”고 했다. 성경에도 “무슨 일에든지 때와 판단이 있으므로 사람에게 임하는 화가 심함이니라”고 기록되어 있다.울화병이라 불리는 ‘화병’은, 분노와 같은 감정이 해소되지 못하여 의 양상으로 폭발하는 증상이 있는 병을 말한다. 화병은 모든 병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오늘날 우리사회에 웃음치유가 등장하기 시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시편 9장8절)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 정직으로 인간을 판단하시고, 공의로 심판하신다. 헌데 인간들은 하나님의 공의로 잊고 생활한다. 그래서 인간은 가야 할 길에서 이탈해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들은 불의에 대해서 눈을 감아주고, 진리의 길에서 이탈 할 때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진리를 끊임없이 찾아 나선 순례자이다. 타조는 위기에 처하고, 적이 가까이 다가오면
동물에게는 말을 주지 않았지만 사람에게 말의 기능을 준 것은 그 말대로 갚아 주시기 위한 목적이다.(마12:36~37)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어떠한 입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본문으로 증거한다.1. 진리의 법이 있어야 됨(5~6상반절), 많은 사람이 설교를 하고 있지만 그 입술에 진리의 법을 떠나서 말하게 될 때는 하나님께서는 응답의 역사를 내리시지 않는 것이다. 강단에 보좌 위에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내리는 것이 없다면 그 교회는 거룩한 교회가 될 수 없다. 교회라는 것은 강단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의 법을 바로 가르
고슴도치선인장울고 싶을 땐그냥 울어라 내 딸아울음을 너무 참으면네 몸뚱이가 눈물단지로 변한단다네 영혼이 가시방석으로 변한단다내 딸아울고 싶을 땐 그냥 울어라너무 오래울음을 참으면사막과 결혼하게 된단다얼마나 더 견뎌야 잎이 가시로 바뀔까?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친 선인장이다. 비가 거의 오지 않는 황량한 사막에서 산다. 거기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길은 초록잎 대신 가시를 선택하는 것이다. 선인장은 온몸에 가시를 잔뜩 품고 있다. 제 몸에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해서다. 살기 위해 긴 기다림 끝에 잎이 가시로 바뀌었다. 사람이나
미국의 석유업계 억만 장자로 유명한 진 폴 게티(Jean Paul Getty, 1892~ 1976)는 “인간이 함을 받기 위해서 기도할 때, 혹은 남을 할 때보다도 더 아름다운 순간은 없다”고 했다. 그렇다 용서는 아름답다. 용서가 없는 삶은 적대적 관계만이 조성된다. 용서가 없는 삶은 나의 마음을 열어 너를 받아드릴 수 없다. 생각만 해도 얼마나 상막한가(?) 그래서 용서는 사랑만큼이나 중요하다. 예수님도 용서를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하라”고 용서를 강조했다. 성탄의 계절이다. 성경은 “장차 오실 메시아는 충신
합 2:2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며 이 묵시를 명백하게 새겨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는 것인데, 그 이유는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는데 그것이 종말이라는 것이고, 종말은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한다는 것이다(합 2:3). 즉 재림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고, 세상 끝 날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문제는 종말 때는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그 속이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이고, ‘다만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기 때문이다(합 2:4). 여
최근에 경기도 신도시에 소재한 한 대형교회에 출석하는 교회 장로와의 대화 중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목사님! 교회에서는 그 교회가 부흥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목사의 설교가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가 여부와는 상관없이 ‘예수 믿으면 무조건 복을 받는다, 병을 고친다, 부자가 된다, 출세한다, 무병 장수한다’ 이런 설교를 해야 교인들이 좋아하고 은혜 받았다고 하고 이런 설교를 하는 목회자가 있는 교회가 부흥합니다.”이런 연유에서 기인된 것인지 한국교회 목회자들만큼 교회 강단에서 “복을 받으라”는 설교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자녀 양육에서 어떤 사람들은 ‘조건’이라는 단어를 상당히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조건적 사랑’을 우리 사회에서 매우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입니다. “공부를 잘하면 엄마와 아빠가 얼마나 좋을까?, 엄마의 말을 잘 들으면 착하지, 밥을 잘 먹으면 예쁘지, 스마트 폰을 안 하면 엄마는 행복하겠다.” 등의 표현은 자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행위에 따라 사랑을 주기도 하고 거두기 때문에, 사회와 달리 가정에서는 조건적 사랑이 자녀 양육에 부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2022년 카타르 월드컵도 토너먼트에 돌입했다. 대한민국도 최선을 다했지만 16강서 세계 최강 브라질을 만나 4대 1로 석패를 당했다. 비록 8강 진출은 실패했지만, 정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뛰어준 선수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또 선수들과 함께 고난의 길을 걸어왔던 감독과 코치 등 스태프들에게도 격려의 말을 건넸다. 이제 우리 선수들이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고개를 들고 입국해 세계무대에도 주눅 들지 않고 보여준 선전에 기쁨을 만끽하길 바란다. 사실 대한민국은 10회 연속 본선무대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지만, 이번 월드컵에서 강호
1)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주님,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친밀한 개인적인 이름인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심으로써 하나님이 우리의 이름을 아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심으로 우리를 온 지구공동체 안에 위치시키며, 우리로 하여금 신비롭고 거룩하신 하나님과 만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가 우리의 창조주, 그리고 모든 창조 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창조자, 유지자,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함께 아버지라고 부르고 찬양
강서구 마곡지구에 있는 강일교회는 탄소중립 창조회복교회 만들기 운동의 일환으로 캠페인을 실시하면서 교인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2022년 교회의 핵심과제로 삼아 시작한 은 “감소, 탄소, 행복”의 머리글자로 탄소중립 실천을 목표로 한다. 이에 본 교회는 설교뿐 아니라, 홍보 게시물을 제작하여, 각각의 교인들이 생활 속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것을 스스로 체크하도록 돕고 있다. 다음은 필자의 교회에서 실천하는 차원의 몇 가지 실천적 사례를 소개한다.1. 창조질서회복에 관한 관심을 갖고 기도한다
오늘 우리는 ‘정이 없는 사회’를 살고 있다. 인정이 메말라 당최 ‘감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오죽하면 캠페인으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외치고 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이웃과 나눌 줄 알며, 이웃의 아픔에 함께 동감하고 함께 울어주던 민족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세계 경제 10대국가를 내달리는 오늘, 감사와 배려는 반비례하고 있다. 1등만을 강요하다가 보니 나머지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더 이상 감사와 배려가 넘치는 따뜻한 사회를 볼 수 없다는 점에 억장이 무너진다. 솔직히 오늘 ‘감사’는 물질에만 국한되어 버
변혁의 2022년도 이제 한 달 남짓 남았다. 많이 느슨해졌기는 하지만 여전히 코로나19로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이 지속되고 있으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치며 세계 경제는 물론 대한민국의 경제상황은 매서운 찬바람이다. 한국교회 역시 유례없는 위기를 맞고 있어 교회의 존립마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순 없다. 위기를 극복하고 일어서 아픔과 고통에 처한 사회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은 바로 잃어버린 대사회적 신뢰회복에 있다. 그 길만이 오늘 사면초가에 빠진 한국교
하나님이 계신 곳이 성전이다. 그런데 과거나, 지금이나, 초월적인 하나님은 인간에 의해 성전에 갇혀 버렸다. 분명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면서, 세상을 초월한다. 하나님을 교주화시킨 유대교는 초월적인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성전화하여, 하나님을 건물 안에 가두어 버렸다. 성전을 절대화 했고, 가진 자, 기득권자,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으로 만들어 버렸다.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던 사마리아인은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도 예루살렘에 가지를 못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에 교회를 건축하고, 하나님을 만났다. 유대인들에 의해 갇혀
사회주의 지식인으로서 인권 운동과 노동 운동가로 널리 알여진 헬렌 켈러은 "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만질 수 없는 것을 느끼며, 불가능한 것을 성취 한다"고 말했다. 성경 이사야 21장4절에는 "내 마음이 어지럽고 두려움이 나를 놀라게 하며, 희망의 서광이 변하여 내게, 떨림이 되도다"고 기록되어 있다. 희망이란 단어처럼 좋은 단어는 없다. 오늘 많은 사람은 희망이 있는가를 묻는다. 오늘 우리가 기대어 사는 사회는 그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다. 희망이라는 것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시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삶을 포기한
그리스도교 문학에서, ‘성서’ 다음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여 지는 신심 서적, ‘준수성범’의 저자인 토마스 아 켐피스는 “하나님은 항상 하는 자에게, 복을 주 시며, 그의 축복을 교만한 자의 손에서는, 거두시나 겸손한 자에게는 언제나 허락하신다”고 말했다.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 로다”(시 136:25),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잠 3:9~10) 11월
농촌에서 뽕나무를 재배하던 아모스를 들어서 부패한 이스라엘의 멸망을 말할 때 오늘 본문에는 천하만국을 벌하는 날에 알곡을 모아서 다윗의 왕국이 다시 이루어질 것을 말한 것은 심판과 새 시대를 가르친 것이다. 이제 알곡을 모아서 다윗 왕국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데는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1. 범죄한 나라를 지면에서 멸함(8), 하나님께서 천하에 복음을 전한 것은 목적이 죄를 없이 하자는 것인데 첫째는 사람의 몸에서 죄를 없이하고 다음에는 교회 안에서 죄를 없이하고 다음에는 지면에서 죄를 없이하는 것을 심판이라는 것이다. 아모스가 받은
끼 니환한 저녁때였다눈 속에서 눈을 맞고 있었다펑펑 내리는 눈은 아니었고사그락사그락 내리는 눈이었다눈이 쌀밥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시밥 시밥 시밥혼잣말로 시밥이란 단어를 되뇌고 있었다한 끼니가 눈이 부시게거리를 데워 주고 있었다이게 다 밥이야 시야한 알 한 알 잘 익은 밥알들이모락모락 거리의 사람들이눈발을 쐬고 있었다배가 고파 왔고시가 고파 왔으므로이마저 한 끼니의 꿈이었다누가 시인을 꿈꾸는 자라고 했던가. 낮에도 꿈을 꾸는 사람은 밤에만 꿈을 꾸는 사람이 놓칠 수 있는 수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고 한다.(애드가 알렌 포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양식이 얼마나 많은가.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생명의 만나로 주셨다. 목자는 이 생명의 만나를 양들에게 나누어 주는 사명을 가진 자이다.목자는 양을 회복시키는 일을 한다.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겔34:15-16) 양은 밥만 먹고 사는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중략)/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마태복음 25장31-41절)성경은 자극히 자은 자를 돕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