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소경이고 귀머거리가 된 지도자를 향하여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라며(마 23:13) 소경이요 귀머거리가 된 지도자는 천국 문을 닫는 자라는 것이고, 오히려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자이기에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이다.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이 고전 15:3-4절로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며 성경대로 죽고
골탕 먹인다는 말은 상대방에게 크게 곤란한 상황을 일으키거나 손해를 입히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 성경 십계명에는 2대 정신이 있다. 그것은 “가난한 자가 없게 하라.” “억울한 자가 없게 하라”이다. 이 십계명의 정신은 다른 사람의 약점을 이용해서 “상대방을 골탕 먹이지 말라”는 뜻이다. . 성경은 이런 악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목회자들은 어떤가? ? 만약 내게 힘이 주어진다면 상대방을 골탕 먹일 기회가 주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때 나는 그런 충동을 참고 절제할 수 있는가? 물론 우리가 목회자이지만 죄
부모들은 “자녀가 어릴 때, 바른 행실을 가르쳐야 늙어도 그 바른 행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잠22:6)”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 외에 조부모와 친척들과 관계를 맺으며 성장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조부모와 친척들이 자녀 양육에 긍정이나 부정의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자녀의 양육은 부모가 믿음과 기본 원칙에 일관성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부모 외에 다른 사람에게 자녀 양육을 맡기거나 다른 사람과 접촉하는 상황을 유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부모의 책임을 대신할 수 없고,
지난 11월 셋째 주일은 한국교회가 매년 지키는 ‘추수감사주일’이었다. 그런데 한해의 농사를 끝내고 그 수확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추수감사절’이 어느 때부턴가 한국교회엔 특별헌금을 거두는 날로 그 의미가 변질되고 있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한국교회의 ‘추수감사주일’은 아메리카 신대륙 개척자인 청교도들의 ‘추수감사절’과 깊은 연관이 있다. 1620년 9월16일 102명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고난의 항해를 시작했다. 이들이 영국을 떠나 미지의 신대륙으로 향한 건 오로지 신앙의 자유를 찾기 위함이었다. 두 달
2008년부터 시작된 녹색교회 운동이 2022년이 되면서 제주도를 포함해 전국적으로 102개가 되었다. 코로나 등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서도 생태와 자연을 돌보고 탄소 중립을 위한 기후 교회는 이 땅의 모든 생명을 살리는 최후 최선의 일이 되었다. 녹색교회는 물론 한국의 모든 교회가 이제는 탄소 중립을 위한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하고, 그 실천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필자가 섬기는 쌍샘자연교회가 녹색교회로서 탄소 중립을 위해 하는 일 몇 가지를 소개해 본다. 먼저 기본이랄까 정신은 ① 생태 영성 ② 생명 자연 ③ 생태 문화와 공동
기후 위기 시대, 우리 교회가 기후변화로 크게 신음하며 하나님의 자녀를 기다리고 있는 피조물의 고통에 공감하며, 그 사랑을 ‘탄소중립’으로 드러내기 위하여 ‘창조회복교회’는 다음과 같은 행동에 집중해야 한다. 첫째, ‘배우고 연결하기’다. 탄소 감각을 살려 말씀을 다시 묵상함으로, 탄소배출을 줄이고, 기후 위기에 즉시 영향을 받아 무너질 수 있는 기후 약자를 위해 기도하고 또 돌본다. 이는 본격적 기후 행동을 위한 바탕을 마련하는 것으로, 자신들이 얼마나 거대한 탄소발자국을 남기고 있는지 살피게 한다. 둘째, 성도들이 전등 끄기나
서울 이태원 참사로 156명의 젊은이가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고 140여 명이 다쳤다. 테러나 건물 붕괴사고가 아닌 서울 도심 한복판 길거리에서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는 참사가 벌어졌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정부가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다음 날부터 일주일간을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한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핼러윈 데이’를 앞둔 주말에 유흥을 즐기기 위해 이태원에 갔다가 당한 사고에 왜 전 국민이 애도해야 하는지 납득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희생을 당한 사람들이 무슨 목적으로 그곳에 갔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10일 지났다. 10일 동안 국민들은 희생자에 대해 애도하며, 이들의 아픔에 함께했다. 교회도 희생자를 위한 기도회를 드리는 등 이들의 아픔에 동참했다. 헌데 일부 목사들은 마귀들의 장난이라며, 이와 관련된 글을 SNS를 통해 퍼 나르기 바쁜 10일이었다. 심지어 어느 목사의 입에서는 북한공산당이 개입한 참사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태원 참사에 국가도, 공권력은 없었다. 국민의 안위를 책임져야 할 공권력은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었던 국민의 절규를 외면했다. 책임자들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골든타임을 보냈다.
서울 한복판에서는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과 참사가 발생했다. 이태원 사고로 희생된 분들과 불의의 사고로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어버린 유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이 있길 바라고, 부상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분들의 빠른 치유를 기원한다. 한동안 잠잠했던 대형인명사고가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도 역시 인재다. 안전 불감증이 불러온 안타까운 사고다. 아직 꽃도 제대로 피워보지 못한 어린 청춘들이 비명횡사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후 맞은 핼러윈 행사이기에 분명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됐던 일인데, 미리 대처하지 못한 관계
믿기 힘든 일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졌다. 핼러윈을 맞아 이태원을 찾은 젊은이들이 폭 5m에서 3.2m 밖에 되지 않는 좁은 골목에서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잃었다. 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오전 6시 기준 사망 156명, 부상 197명 등 사상자가 총 353명에 이를 정도로, 너무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우선 희생자들과 그 가족, 그리고 부상자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넘치길 소망한다. 돌이켜보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일인데도, 이번에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고 말았다. 숱한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구약시대의 사사는 외적이 침입하면 장수가 되어 적과 싸우고, 백성들의 송사를 공정하게 재판하는 일을 했다. 사무엘이 늙어 두 아들에게 사사의 자리를 물려줬다. 그러나 이 두 아들은 돈을 받고 재판을 하는 등 신성한 사법제도를 문란케 했다. 이 때 원로들과 장로들이 모여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달라고 애원했다. 이들은 왕을 세워 강력한 나라가 만들어지기를 원했다. 사무엘은 왕에게 집중되는 왕을 세우는 것을 원치 않았다.“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여호와께서 사무
사람은 누구나 삶의 현장서 여러 가지 유혹을 받는다. 어떤 때는 돈의 유혹을 받고, 또는 명예에 대한 유혹을 받는다. 인간은 삶의 현장서, 유혹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 성경은 유혹의 욕심은 썩어져가는 구습이라고 했다. 인간은 구습에 갇혀 있으면, 새로운 세상으로 나갈 수 없다. 우리는 오늘 삶의 현장서 많은 사람들이 구습의 유혹에 빠져 낭패를 보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엡 4:22) 그렇다. 우리는 어떠한 유혹으로부터 해방되어야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 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 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 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출 16:4)는 상심 상심자 상실 오들개로도 알려져 있다. 뽕나무 열매이다. 는 달콤한 맛이 인상적이다. 간식이 귀하던 예전에는 아이들의 간식거리로 정말 인기가 많았다. 가 열리는 뽕나무는 가구(로 사용이 되고 잎은 누에의 주식이며, 상황버섯은 뽕나무에 서식한다. 은 식품과 약재로
꽃은 길을 멈추고만난 적 없는 시인의 부고를 받았다컴퓨터 옆에는 그녀가 남긴 백매도가 펼쳐져 있고나는 햇볕이 떠나간 시간을맨발로 밟고 있는데그 시간 그녀가 죽었다누구는 죽어라 견디고누구는 죽도록 사랑하고누구는 죽음을 껴안고 가던 길을 멈춘다신의 가호가 당도하기 전에사람들은시퍼런 이름을 지운다어제 꽃을 피운 매화 나무가 오늘 꽃잎을 떨구고어제 서 있던 자들이오늘 꽃잎 속에 눕는다떠나는 것에 익숙한아주 잠깐의 우리는살아서 죽고죽어서 산다 꽃들이 떠나간 길가에 산 사람들의 피눈물이 서린 꽃과 편지들이 쌓여 있다. 먹먹하고 답답하고 안타깝
사실 염소는 상대적으로 강하기 때문에 꼭 목자에게 붙어 다닐 필요가 없다. 양은 무한 약하기에 꼭 목자를 따라다녀야 하고, 그나마 혼자 다니지 못하고 떼를 지어 다녀야 한다. 성경은 염소가 길을 잃었다는 말씀이 한 번도 없다. 항상 양이 길을 잃는다. 짐승에게 잡아먹히는 것도 양이다. 다른 짐승에게 다 있는 공격용, 방어용 무기도, 보호색도 없다. 다른 동물이 공격하면 속수무책이다. 그저 생존을 위한 딱 한 가지 방법은 죽으나 사나 목자를 따라다니는 것뿐이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간
사람이 살아가면서, 쓸데없는 일에 도전하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발견 할 수 없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성공하는 것에 대해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미래를 바라보고 도전하는 일에 대해서는 매우 인색하다. 도전하지 않으면,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는다. 사람을 믿고, 격려하고, 신뢰하면, 새로운 것이 나온다. 기초과학은 이런데서 튼튼하게 다져진다. 오늘 출세만을 위한 경쟁사회에서는 새로운 것을 기대할 수 없다. 오늘 성적순으로 줄 세우기 교육은 학생들의 정서를 피폐하게 만든다. 학생 간에 존중하고, 격려하는 것이 아니라, 급우,
계 6:17절을 보면 ‘진노의 큰 날 앞에 누가 능히 설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큰 날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살펴보면 계 14:1절에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라며 진노할 때 십사만 사천이 어린양과 함께 서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십사만 사천이 누구인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데 사 13:5절을 보면 ‘무리가 먼 나라에서, 하늘가에서 왔음이여 곧 여호와와 그 진노의 병기라 온 땅을 멸하려 함이로
한국목회임지연구소 설립 후 14년동안 필자는 다양한 교단의 교회들, 특히 교회분쟁, 목회자와 교인들 간의 갈등으로 진통을 겪고 있는 교회 중직자들의 상담요청을 받고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그런 이들 중에는 “제발 우리교회 목사가 교회를 사임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흥분하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하였다. 그런 이들로부터 무슨 이유로 자기 교회의 목사가 사임하기를 원하는지 진지하게 청취한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1. 하나님보다는, 세상에서 지위가 높고 돈이 많은 성도를 더 신뢰하는 것 같은 목사.2. 기도하지 않고
부모는 자녀가 인간 중심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삶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제자가 되도록 양육해야 합니다. 마16:24절에 예수님은 제자인 시몬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부인을 자아 포기, 자아 부정, 자기 파쇄 등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자기를 부인한다’라는 뜻은 먼저 자신의 의지와 뜻을 부정하고, 자신의 욕구와 육체의 유혹을 허락하지 않고 단호히 물리치는 행동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사단의 권세를 섬겼던 자녀라서, 육체의 유혹에 따라 마음에 원하던
탄소중립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매스컴에서는 연일 탄소중립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학생들의 교육과정 중에도 탄소중립에 관한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이상기후로 발생하는 수많은 자연재해로 인해 탄소중립 운동은 단순히 슬로건을 넘어 인류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필수과제가 되었다. 각국의 정부는 물론이요, 기업들도 서둘러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경영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는 기후 위기가 우리의 실존적 삶을 위협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단면일 것이다. 이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