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와 알타이어계와의 관계19세기의 우랄 알타이어족과 가설은 주로 이들 언어 사이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몇 개의 현저한 구조적 특징에 입각한 것이었다. 국어의 우랄 알타이 계통설은 이들의 구조적 특징이 국어에서도 확인됨으로써 제기된 것이었다. 그 공통특징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음조화와 문법적 교착성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구조적 특징 위에 세워
Ⅰ.체형 및 인상, 인성또한 체형(體刑) 및 인성(人性)에 있어서도 한·몽 사이에는 매우 친연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몽골 노인이 피워 문 곰방대와 주름진 얼굴에서 한국인의 정감을 느낄 수 있고 몽골 어린이의 반점은 같은 핏줄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몽골인들은 우리와 외양이 비슷할 뿐만 아니라 기질 또한 비슷한데, 특히 술을 마시고 떠들고 농담을 잘하는 것
전반부에서는 민속, 주거문화 등의 요인을 중심으로 풍속학적 전제(1)를 살펴보고, 이를 기점으로 후반부에서는 체형, 인상 인성 및 음악성 등을 비교해 봄으로 풍속학적 전제(2)를 살펴보려 한다. 풍속학적 전제(1)우리 민족은 인종상으로는 황인종에 속하고, 언어학상으로는 알타이어계에 속하며, 풍속학상으로는 빗살무늬토기를 만들어 쓰던 시베리아, 몽고 지역의 신
한민족이 이동에 관련해서 중국으로부터의 이동설, 일본으로부터의 이동설, 인도아대륙으로부터의 이동설 등을 살펴보고 그것들이 가진 사실성과 허구성을 살펴본다.1.몽고로부터 이동설한국인들은 대체로 북아시아 지역의 종족과 문화에 원초적으로 깊이 연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초등학교 교육으로부터 한국인은 몽골로이드 계통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에, 북아시아 여러 종족
1. 언어의 생성많은 학자들은 인간이 언어를 어떻게 처음으로 만들어 쓰게 되었으며 어떻게 발달시켜 왔는가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왔다. 그런데 언어는 석기나 다른 유물처럼 흔적을 남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어의 발생이 언제부터인지를 알려주는 직접적 증거가 없다.그러나 약 200만 년 전 혹은 약 500만 년 전의 초기 인류에 의하여 만들어진 석기를 볼 때 그
전반부에서는 지리, 풍속, 언어 등 예측 가능한 3가지 방법에 대한 성격적인 전제는 과연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후반부에서는 그러한 예측 가능한 전제의 실제 중에서 특히 언어적 방법에 대해서, 언어의 생성, 뿌리시기의 언어습득, 그리고 언어 계통과 비교 방법 등을 알아보자.우리나라 역사의 원본이라 말하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열기를 보면 단군까지 역사(연대
단군 문제에 대한 민속학의 견해우리는 아주 일찍부터 깬 민족으로 석기시대부터 다른 지역에서 이동하여 들어와 요동과 한반도에 제일 먼저 정착했던 주인이다. 10만 년 전, 그 당시 빙하기의 영향을 받은 민족 대이동으로 요동과 한반도 일대에 인간이 거주했다. 그때 어떤 인종이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동양미술학자 코벨은 백인종인 코카서스 인종도 있었다고 주장한
4.단군신화 인간의 출현단군신화는 인간의 출현에 대한 설명도 하고 있다. 인간인 단군은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과 지상의 곰의 교합에 의하여 출생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출현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하늘에서 내려온 신과 동물의 교합에 의한 것으로 합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한 것이다.5.단군신화의 제 사상단군신화에는 종교사상, 정치사상, 사회사상도 압축해서 나타
단군 문제는 신화의 베일에 싸여 있어 지금까지도 많은 논란을 주고 있다. 전설의 주인공이냐 사실이냐!단군 숭상은 우상숭배냐 조상숭배냐 등의 의견이 분분하다. 이에 대하여 국론이 분열되고 감정대립까지 일어난다. 더욱이 북한은 단군을 국조 그 이상의 「신」으로까지 모시려는 일이 있기에 단군 문제는 그 복잡성을 더해가고 있다. 우리는 단군 문제에 관
탈해의 결혼탈해에 대한 소문은 신라의 제2대 임금인 남해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남해왕은 탈해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왕의 맏딸을 탈해에게 시집보내었다. 이리하여 탈해는 왕의 사위가 되었다. 하루는 탈해가 동악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몹시 갈증을 느꼈다. 탈해는 백의라고 하는 사람을 시켜서 마실 물을 떠오게 하였다. 백의는 뿔로된 잔을 들고
옛날 우리나라의 남쪽에 용성국이란 나라가 있었다. 항상 따뜻하고 살기 좋은 곳이어서 늘 평화롭게 살아가는 나라였다. 어느 해에 함달파가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올라 더없이 기쁘고 즐거웠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대를 이을 왕자가 없었다. 그래서 왕비는 새벽이면 누구보다도 먼저 일어나 하늘을 향해 빌었다.“천지신명에게 비나이다. 저에게 왕자를 낳도록 은혜를
탈해왕 9년 봄 3월, 호공은 대궐에서 밤늦게까지 일을 보고, 자기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호공의 집은 반월성 넘어 서쪽 마을과 나무가 우거진 숲을 지난 곳에 있었다. 이 숲은 너무나 우거져 대낮에도 무시무시한 느낌을 들 정도였다. 호공은 늘 길동무 삼아 하인을 데리고 이 곳을 지났다. 이날도 호공은 긴장한 채 시림 앞을 지났다. 밤이 깊어 조용했다. 하
성씨가 생기기 이전에도 우리의 조상은 분명히 한반도에 살고 있었다. 그러기에 오늘 내가 있고, 앞으로 가문을 이어갈 후손이 있는 것이다. 성씨는 한문이 들어오면서, 보편화되었다. 성씨는 이미 언급한대로 삼국시대에 생겨났으며, 성씨가 보편화된 것은 고려 문종왕 떄부터이다. 그러기에 족보 없는 조상이 지구촌에 살고 있었다. 삼국시대 그 이전인 마한
외국에도 성씨제도가 있다. 미국을 비롯한 영국, 이탈리아, 독일, 스위스, 브라질 등은, 원칙적으로 아내는 남편의 성씨를 따르는 것이 통례이다. 그러나 법률로 강제성을 가지고 구속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을 그대로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남편의 성을 사용할 수도 있다. 러시아의ㅏ 경우는 여자가 남편의 성를 따르는 것이 통례이다. 그러나 법률로는 부부가 서
우리나라의 성은 약 270성이다. 하지만 중국은 우리의 20-44배인 5.600-11.969성이고, 일본은 우리의 무려 488배인 13만2천성이다. 왜 이런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것은 최초의 씨(시조)를 성으로 하여 본관으로 분화한 성씨제에 있어서 한 단위의 성씨 집단은 곧 특정한 종족집단을 이루고, 최초의 시조(씨)를 그 후손들이 고수한다는 점에서 기인
한민족의 성씨의 알기 전에, 먼저 중국의 족보를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성은 중국과 똑같이 한자로 표시한다. 그것은 중국에서 먼저 성씨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우리나라 성씨의 기원을 한자가 들어온 시기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중국은 성씨를 최초로 나타난 때를 모계사회 시대로 보고 있다. 성이라는 글자가 갖는 뜻이 그러하듯 성의 출현을 여자, 즉 아
가계론적 입장에서의 한민족 족보 성서에 나타난 족보들의 특징을 기초로 한민족 족보의 특징과 항렬 등을 대상으로 한 가계론적인 입장에서의 족보는 이름의 유래, 이름의 법칙, 족보의 파에 대한 유래, 족보 본관의 유래 등 4가지의 특징이 있다. ◆항렬의 가계론적 구조…항렬, 이름의 유래는 한자의 의미와 항렬에 따라 이름을 짓는다. 즉 혈족사이의 상
◆성서에 나타난 족보의 특징…지금까지 뿌리인 ‘고향’, ‘어머니’, ‘아버지’에 대해서 서술했다. 그 뿌리는 계속 이어져 조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그것을 기록한 것은 ‘족보’이다. 성경에는 수많은 족보가 기록되어 있다. 아담의 족보, 야곱의 족보, 이스라엘의 족보, 왕의 족보, 예수님의 족보 등등이 나온다. 신약성서는 예수님의 족보에
지금까지 우리의 뿌리인 고향과 어머니에 대해서 서술했다. 이제부터는 또 하나의 뿌리인 아버지는 성을 갖게 한 분이다. 분명 어머니는 나를 낳아 주셨다. 그런데 ‘씨받이’ 함으로 어머니의 뱃속에서 열 달 동안 길러주시고, 나를 세상에 나오게 했다. 더 근본적으로 생각하면, 나의 또 하나의 뿌리는 ‘씨’인 아버지이다. 때문에 아버지는 엄마와 함께 가족공동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