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알렌, 한국 땅에 들어오다1884년 9월 20일, 제물포 항에 알렌 선교사 (Horace N. Allen, 1858-1932)가 도착하였다. 한국 개신교 선교의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진 날이다.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훗날 한국에 들어오는 모든 후배 선교사들은 1884년을 한국 개신교 선교의 최초 기준점으로 삼았다. 알렌은 정식 선교사로서는 허락을
해묵은 감이 있는 책들이 쌓여 있는 위치에서 노랗게 변색 되어있는 책(세계를 움직이는 100인”이란 1987년 1월호 신동아 별책부록)을 한 권 꺼내보았다. 이 책은 나로 하여금 과거를 통하여 작금의 우리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칼 발트(Karl Barth)’에서 ‘위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등 현대 신학자들은 “신학의 사명은 변하지 않
예수님은 화해자이며, 중재자이고, 위로자였다. 목사인 필자 역시 예수님의 길을 걸으면서, 화해자, 중재자, 위로자의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분열이 있는 곳에서 화해시키고, 갈등과 다툼이 있는 곳에서 중재하며, 상처받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위로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려고 작게나마 노력했다. 헌데 예수님의 길을 걷는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 화해자, 중재자
아가서 2장 4절에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 왕의 잔치에 초청을 받는다. 그 잔치에 들어오기까지 왕궁의 많은 솔로몬의 여자들이 술람미 여인을 시기, 질투해 어떻게든 잔치에 오지 못하게 하려고 엄청난 음모를 꾸민다. 그러나 솔로몬왕은 칼을 잘 쓰는 자 60인으로 하여금 술람미 여인을 지키게 한다. 결국, 술람미 여인은 잔치에 들어왔고, 고백하게 된다. “아! 이
‘불법 총기류를 소지했다’는 혐의로 필리핀 교도소에 억울하게 구속됐던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소속 백영모 선교사가 2년 7개월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백 선교사의 사건은 지난 2018년 6월 그의 부인이 ‘우리 남편 선교사가 안티폴로 감옥에 갇혔어요’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내면서 알려지게 됐고, 이른바 ‘셋업’ 범죄로 의심되면서 전 국민의 관심을 촉발시켜 20
사회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큰일을 하고 이바지하고자 뜻을 품었다면 정도(正道)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정직하게 바른길을 걷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악한 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선한자들을 괴롭히고 무너뜨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것에 악으로 갚지 않고 끝까지 용서하며 바른 길을 갈 때 여러 고난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하물며 하나님의 사람들도 좁은
성경에 대한 도올 김용옥 교수의 잘못된 주장을 바로잡고, 지성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올바른 성경 지식을 알려줄 『진짜 예수-도올의 잘못된 성경관 바로잡기』(박명룡 지음/출판사 누가)가 상•하 두 권으로 출간돼 화제다.기독교변증가로 청주서문교회 담임 박명룡 목사가 써 내려간 『진짜 예수』는 도올의 잘못된 성경관을 바로 잡는 것
3.1만세운동은 한 세기를 지나 2년을 맞았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천왕을 섬기는 일본은 하나님의 공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일본의 경제보복과 ‘코로나19’로 인해 곤궁한 삶을 살고 있는 국민들에게 새로운 나라에 대한 희망의 한줄기 빛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3.1만세운동이 피압박 민족에게 새로운 세상, 새로운 나라, 하나님나라에
이른 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복수법(lex talionis)은 한 동안 잔인하고 미개한 피의 복수라 여겨왔다. 하지만 보복의 악순환을 막기 위한 법정신의 진보로서 법의 역사에서 의미 있는 발걸음이었다.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 법전에 뿌리를 둔 이 법은 그보다 3-4세기 이른 우르남무(Ur-Nammu) 법전과 비교하면 차이가 두드러진다.우루남
미국 북장로회가 중국과 일본과 인도 선교를 시작한 이후에, 한국에 대해서 선교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은 1883년에 이르러서다. 일본 주재 선교사들이 본부에 보낸 편지 가운데 선교사 파송의 가능성들을 최초로 상의하고 있었음이 들어있다. 특히, 한국인으로 조정의 신임을 받아서 일본에 유학하고 있던 이수정 (李樹廷, 1842-1886)에 관련된 소식이 녹스 선교
사람들이 옛이야기를 할 때 고생한 이야기를 주로 합니다. 어려서 나무 베고, 풀 베는 등 고생한 이야기, 군대에서 고생한 이야기 등을 하지, 즐거운 이야기는 잘 하지 않습니다. 시편 90편 10절에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 인생의 자랑이 ‘얼마
어느 신부님이 강론 속에 나는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내가 죽을 때 “ 그는 숟가락 몽둥이 하나밖에 없드라”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누어 주고 또 나누어 주어도 양복이고 무엇이고 늘어나니 고민 입니다.” 라고 말하여 장내의 웃음을 이끌어 냈다. 물론 그 웃음은 모두가 흐뭇해하는 평안의 웃음이었으리라. 나 역시 그의 말에 많은 것을 생각지 않을
불현듯,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가 생각난다.“비 올 때 쓰고 나온 우산을,/날이 개었다고 어딘가에 버려둔 것처럼,/세상살이가 쉽지 않았을 때/한껏 몸을 기울여 기대고 있던 친구를,/그사이 좀 살만하다고 해서 잊고 있었다”늘 이런 식이다. 일이 잘 풀려 내 자리가 편안할 때는 만나는 사람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아 까마득히 잊고 산다. 오랜만에 전화 통화
한국교회의 현상에 대해 같은 말을 여러 번 하였어도 소귀에 경 잃기와 쓴 소리로 여겼으리라고 본다. 물론 한국교회가 일제 침략과 6,25와 정치적인 격변과 역사의 부침을 통해 할 일도 했던 종교인 것도 사실이다. 교회 존재 기준이 바로 성경에 있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를 세운 본체이며 그가 짊어진 십자가는 세상 만민들을 구원하는 표준임도 안다. 사도행
요즘처럼 매스컴, 인터넷 매체를 통해 여러 소리를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사는 것이 마냥 좋은 일일까? 세상의 불법 소리, 타락의 소리, 무너지고 넘어지고, 쓰러뜨리는 죽음의 소리가 참 많이 들려온다. 믿음의 사람들이 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생명의 소리에 민감해야 하는데 우리를 무너뜨리는 소리에 민감해져 있진 않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사순절을 맞이하여 지금
한나는 자식을 낳지 못해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하여 아들을 얻은 인물이다.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는지 엘리 제사장이 한나의 기도 소리를 듣고 술 취한 줄 알 정도였다. 엘리 제사장이 아이를 낳고싶어하는 한나의 심정을 알게 되었고, 한나에게 믿고 가라고 한다. 엘리 제사장의 그 말을 믿고 돌아간 한나는 정말 그대로 아들을 낳는다. 또 아들을 주시면
대전충남지역 민주화운동의 대부 우야(牛野) 유영소 목사가 14일 오전 4시 57분 만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1926년 5월 6일 충남 보령에서 출생한 유 목사는 하나님을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한 평생 민중과 함께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 예수님의 삶의 현장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여기에는 늘 소외되고, 가난하고, 병들고,
본문은 예수님이 열두제자를 선택한 후 전도 여행을 보낸 이야기이다. 또한 핍박받는 일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의 말씀이다. 성도의 삶은 전도의 현장이며, 치열한 영적 전쟁의 현장이다. 오늘날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야 할 우리가 알아야 할 진리가 본문에 있다.양은 매우 온순하고 풀만 뜯어 먹는 아주 연약한 동물인 반면, 이리는 사납고 포악하고 육
모세는 시내산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두 번째 언약에 집중한다. 놀랍게도 그가 내려올 때 얼굴에서 빛이 났다. 아론과 온 이스라엘은 두려워 모세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그의 광채는 ‘야웨와 말씀을 나누었기’ 때문이다(29절). ‘광채가 났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동사 ‘카란’(ןרק)이며 자동사다. 앗시리아어 카르누(kar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원 선교학 교수 드러리 박사는 「장로교인의 파노라마」라고 하는 특별한 선교역사 보고서를 출판하였다. 미국 연합장로교회가 1802년에 선교부를 결성한 후로 1952년까지, 무려 150년 동안에 걸친 미국 장로교단의 선교역사를 주요한 교단의 사건들과 신학적인 논쟁들을 겸하면서 상세하게 기술한 책이다. 1802년에 장로교회 총회에서 각별하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