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 지구촌 곳곳으로 전파되고 있지만, 오직 진리로 생명력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있을까? 세상풍토와 상관없이 흔들리지 않는 반석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야 하는데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신앙인이 많다. 이것은 잘못된 신앙관이다.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항상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하나님을 불신하며 원망했던 모습을 우리는 말세에 거울삼아 경계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나와 수르광야에 들어가서 사흘길을 건넜지만 물을 얻지 못했다. 마라라는 곳에 이르러 물을 만났지만 써서 식수로 사용할 수 없자 모세를 원망했다.
우리는 육신의 옷을 입어서 모든 이는 육신의 것을 먹고 살면서 육체의 일을 하고 이 세상에서 수고와 땀을 흘리며 뭐든 잘되고 자녀들도 성공하고 육신도 건강하기를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어딘가 모르게 불안하고 미약한 것을 느끼면 신의 존재를 찾는다. 그런데 그 신의 존재가 세상에는 너무 많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는 진리를 만났고, 진짜 신을 만났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며 주인이신 하나님을 말이다. 그런데 무지한 인간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북어머리를 실타래에 연결해서 식당에 걸어놓기도 하고,
알렌의 원래 의도는 병원과 의학을 가르치는 학교를 함께 설립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의학교가 추가로 생기고, 이곳에서는 해부학을 비롯해 생물, 화학 등 의학과 관련된 기초학문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런데 한글로 서양 의학을 가르칠 사람이 없었다. 교과서도 역시 한글로 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 학생들은 영어부터 배워야 했다. 한글로 배워도 쉽지 않은데 낯선 언어로 의학 공부를 하니 어려운 것은 당연하였다. 중도에 포기하는 학생도 많았다고 한다. 결국 의학교 첫 번째 기수에서 의사가 된 사람은 없었고, 제중원 운영에 대한 선교사측과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 하리로다”세계적인 발레교사인 빌헬름 브르만은 “은 인생을 감미롭게 해주는 것이지, 결코 힘겨운 짐이 아니다.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는 자만이 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 우리 옛말에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성서도 마찬가지이다. 노동의 가치와 인식은 기술적(경제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인식론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노동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가치와 인식이 달라진다. 아쉽게도 노동에 대해 우리가 갖고
토라를 율법으로 번역한 것은 알렉산더의 영향이 크다. 70인역이 토라를 그리스어 ‘노모스’(no,moj)로 번역한 것이다. 일반적인 법과 규율을 의미하는 노모스를 구약, 특히 오경의 교훈에 적용하여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정신으로 풀이한 것이다. 구약신학사전에 의하면, ① 토라의 뿌리는 ‘던지다,’ ‘쏘다,’ ‘놓다’ 등의 야라(הרי)에서 유래한 말이다(삼상 20:20; 삼하 11:20; 호 6:3). 즉 화살을 쏘면 쭉 뻗어나가는 것에서 교훈, 방향이라는 뜻으로 확장된다(창 46:28; 잠 6:13). ② 사역동사로 쓰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서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사도 바울을 위해 변호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딤후4:16)”좋을 때는 따르는 사람도 많고 그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막상 재판장 앞에 섰을 때는 아무도 곁에 없다는 것, 그것이 사도 바울의 서글픔이었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반드시 혼자 가야할 곳, 아무도 따라와 줄 수 없는 곳이 있습니다. 수술실 바로 앞까지는 가족들이 따라오지만
갑신정변은 한국 근대사에 역설적인 사건, 즉 아이러니한 사건이었다. 우선 서양 문물의 도입을 미룬다며 수구파를 제거하려고 당시 20대의 소장 지식인들이 일으킨 혁명이었다. 그런데, 자신들은 정변의 실패로 죽음을 당하고, 귀양을 가게 되었지만, 정작 그 후에 나라는 개화파가 염원한 대로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세속 정치가들의 야심적인 정변은 실패했지만, 수구파의 거두로 지목된 민영익은 엉뚱하게도 서양 의사 알렌에 의해 생명을 구했다.정변이 실패하여 영의정의 아들 홍영식은 참살 당했으나, 정작 그의 집이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으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대한민국장’ 훈장 수여와 함께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 무한 감동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제2베트남…20년 아프간 전쟁 이렇게 끝났다”(중앙일보. 2021. 8. 16 조간), “무능한 정부, 탈레반에 나라 넘겼다”(국민일보. 2021. 8. 16 조간) 등으로 신문들의 1면 탑에는 ‘홍범도 장군’에 대한 기사에 시선을 돌릴 틈이 없을 정도로 ‘아프칸’ 소식의 보도로 가득 채워져 있다.국민 대다수는 ‘아프칸’이 어디 붙어 있는 나라인지도 모르며 ‘시리아’ 등과 같이 내
오늘 아르바이트노동자, 택배노동자들에 대한 인권문제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 이런 상황서 편의점에 갔다가 아르바이트에게 다짜고짜 화를 내는 할아버지 한 분을 보았다. 노인이 계산을 하려는데,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다른 사람에게 물건을 찾아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지금 물건을 찾느라고 바쁘니 조금만 기다리세요”종업원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할아버지에게 말했지만, 할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화를 벌컥 내더니 급기야 물건을 던지듯 내려놓고 그냥 편의점을 나가버렸다. 오히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이년 가까이 대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19의 위세가 꺽일 줄 모르고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방역해도 바이러스는 변이와 돌파 감염을 일으켜 방역 당국과 의료진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심지어 해외 파병을 한 청해부대원들이 약 90%(?) 대원이 현지에서 확진되어 군의 사기 진작에 어려움이 따르지 않을까 하는 국민들은 걱정했었다. 사회가 기상천외한 질병으로 인해 가족을 잃은 가족들과 치료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환자들을 위해 한국교회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방역당국에 끌려가는 모습이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밤이 맞도록 산에서 기도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이 기도하셨다는 부분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인데, 왜 하나님이 어디에 기도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가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인성과 신성을 둘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했다. 이렇게 늘 기도하시는 예수님이 밤이 맞도록 기도하고 산 중턱에 내려와 보니 평지에 여러 부류가 모여있었다. 그 평지에서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셨다. 복음은 우리에게 참 기
1922년 엄혹했던 일제 암흑기에 조국 독립과 여성해방을 위해 횃불을 켠 한국YWCA 3인의 창설자(김필례, 김활란, 유각경) 중 김필례 선생이 광복절에 건국포장(建國褒章, National Foundation Medal)을 수상했다.창립 99주년을 맞은 한국YWCA연합회(회장 원영희)는 한국YWCA 창설자인 김필례 선생이 실천적 기독여성으로서 여성교육과 민족자립교육 활동을 통해 우리 민족의 독립과 건국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광복절 건국포장을 수상했음을 알렸다. 김필례 선생(1891~1983)은 일본유학에서 돌아온 후 1916년
올해로 광복 76주년을 맞았다. 민족해방 76년을 맞은 오늘도 대한민국은 해방을 둘러싸고, 분단을 둘러싸고, 정부수립을 둘러싸고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것은 우리민족 스스로 해방을 쟁취하지 못하고, 이웃 강대국의 도움으로 해방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또 남북한 민족이 하나되지 못하고, 76년 동안 남과 북이 분열돼 적대적 관계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때문에 1945년 광복을 반쪽짜리 광복이라고 말한다. 분명한 것은 이웃나라의 도움으로 해방된 대한민국은 해방 당시부터 지금까지 진실공방을 벌여왔고, 지금도 벌이고 있다. 해방 당시부터
순이 씨가 운영하는 카페에는 여기저기 소박한 소품들이 놓여 있다. 오래된 자전거도 세워져 있고 오래된 책들도 꽂혀져 있고 꽃밭에 물주는 물뿌리개도 있다. 그리고 아기자기한 꽃들이 사방에 피어 있다. 신기한 물건도 있어서 “이게 뭔가?”라고 물을 때마다 순이 씨가 대답한다.“우리 오빠가 쓰던 물건들이에요”“우리 오빠가 쓰던 모자예요”“우리 오빠가 영화감독이었거든요. 오빠가 촬영할 때 쓰던 거예요”순이 씨의 카페 공간 구석구석에는 그렇게 오빠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순이 씨의 오빠는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은 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는 제자들이 순교했다. 그 중에 사도 요한도 율법주의자들이 들끓는 가마에 넣어 죽이려 했지만, 끝까지 죽지 않았다. 결국, 요한을 밧모섬에 유배를 시키게 된다. 요한이 육신이 만신창이가 되어 고통스럽게 밧모섬에 홀로 누워있을 때, 예수님이 사도 요한의 영을 주님 보좌 앞에 데려갔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사도 요한에게 명령하시기를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향하여 교회들의 사자에게 이 편지를 전달하라고 하셨다.그 일곱교회 중 하나인 라오디게아 교회는 민중의 소리, 백성의 비위를 맞추는 민주주의를 합류한 교회
“죽으면 죽으리라” 이스라엘 민족이 풍전등화의 상황에 처했을 때 운명을 걸고 용기와 믿음으로 왕 앞에 나아갔던 에스더의 믿음을 기억한다. 민족을 구한 여인의 믿음의 뒤에는 말씀으로 양육한 사촌 모르드개의 신앙이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떠난 징계의 결과로 포로로 잡혀갔던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켜 하나님의 총애를 받은 모르드개의 무릎 꿇지 않은 신앙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은 이 시대에도 찾고 계신다. 하만은 당시 왕을 제외하고 최고 권력자였으며 왕의 엄청난 총애를 받는 사람이었다. 모든 신하가 그에게 무릎 꿇고
우리는 한국교회 초기 많은 선교사들 중 잊지 못하는 헐버트 선교사가 있다. 그는 피압박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선교사 중 하나였다. 한민족의 해방과 광복을 진정으로 바랬다. 많은 선교사들이 일본제국주의 권력 앞에 굴복 할 때 허버트 선교사만은 한민족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양화진 선교사묘역 제일 앞자리에 큰 비석과 함께 헐버트 선교사의 묘역이 있다. 장로교공의회 소속 선교사 대부분은 일제하에서 교회와 국가의 상호불간섭이라는 취지문을 전국교회에 배포했다. 이것은 결국 기독교인들의 독립운동과 의식화를 봉쇄하는 결과를
성막 건축을 위해 조사를 받은 603,550 명은 ‘성소의 세겔’로 각각 은 한 ‘베가’ 곧 ‘반 세겔’ 씩을 드렸다. 스무 살 이상의 이스라엘 남자는 모두 생명의 속전을 야웨께 바쳐야 한다. 부자라고 더 낼 수 없고, 가난하다고 적게 내서는 안 된다. 공동체를 위한 공평하고 정당한 요구다. 그렇다면 ‘한 세겔’이 아닌 ‘반 세겔’을 바치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더구나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는 아무런 흠이 없는 온전한 것으로 드려야 한다고 구약성서는 수차례 강조하지 않은가?(레 22:21; 시 51:19) 먼저 이스라엘의 화폐의
사도 바울이 그의 사역의 끝부분에 이르러 디모데를 세상에 두고 떠나면서 그가 맞게 될 험난한 세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일꾼으로서 그의 사역을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서 디모데전후서를 통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1-2)” 여기서 “
8월 하면 먼저 떠올리는 것은 8·15 광복절이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매우 중요한 역사는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은 일본(왜구)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조약이다. 을사늑약을 시작으로, 일본(왜구)은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뺏는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공포한다. 그해 곧 경술년에 국가가 치욕적인 일을 당했다 해서 경술국치(庚戌國恥)하낟. 또한 한일 병합 조약(韓日倂合條約, 한일 합방 조약(韓日合邦条約), 한일 병탄 조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