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 큰 사랑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환경에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더불어 참으로 즐거운 삶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는 의롭다 함을 얻었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하늘의 기업과 상을 받게 될 자들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이렇게 놀라운
예수님께서는 자신 앞에 다가오는 십자가의 고난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생각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고난의 목적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17:4) 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주님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시겠다는 의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만을 위해 사는 어리석은 사람이 안 되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만을 위해 사는 것 말고 관제와 같이 드려지고 성도들에게 힘이 되는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이 교회 안에서 모든 것을 협력하는 삶을 뜻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향하여 가시는 길을 계속하여 가시면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부름에 즉시로 응답하는 사람들만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좇고자하는 사람은 즉시 예수님을 따라서 가야하지 예수님을 기다리게 할 순 없습니다.주님께서는 베드로의 배에 올라 말씀을 가르치신 후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
주님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주님을 가까이 함으로 오는 즐거움 들이 있지만 우리들은 자신 안에 좌절 할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있을 것입니다. 물질적인 어려움일 수도 있고 육체적인 고통일 수도 있고 사람들을 통해서 오는 것일 수도 있고 여러분 나름대로의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은 좁은 집에서 살다가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갑니다. 우리도 이 몸에 살다가 하나님이 직접 지으신 집으로 이사를 갑니다. 사도바울은 우리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고후5:2) 라고 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구원 받은 성도들은 탄식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손해보험의 특약들 가운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지만 유용한 특약이 교통사고부상치료비 특약입니다. 이 특약은 교통사고로 부상을 당했을 때 운전자, 또는 동승자에 상관없이 자동차사고부상등급표에서 정한 상해등급에 따라 정해진 금액을 보상해줍니다. 최대 1급 1,200만원에서 최소 14급 10~50만원까지 차등 지급되며, 경미한 부상이라도 최소 14급에 해당하기
사람들은 각자의 확신에 따라 살아갑니다. 만약 하늘나라에 재물을 쌓는 것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곳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늘나라에 투자하지 않는 이유는 진정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확신하고 거기에 자신의 인생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그저 취미 생활로 교회에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라면 신앙인 이라 할 수 없는
구약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루시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서 경고하기도 하셨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주변의 적국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사기 말씀은 이러한 내용의 반복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살아갈 때 징계라는 것은 꼭 필요합니다. 성경은 '징계가 없으면 아들
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조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우리가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엡 2:8-9에서는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딤전 1:13-14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려고 다매섹
우리에게 임하는 모든 어려움 이라는 환경들이 주님 안에 있고 복음 안에서 경험되어지는 일들이라면 고통과 힘겨움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능력을 경험하는 현장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즐거운 것입니다. 참으로 모든 선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선교와 전도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전도가 어떻게 되어지는가 하는 것을 주님이 주신 믿음을 따라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 하였습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새 힘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바라본다 라고 하는 것은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합니다. 볼 수 있는 눈이 열리지 않으면 볼 수가 없습니다. “내 눈을 열어 주의 기이한 법을 보게 하소서”[시119:18] 무엇을 봅니까, 단순히 성경내용에 나오는 원리를 보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
성도의 신앙이 믿음 안에서 계속 성장을 해 나가려면 "예수님의 보혈"에 대한 분명한 믿음과 이해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잘 알지 못하고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길을 제대로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에 대한 믿음이 연약해 지면 절대로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보혈 속에는 어떠한 사람도 상상할 수 없는 능력과 기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소망은 부활의 소망이요, 하늘의 기업에 대한 소망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다스리며 영광을 누릴 소망입니다. 이 소망이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은 모든 사람들의 소망은 헛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삶 자체가 무익한 것이요 부활의 소망이 없다는 것은 그 삶이 헛된 것으로 끝
하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을 부르실 때에 거룩하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7)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혼인잔치의 비유를 살펴보면, 청
주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돌처럼 굳어있는 생각 때문에 발생합니다. 마음의 태도를 바꾸어 좀 더 유연하게 사고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에 결코 믿으려고 하지 않았던 사실을 감히 믿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우리의 이상보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정기적인 사귐과 교제를 통해 그분과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이는 조용히 내 마음을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가지는 것입니다. 참다운 사귐은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내가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다운 기도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마치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우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나 우리의 포부나 계획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기회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반드시 주님의 질책과 보상을 기억해야 합니다. 종은 마땅히 종으로서 합당히 일하지 못했을 때 질책을 받게 되며 합당히
주님을 알아간다는 것은 체험적으로 주님을 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그분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얼마나 신실한 분이신지를 경험을 통해서 또한 성경을 통해서 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주님과 동행함으로 주님을 알아갈 수 있으며 다른 성도들의 삶에 역사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통해서 그분을 알아갈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씨뿌리는 비유"를 봅니다. 뿌린 씨가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다고 합니다. 이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 곧 넘어지는 자라고 말씀합니다.(마13:21) 이와 같이 믿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