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5일자 국민일보(인터넷) 기사 중에 “전 세계 목회자 70%가 성경 한 번도 읽지 않는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이 기사 내용을 접하는 신도들과 비록 신자는 아니지만 기독교 신앙에 호의적 반응을 보인 분들에게 적잖은 실망감을 주며, 기독교 선교와 가르침이 약화 되는 현상이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지도자들은 신자들에게 설교나 교육할 때마다 성경 즉 말씀을 읽는 것은 육신의 양식을 먹는 것처럼 영적인 양식을 먹어야 영혼이 건강하고 신실한 신앙생활이 이루어진다고 목성 높여 강조했다. 성경도 안 보는데 다른
기독교 2천 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시작된 그리스도교가 1517년 마틴 루터를 비롯해 개혁가들에 의해 종교개혁이 단행되어 하나의 교회로 되는 듯하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기독교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등 크고 작은 종교단체로 갈라져 각기 정통을 주장하고 자신들이 가장 성서와 십자가에 가깝다고 역설하여 지금까지 유지되어왔다, 여러 개의 교단과 연합회로 갈라진 한국교회의 상황은 아직도 부활절 연합예배가 하나로 기획되지 못하고 각기 이견과 이해충돌로 인해 2023년도 부활절 연합예배도 각기 다른 곳으로 갈라져 드릴 예정
한국 사회에 기독교 색채를 가진 사교나 이단에 대한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교회는 기독교 이단에 대해 대체로 관망하거나 수수방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왜일까? 지금 이단 교주들이 자신 있게 자기가 신이라고 큰소리쳐도 정통교회는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모양새다. 왜 한국교회는 이단들이 기독교의 정통 교리를 벗어나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교주 자신이 곧 신(神)임을 과시해도 뚜렷한 대책을 내어놓지 못하는 것 무슨 이유인지 알 길이 없다. JMS, 만민교회,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 증인회, 등 이
초대교회를 이어온 현대 교회는 명칭과 교리 가르침의 내용은 비슷하다고는 하나 실제 초대교회의 원형과 비교하면 다른 면들이 아주 많다. 천주교 시대와 종교개혁의 과정을 거치면서 세속화된 부분을 도려내고 치료를 한다고 하였으나 세월이 지나자 안타까운 일이지만 옛 종교인의 치부가 다시 살아나서 교회를 구태의연하게 만들어 버리고 있다. 또다시 혁신과 개혁을 외쳐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하였으나 신앙의 좋지 않은 습성을 가진 종교인들이 되살아 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성경은 끊임없이 개혁과 거듭남을 교훈하나 이를 받아들인 교회는 원점으로 돌아
교회 건물에는 건축과 더불어 흔히들 담을 둘러치는 것은 교회 소유의 경계를 알리기도 하지만, 사실은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하기 위한 장애물로도 사용된다. 교회가 과연 벽을 쌓고 담을 둘러치는 이유가 단순히 불필요한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하고 사회 일반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표식인 관계자 외 출입 금지를 알리는 단순한 표식인가 하는 것은 조금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다. 과연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막은 철제 장막과 같이, 또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경을 가로막은 철 기둥 장벽처럼, 아니면 대한민국 휴전선에 설치된 철조망처럼 누군가의 출입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대 교회가 세워진 목적은 영혼 구원과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에 대해 계시하고 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해야 하는 주요한 일은 바로 과부와 고아 그리고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는 일이다. 초대 교회의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소유한 동산이나 부동산 팔은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아두었으며, 사도들은 그 재물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한 끼 식사라도 제공하는 교회와 아예 요일을 정해 배고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있어 마음이 든든하
세상은 사람의 눈에 보이는 면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면이 더 크고 넓고 무한하다. 세상 속에 살아가는 사람은 생명을 가진 동식물과의 생명 자체가 다르다. 사람의 생명은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인 입장에서 이해함이지 타 종교를 믿고 있는 자들에게는 이해를 달리할지도 모르는 견해다. 기독교 이해에 앞서 일반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의 연약함 때문은 아닌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이 발생할 경우 사람들은 사람의 능력보다 더 강한 신의 능력으로 해결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작심삼일이라는 말의 의미를 누구나가 잘 인지하고 있다. 새해가 되면 새롭게 마음가짐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삼 일 지나면 그날이 그날처럼 되고 만다는 의미다. 그것은 생각만 새롭게 한다고 해서 새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새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심령의 변화가 일어나야 함을 말하기도 한다. 한국교회가 새해를 맞이하는 행동 중 하나는 교단이나 연합회에서 주최하는 기도원이나 수양관에 모여서 연합 집회를 통해 새롭게 하는 방법으로 집회를 열기도 한다.그런데 그 집회가 매년 하는 형식적으로 모이는 집회가 아니라 진
기독교는 어떤 우상도 만들지 말고 절하지도 말라고 구약의 율법은 계시로 강조하고 있다. 지난 5일 재단법인 한국기독교 기념관 홍보 및 예수 조형물 및 예수 조형물 착공 감사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먼저 이러한 메머드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선 막대한 예산이 세워졌을 것이다. 또한 그 예산은 결국 한국기독교의 신자들이 부담하는 헌금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신문에 게재된 이러한 기사를 보고 심히 안타까운 심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형 프로젝트를 걸고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왕이면 기독교가 성경이 계시한 신앙의 선을 지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를 영적 양식으로 보고 현대인이 애용하는 음식의 종류로 나누어 본다면, 설교가 올라온 온라인상에 전시된 즉석 제품인 일회용 즉석 밥이냐 아니면 타인이 이미 선포한 내용을 다시 사용하는 찬밥이냐, 아니면 시간이 부족할지라도 설교만큼은 온 정성 들여 조리한 구수한 된장찌개와 같은 따끈따끈한 식사인지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한국교회의 강단을 지배하는 지도자들의 설교 방식이 대부분은 자신의 목양지 영적인 양 떼에게 영양이 가득한 영적인 밥을 제공하려고 애쓰는 자들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개중에는 너무 바쁘고
11월15일자 인터넷 기사 중에 성공회(?) 대전 교구의 김ㅇㅇ 신부가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 동남아로 전용기를 타고 출국하는 대통령을 향해 입에 담지 못할 괴악한 표현을 했다. 그 내용은 윤 대통령이 탄 전용기가 추락하길 바라는 에스엔에스 내용이다. 그것도 “온 국민이 추락을 위한 염원을 모았으면 좋겠다.” 는 악담이다. 이는 일반 국민 중 한 사람이 표현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뽑았든 저렇게 뽑았든 아니면 나와 사상과 이념이 다르던 간에 한 나라의 국가 원수의
지도자들이 교회의 강단에서의 외침 내용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학사 겸 선지자 에스라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면서 백성들에게 강단에서 율법을 강론하였으며, 사도행전에 베드로와 바울은 모인 무리에게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십자가의 복음을 증언하는 모습을 기록으로 보게 한다. 이들이 전한 내용은 모두 율법과 복음의 순수한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오늘 교회 강단에서 외치는 지도자들의 전하는 내용이 궁금하다. 순수한 복음인지 아니면 철학과 윤리와 세상의 학문을 섞은 내용
기독교는 본래 하나인데 세월과 함께 사람들의 이해에 따라 분파되어 한국에만 수백 개의 교파로 갈라졌다. 저마다 자신들이 정통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정통은 단 하나만 있을 뿐인데도 말이다. 교파 분파와 마찬가지로 기독교를 대변하는 신문도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저마다 자신들이 정론지라고 큰소리치지만 사실 진실로 정론을 펴는 신문은 소수임이 스스로들도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중에 기독교 한국 신문이 창간될 때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분들이 조용히 하는 소리가 한 몇 년이나 버틸까라는 의미심장한 수군거림이 있었다. 그럼에
한국교회의 성장과 부흥은 이미 세계적으로 부러움을 사고 있다. 여기까지 오는데 지도자들의 희생과 순교가 있었다. 어렵던 시절에 박봉에도 불구하고 교회 성장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뛰어다니며 심혈을 쏟은 부흥 강사들의 노고는 백번 칭찬해도 모자란다. 이제 한국교회는 세계교회가 부러워하는 초특급교회 건물의 위용을 자랑하는 성장의 롤모델이다. 또한 국내뿐 아니라 국외 선교에도 지대한 관심으로 수 만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여 하나님의 인류 구속의 대업에 동참하고 있다.그런데 자칫하면 이러한 영적 신령한 모습을 세속적인 모양으로 변질시키는 행위
교회가 도대체 무엇 하는 곳이며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다시 한번 성경의 계시를 통해 그 진위를 알았으면 한다. 종교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의 존재를 믿는 삼위일체 신앙을 추구한다. 그런데 기독교가 종교인가 아닌가 하는 논란은 제쳐두고라도 기독교가 왜 세상에 존재하는가에 대한 이해는 지금 교회의 모습 속에서는 그 의미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 현실인 것 같다. 외람스럽지만 기독교나 세속종교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기독교도 세속종교와 같은 모습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기독교는 세상 종교
성경에는 여러 가지 직분들이 있다. 지도자 격인 선지자 예언자 선견자 대제사장 제사장 사도 신자의 반열에 장로 집사 등등의 직분 자들이다. 성경에는 교회를 기독교 교주인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교회는 영혼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몸을 이루고 몸의 머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다. 머리인 예수 그리스도와 몸인 그리스도인이 합하여 몸 된 교회라고 한다. 교회 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이 하나의 유기체임을 성경은 증언한다.그런데 지금까지 교회 하면 구약시대에 보이는 성막, 성전을 지칭하는 중이다. 그러
보이는 세상 속에 있으나 세상과 다른 보이지 않는 세계를 살아야 하는 기독교가 하는 처세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는 뒤로하고 보이는 세계를 귀중히 여기는 것 같은 모양 세다. 그러다 보니 교회도 세속의 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에 안타까움이 더하다. 오늘의 기독교의 형태는 선교 초기 너무 가난하여 우선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하게 여기던 시기에 기독교는 예수님과 가난 퇴치와 연계시켜 세상의 기준으로 가난이 물러가고 생활이 윤택해지는 것에 대한 기대가 컸다. 이러한 신앙이 기초가 되어 부흥회의 주제는 예수님을 믿으면 축복
성경의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부터 알아야 한다. 교회는 보이지 않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영혼 구원을 위한 이해다. 교회는 세상의 죄인을 필요로 한다. 죄 없는 사람은 교회와 상관이 없으므로 그에게는 교회가 무용하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세상에서 추구해야 할 목적은 바로 죄로 죽은 자의 영혼을 구원 하는데 있다. 왜 죄인에게는 구원이 필요한가? 성경은 예수님을 믿지 않아 죄를 용서받지 못하면 지옥에 간다고 하였으며, 반대로 죄인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죄를 용서받아 하나님의 나라인 낙원에 들어간다고 했다.
대한민국의 한반도 남한은 인구에 비례해 좁기도 하지만 오래전부터 동서로 갈라져 한 나라에 두 공화국이 있는 것처럼 보여 저 안타까움이 더하다. 사실 동서의 갈라짐은 지역주민들이 갈라지게 한 것이 아니라 이는 정치권에서 만들어놓은 국경 아닌 보이지 않는 장벽이라할 수 있다. 크고 작은 선거철만 되면 정치권의 유력정치인들은 자신이 지역 출신임을 내세운다. 그리고 00의 아들, 딸이라는 아부성 발언도 거침없이 내뱉는다. 실제 그 지역을 출신도 있지만 조그마한 연고만 있어도 지역과의 연계를 주장하여 지역주민들의 표를 얻고자 안간힘을 쏟기도
선교 200여년 이제 그동안 걸어 온 한국교회 길을 뒤 돌아보면서 앞으로 어떤 길로 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면 그동안 한국교회가 걸어 온 길이 성경에 비추어 볼 때 합당한 길이었는지도 살피고 또한 지나온 길을 경험 삼아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바로 정해야 한다. 선교 초기 서구 선교사들에 의해 전해진 복음이 세계에서 가장 낙후되고 가난하게 살던 우리나라에 들어와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게 하고 선진문화를 전수해 주어 나라가 서서히 깨어나게 되었다. 나아가 기독교를 받아 드릴 때 오는 결과를 이미 선교사들이 입고 온 의상과 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