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 당신을 만난 것에 감사합니다함께 해온 시간들에 감사합니다당신을 만남으로서 탄생한 생명들에 감사합니다당신이 곁에 있어서 나의 눈이 트였고세상이 보였습니다밤길도 무섭지 않았습니다함께 걸어온 길은 꽃길가시밭길도 때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당신에 감사합니다앞으로 걸어갈 길도마지막 떠날 그 길도당신과 함께라면 언제나 꽃길멀리 있어도홀로 있어도당신의 마
쓰레기통나를 껴안는다모든 이들이 찌푸리는 걸,불평 한마디 없이편안한 자리 마다하고구석에 자리한 채시키면 시키는 대로주면 주는 대로 받아먹으며,누추한 삶의 처마 아래거북하게 속 가득 찬당장 버려야 할 것들온 몸으로 껴안고더러움 속에 슬그머니버린 알량한 양심까지도,세상에 떠돌던 한때 아끼던낱말들을 소중히 보듬는다간밤에 버리지 못한 쉬어빠진 추한 목소리까지거르지
가을의 노래그냥 부딪치고 싶었다오가는 길목에서 나를 알고 싶었다깨어나는 영혼과늘푸른 바다와솟아오르는 물줄기 앞에 외롭지 않았다맑은 눈빛 따라 바라보는 일상가을 바다에 포근히 안겨늘 머물고 싶은 삶 한 자락가을은 푸른 바다를 머리에 이고온 산과 마음을 물들이고 있다내어놓은 숨결 하늘 높이 솟구치고늘 분주한 삶 속으로열려진 기도의 문, 말씀의 꽃이 핀다 -『창
살다가 보면살다가 보면넘어지지 않을 곳에서넘어질 때가 있다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사랑을 말할 때가 있다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사랑하는 사람을사랑하지 않기 위해서떠나보낼 때가 있다떠나보내지 않을 것을떠나보내고어둠 속에 갇혀짐승스런 시간을살 때가 있다살다가 보면 “동토에 떨어지는 한 톨 풀씨로 첫 울음을 터 뜨리며” 세상에
버스에서 임산부와 함께 앉게 되었네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아이와 동행하게 되었네아이와의 인연으로내 인생이 길어지자나는 무상으로 어려지네버스가 조금만 덜컹거려도 미안한 마음 일고따갑게 창문 통과하는 햇살 밉다가길가에 핀 환한 코스모스 고마워지네아이가 나보다 선한 나를내 맘에 낳아주네나는 염치도 없이 순산이라네 -『시와함께』 창간호(19년 가을)에서 *함민복
지상의 방 한 칸세상은 또 한 고비 넘고잠이 오지 않는다.꿈결에도 식은 땀이 등을 적신다몸부림치다 와 닿는 둘째놈 애린 손끝이 천 근으로 아프다세상 그만 내리고만 싶은 나를 애비라 믿어이렇게 잠이 평화로운가바로 뉘고 이불을 다독여 준다이 나이토록 배운 것이라곤 원고지 메꿔 밥비는 재주 뿐쫓기듯 붙잡는 원고지 칸이 마침내 못 건널 운명의 강처럼 넓기만 한데달
항아리진눈깨비 추운 옷 헐 입이며나를 꼭꼭 품 담은고슴도치 등을 하고기러기 아득한 하늘 밑장독대 부도(浮圖)가 되는 어머니- 김광자 제2시선집 『네 삶이 감파랗게 물든 해운다 장산 자락에서』 발췌* 김광자 시인: 『시와 비평』(1990) 『월간문학』(1992) 등단윤동주문학상. 펜문학상 등 예시를 중심으로 시 창작에서 이론과 실제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뱀처럼어떤 자동차 광고 장면에서멀리 꾸불꾸불 돌아가는 산길을 본 그녀가소스라쳐 놀란다저거 뱀이 아니야?우리가 가는 길살아내야 할 길부드럽게 돌고 돌아가기를 바라지만직면하면 언제나 뱀처럼 꿈틀거리네멀어지면 아름답고가까우면 소름돋고-시집 『너무 아픈 것은 나를 외면 한다』에서* 이상호 : 교수 (한양대학교 ERICA 캠퍼스 한국언어문학과) . 한양대 문화산업대
무소유잔디는 살려고아침이슬 방울들을 주워 모으지만 이슬은 잔디가 더 푸르라고 제 전부를 내어준다. -시집 『달맞이꽃 산바람 타고 오네』에서* 지술현 시인 -사회복지학 박사. 『문학시대』로 등단. 다산문화제 문예대회 남양주시장상 두 연으로 구성된 짧은 작품이다. 시적 은유를 위해 동원한 사물도 잔디와 이슬로 간단하다. 단출한 구성과 언어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바람에게 밥 사주고 싶다나무들아,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잠시도 너희들 잊지 않았다 강물들아, 울지 마라우리가 한 몸이 되는좋은 시절이 오고 말 것이다 바람아, 우리 언제 모여밥 먹으러 가자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한솥밥우리들 함께 먹는 밥먹으러 가자 압록강아,그날까지뒤돌아보지 말고흘러 흘러만 가다오. 식구끼리 모여 오붓하게 식탁에서 밥을 먹는 모습이 흔치
상팔자속을 다 털어낸 밤송이들이 묵정밭 비탈에 편히 앉아 입이 찢어지게 웃는다.온몸에 가시 곤두세우고 꽉꽉 속을 채우던 알밤들은 다 어디에 내버렸나. 게걸스런 다람쥐가 울고 갈 판이다.* 감태준 : 1972년 《월간문학》 신인상. 시집 『역에서 역으로』 『마음이 불어가는 쪽』 등 중앙대학교 전교수 시인은 밤송이를 의인화 시켜 상팔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바람 불다.삶이란 중력을 거스르는 일봄바람에 피어나위로 위로 솟아 오르는 새싹처럼……죽음이란중력으로 돌아가는 일팔랑갈바람에 떨어져 뎅구는낙엽처럼…… - 『시사사』 2019년 5~6월호에서*오세영 ; 예술원 회원.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과). 소월시문학상. 목월문학상 등 존재에 대한 무거운 담론이다. 시인은
밥귀 떨어진 개다리 소반 위에밥 한 그릇 받아 놓고 생각한다.사람은 왜 밥을 먹는가.살려고 먹는다면 왜 사는가. 한 그릇의 더운 밥을 먹기 위하여나는 몇 번이나 죄를 짓고몇 번이나 자신을 속였는가. 밥 한 그릇의 사슬에 매달려 있는 목숨나는 굽히고 싶지 않은 머리를 조아리고마음에 없는 말을 지껄이고가고 싶지 않은 곳에 발을 들여 놓고잡고 싶지
미래 피는 꽃이 아깝다질 때가 보이기 때문이다지는 꽃이 아깝지 않다씨앗들이 여물기 때문이다.오래 살고픈 건잇댄 목숨까지 빼닮기 때문이다우리가 심는 꽃들의밝은 날이 반드시 오기 때문이다-시집 『 바다가 행복입니다』에서* 김종기 시인: 숭의여자고등학교 교장 역임. 크리스챤 시인상 등 다수 수상 말은 기교에 따라 의미가 달리 해석되거나 강조된다. 시에서는 수사방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엄마는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엄마는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엄마는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엄마는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배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엄마는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발
모두가 바람이다하늘은 비어 있고땅에는 늘 가득하다그 사이 오고가는 것들모두 다 바람이었다참새로 울던 까치로 울던무슨 뜻으로 울었던지말이 없는 죽은 자도 한 때의 바람이었다새들의 날갯짓도우리들의 발걸음도삶을 헤쳐 가는 몸부림그것도 또한 바람이다하늘과 땅 사이새는 날고 개는 잰걸음금방 지나간 자리마다한 가닥 바람이 일어난다- 시집 『모두가 바람이다』에서 *김영
스며드는 것꽃게가 간장 속에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꿈틀거리다가 더 낮게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어찌할 수 없어서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한때의 어스름을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불 끄고 잘 시간이야 봄의 포구는
겨울나무겉으로는 남루하지만속은 뜨겁다제각기의 꿈은 다 있었다이름도 있었다그동안 살아온 忍苦속에 꽃이 피고 있었다오직 하늘을 향해받드는 마음겨울이라도 춥지 않았다다시 살아날 생각에 차있다-시선집 『迎日灣을 바라보며』* 이성교 시인중앙대학교 대학원(국문학). 성신여대 인문대 학장, 명예교수. 한국기독교시인협회 초대회장. 한국기독교문인협회 회장역임월탄문학상. 현
청靑여름은 내 곁에 아직 무성茂盛히 있네깊숙한 골짜기에서한잠 자고이내를 건너더러는빠뜨리고 더러는또 손에도 들었네.*한분순 : 서울신문 신춘문예 로 등단(1970) 한국시조작품상. 한국시조시인협회상. 정운시조문학상. 한국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및
철이 들어 윤달이 있어 늦은 한가위여유 있게 더 뒹군 탓일까과일이 예년보다 씨알이 굵다아들아 밥 무라어머니 목소리 모락모락 들리는겨울 남향 골목길아이들은 감기도 안 걸리고무럭무럭 잘도 자랐다조금만 더 따스하면더 조금만 느긋하면이루어지는 소망혼자가 아니라서더 포근한 철들기 - 『문학선』 2018 겨울호에서*조승래 : 2010년 『시와 시학』 등단. 시집 『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