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하고 어려움 없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신앙생활에는 가장 무서운 위기일 수 있음을 우리는 잊고 산다. 역사가 증거 한다. 풍요롭고 넉넉할 때 한 결 같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났다. 지금도 배부르고, 여유 있는 나라와 도시의 예배당이 텅텅 비었다. 이런 점에서 정신을 차려야 한다.이스라엘 백성이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이
한 베스트 운전자는 자신의 무사고 운전의 비결을 '길이 열렸을 때를 조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차가 밀려 있거나 길이 좋지 않을 때 사고 날 확률은 상대적으로 적다고도 했다. 길이 확 열려 있고, 도로 상태가 최상일 때 사고가 날 확률이 오히려 높다. 길이 열렸을 때를 조심하라. 길이 활짝 열릴 때, 평안할 때, 모든 일이 잘 될
얼마 전에 TV에서 서글픈 뉴스를 보며 안타까웠다. “선풍기 아줌마 별세” 이 분은 젊은 시절, 미모(美貌)에도 불구하고 더 예뻐지려고 수차례의 성형수술을 받은 부작용으로 얼굴이 선풍기처럼 부풀어 올랐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이 “선풍기 아줌마”다. 젊은 시절 아리따운 그 모습으로 당당하게 살았으면 오죽이나 좋았을까.손자병법 무경10서 36계중에서 31번째 계
누룩은 술을 만드는 효소를 지닌 곰팡이를 곡류에 번식시켜 만든 발효제로 분쇄한 밀이나 쌀, 밀기울 등을 반죽하여 모양을 만들고 적당한 온도에서 숙성시켜 만든다.성경에서 ‘누룩’은 일반적으로 죄, 잘못된 교훈, 이단사설, 부패성 등을 말할 때 쓰였다.(출 12:15, 겔 45:21, 마 16:11, 막 8:15, 눅 12:1) 주께서는 누룩의 속성을 하나님의
나이가 들수록 인생이 더 신비스럽게 느껴지고 수수께끼 같아 보인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바다(Sea of Galilee)를 건너가신 사건은 그리스도인이 인생항로에서 경험할 수 있는 단면을 보여주신다. 갈릴리 바다는 언제 폭풍이 몰아칠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바다다. 수면은 바다보다 약 210m나 낮고, 남북 길이 21㎞, 폭 12㎞, 수심 50-60m
성탄절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뻐 감사하며, 축하하는 기독교의 명절이다.예수님이 뉘시기에 그분이 오신 날이 명절이 되고, 지구촌의 축일이 되는가. 그리스도의 나심의 의미와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의 사건에 우리가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사람 되어 태어나신 목적을 성경 마 1:21절에서 찾을 수 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
다윗의 열 번째 아들 솔로몬은 십대 후반에 하나님의 섭리 속에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이스라엘 3대 왕으로 등극한다. 그리고 이 땅에서 가장 지혜자라는 명성과 영화롭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영광을 얻고, 어느 열왕(列王)도 누리지 못한 부귀를 누렸다. 더욱이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탁월한 지혜로 3천수의 잠언을 기록한 위대한 지혜자이기도 하다
B.C. 6세기 유대의 대 예언자이며 구약성경 ‘에스겔서’ 저자이기도 한 선지자 에스겔(Ezéchiel)은 굉장히 밝은 미래상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이다. 그러나 에스겔이 그렇게 황홀한 낙관론을 지닐 만한 조건과 상황이 아닌 정반대로 이스라엘이 바벨론과의 전쟁에 패배하여 무너진 나라에서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 수많은 유대인들 중 한 사람이었다.
B.C. 6세기 유대의 대 예언자이며 구약성경 ‘에스겔서’ 저자이기도 한 선지자 에스겔(Ezéchiel)은 굉장히 밝은 미래상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이다. 그러나 에스겔이 그렇게 황홀한 낙관론을 지닐 만한 조건과 상황이 아닌 정반대로 이스라엘이 바벨론과의 전쟁에 패배하여 무너진 나라에서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간 수많은 유대인들 중 한 사람이었다.에
그리스도인의 애국은 언제나 말씀에 기초하고, 근거한 것이어야 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신앙의 근본이신 하나님은 비인격적인 관념이나 사상이나 이념이나 철학이나 그 어떤
오늘 한국교회가 여러 가지 일로 몸살을 앓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예수님을 인격적(人格的)으로 만나고, 섬기는 이들이 적고, 인본주의 화되고, 무속화 된데 있다. 주님을 가슴으로 만나 섬기지 못하고, 그저 알량한 머리에서 맴도는 지식적(?) 신앙으로 예수를 논하는 일이 우리를 두렵고 허망하게 한다. 인격(人格, personality)은 인간에게서 비교적 일
살인하지 말라.(출20:13. 신 5:17) 제6계명의 말씀이다.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 형상을 따라서 만드셨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 이목구비가 하나님을 닮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 본성의 많은 것을 우리의 품성이 되게 하셨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자녀다움을 우리에게 담아주신 것이다.살인은 우리에게 담아주신 하나님의
사람들은 내가 만든 관념으로 착각하고, 착각을 만들며 산다. 많고, 심한 착각 중에 성전(聖殿)과 교회(敎會)에 대한 편견과 착각은 하나님의 교회나 성전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망하거나 패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그러나 성전과 교회의 역사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뿐만 아니라 성경도 성전과 교회의 파괴 또는 무너짐을 분명히 하신다.(마24:1~2
전쟁터에서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국방장관의 믿음에 찬 시편낭독을 듣던 병사들의 마음에 '여호와는 나의 구원, 이스라엘의 승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가 있었다. '여호와는 나의 구원 이스라엘의 승리'의 믿음을 가진 이스라엘 군 한사람 한사람이 무적의 다윗이 되어 골리앗을 대적하듯 아랍을 대적하여 나섰다. 누가 이들을 이길 수 있겠는가?이 힘은 무기
“충성스러운 이스라엘들이여! 오래 전부터 우리는 주님 외에는 로마 사람이나 그 누구도 섬기지 않겠다고 결심한 바가 있다. 오직 주님 한 분만이 우리가 섬길 하나님이시다. 지금이 이런 우리의 결심을 행동으로 증명해야 할 결정적 순간이다. 이때 우리는 스스로를 욕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한 목숨 부지하려는 생각으로 노예가 되는 길을 택해서는 안 될 것이
예루살렘 서쪽에 위치한, '기억의 산(하르 하지카론)' 위에는 600만 유대인 나치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있다. 이스라엘은 그 기념관을 야드 바쉠(손과 이름)이라고 부른다. 희생자들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고, 기념한다는 뜻이다(사56:5).홀로코스트(Holocaust)는 그리스어 holókauston에서 유래하는데, 이
예수님이 아름다운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감람산 기슭에 이르셨다. 제자들과 아이들은 호산나를 외치며 환호하나 예수님의 얼굴에는 비통함이 서려 계신다. 누가복음19:41은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라고 매우 단순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이 단어의 원래 의미를 살린다면 훨씬 더 강한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간장이 끊어지듯 흐느끼며 눈
한 경건한 청년(마 19:22) 관원이(눅 18:18) 예수님을 찾는다. 그의 관심은 영생이었다.일반적으로 젊은 사람보다는 나이든 사람들이 죽음과 영생의 문제에 더 진지할 것이나 이 청년관원은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에 깊은 관심으로 고뇌한듯하다.그는 청년이고, 관원이고, 부자라고(마 19:22 ; 눅 18:23) 성경은 소개한다.주 예수님과 이 청년관원과의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우리민족과 나라가 갈 길의 거울이 되고, 야곱의 생애를 보면 내 인생의 거울이 되는 등, 모든 역사와 선각자들의 삶이 우리의 거울이요, 본보기가 된다.우리가 추수감사절 때마다 ‘청교도’들의 신앙을 즐겨 소개한다. 왜인가. 그들이 거울이 되고, 그들을 거울삼기 위함이다. 어느 때, 하나님이 복을 주셨으며, 어느 때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본보기’란 본(本)을 받을 만한 대상 또는 어떤 사실을 설명하거나 증명하기 위하여 내세워 보이는 대표적인 것을 말한다.고린도전서 10장 6절과 11절에 두 번 나오는 ‘본보기’라는 단어를 개역한글 성경은 ‘거울’로 번역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 출애굽 과정에서 겪었던 여러 가지 사건들을 거울삼아 하나님을 섬기자는 영적교훈이다. 거울은 자기 얼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