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참으로 혼란스럽고 어수선하다.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별하지 못하고,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비본질인지 헤아리지도 못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세상이다. 이렇게 본질을 흐리고 내 생각, 내 지식, 내 이성, 내 철학을 앞세워 내 주장이 마치 본질인양 관철시키려는 이기가 이 사회에 팽배하게 자리잡고 있다. 진정한 내 정체성과 가치관, 인생관을 정
이 세상은 이기와 탐욕으로 가득차 이웃 간의 배려와 나눔과 사랑이 없다. 한마디로 인정이 메말라 버렸다. 서로를 반목하며, 갈등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사람 사는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세상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너와 내가 주고받고,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인정이 넘쳐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오늘날 각박한 세상, 맘몬이
요즘 세상을 바라보면 이기가 극에 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것을 자기위주로 해석하고, 남의 것은 귀 기울여 들으려 하지 않는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예술, 교육. 종교, 모든 계층, 모든 분야가 어우러져 더불어 함께사는 세상이 아닌, 오직 나 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또한 단체도 오직 자기 단체가 주장하는 것만 옳고 남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참으로 허물 많은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고, 구원의 은총을 베푸사 또 하루를 기쁨가운데 살아 갈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사랑을 받은 이 죄인이 오늘도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오니 부족한 종에게 주님의 크신 능력을 덧입혀 주셔서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죄악된 이 세상을 변화시켜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선한 도구로
오늘 대한민국, 예멘 난민 인정을 놓고, 찬반논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하나님은 광야의 떠돌이와 파라오의 압제 밑에서 고난당하는 하비루들과 함께 자신의 나라운동을 벌이셨다. 성서는 이들의 해방운동을 중심으로 시작되고 있다. 한마디로 하나님나라운동은 떠돌이들의 해방운동이며, 인권운동이다. 떠돌이들이 주인 되는 세상, 살맛나는 세상이 실현되는 그의 나라,
요즈음 어디를 가나 들리는 소리가 있다.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다”는 한숨 섞인 탄식의 소리이다. 여기저기서 도저히 삶을 지탱하기가 어렵다는 낙심의 소리뿐이다. 우리는 희망이 없는 좌절감에,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상실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중산층 이하의 민초들이 낙심하며, 슬픔에 잠긴 모습을 바라보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어떻게…
6월은 잔인한 달이다. 2018년 6월25일은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지 68주년을 맞이하는 날이다. 때문에 매년 이날이 되면, 한국교회와 각 단체는 동족상잔의 참상을 상기하고, 다시는 이와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이 이 땅에서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의미에서 여러 가지 행사를 갖고 있다. 또 나라의 안보를 굳건히 세워야 한다는 다짐도 해 본다. 우리는 전쟁의 가
6월은 호국의 달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은 한반도의 씻을 수 없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했다. 도저히 인간의 상식으로는 납득 할 수 없는 참상이 벌어졌다. 이념이라는 사상에 빠져 부모 형제끼리 서로 총칼을 겨누고, 잔인하게 죽이며 죽는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났다. 그 상처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6.25의 아픈 상처가 국민들의 가슴 속에
그리스도인 모두가 낮에는 해처럼, 밤에는 달처럼 밝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한 소망해 본다. 많은 철학자들은 인간 모두가 태어날 때부터 선하다는 ‘성선설’을 말한다. 반면에 어떤 철학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악하다는 ‘성악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 세계는 성선설과 성악설, 두 학설을 놓고 논쟁을 벌이며,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러나 창
5웗18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잡자리에서 일찍 일어나 명상에 잠겼다. 그리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5월은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입양의 날, 성년의 날 등이 즐비하게 들어 있다. 그래서 5월을 가정의 달이라 부른다. 가족 간에 사랑을 나누며, 평화의 공동체를 나누고 있는 사이, 필자는 한 편으로 5월을 맞이할
우리의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만 성공적인 삶이었다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성경은 ‘예수님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삶의 자리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이었다. 예수님은 그 곳에서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 고아, 창녀, 세리 등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가 가까지 다가왔다“고 복음을 전하며, 이들과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이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시대를 갈망해온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에 대해 남북한의 적대적인 관계를 조성해온 한국교회는 무엇이라고 말할까. 사실 한국교회의 보수적인 일부목회자와 교인들은 관념에 사로잡혀 대화의 문을 닫고 무조건으로 북한을 적으로 생각해 왔고, 생각하고 있다. 이번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은 한마
복음은 예수님이 실현한 아가페 사랑에 대한 기쁜 소식이다. 복음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주인으로 삼는 나라,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이 다스리는 나라에 관한 기쁜 소식이다. 결과적으로 복음의 중심은 아가페 사랑, 조건없는 사랑이다. 그래서 목회자는 이 사랑을 전하기 위해 오늘도 몸부림을 친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과 탐욕, 그리고 분열과 갈등으로 가득한 오늘의
오늘 교인들은 한국교회가 위기에 봉착했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이렇게 가다가는 “악의 세력에 의해 한국교회가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심판을 받을 것이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만큼 한국교회가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종교 신뢰도 조사에서 개신교가 꼴찌였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것은 목사, 신부, 스님에 대한 신뢰도 조사
제주4.3사건 70주년 추념식이 제주평화공원에서 열렸다. 1947년도에 일어난 제주 4.3사건은 당시 제주인구 30만명의 10%인 3만명이 국가에 의해서 희생을 당했다. 잊을 수 없는 사건이다. 정부의 공식 피해자만도 1만4천명이며, 아직도 확인되지 않은 행방불명자까지 합치면 3만명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제주 4.3사건은 좌•우 이
우리는 새로운 세기 21세기와 더불어 새로운 1000년을 맞이하고 있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동방교회 500년, 서방 카톨릭교회 1000년, 유럽교회 500년의 시대를 지나 제3세계 교회들, 즉 제4교회의 시대를 맞이했다. 시대적으로 보면 귀족사회를 기반으로 한 500년의 동방교회, 카톨릭의 1000년 시대, 부르주아적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했던 개신교 50
오늘 한국 개신교와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은 너무도 자명하다.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는 한국교회는 우상신인 맘몬, 인신 제사를 강요하는 자본주의 물질만능에서의 몰록신으로부터 기독교를 해방시켜야 한다. 예수님은 “너희는 하나님과 맘몬을 같이 섬길 수 없다”고 했다.금융자본주의라는 맘몬의 신, 인간을 죽이는 몰록의 신이 시장경제 질서라는 자신들의 먹이사슬 체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한1서 3장 16절)이 성경말씀은 사순절 기간에 우리에게 주는 말씀이다. 사순절이 시작되어 4주가 지났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고난에 참여하고 있는가(?) 모두가 묵상하며,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리스도인 모두는 예수님의
한국교회는 호화로운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을 성전에 가두고 움직이지 못하도록 결박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일부에서는 성전 예수님, 아니 성전 하나님을 하나님이 없는 세계로 불러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를 비롯한 세계교회는 하나님을 세계로부터 교회로 끌어드릴 줄만 알았지, 교회 안에 갇힌 하나님을 세계로 불러내지를 못했다. 그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부활절인 4월1일을 앞두고, 사순절이 시작되었다. 그리스도인 모두는 이 기간에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여기에 참여해야 한다. 일부는 참여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기간에 절제의 생활을 하며, 도덕적 윤리적으로 깨끗이 하려고 노력한다. 일부는 이 기간에 금식을 해서 식비를 모아 가난한 이웃을 돕는데 사용한다. 그러나 오늘날을 살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