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들이 주도하는 퀴어축제가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서울광장에서 열리게 된다. 서울시는 지난 9일 서울광장 사용 여부를 심의하는 ‘열린광장운영 시민위원회’를 열어 동성애자들의 축제에 서울광장 사용을 승인했다. 2002년 월드컵 때 수백만 붉은악마 응원으로 전세계에 각인되었던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의 서울광장이 이제는 전 세계인에게 동성애자들의 성지로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먼저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순국선열들의 희생정신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또 멀리 타국에서 대한민국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자 참전한 UN참전용사들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한다.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작금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이 나라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희생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한
이슬람 무장세력 IS의 흉악한 범죄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엄마의 시신 밑에서 숨어있던 어린아이가 극적으로 구조되어 가슴을 저미게 만들고 있다. 이 아이는 IS가 자신들의 최대 근거지인 이라크 모술지역을 연합군에게 내어줄 위기에 처하자 모술 주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가운데, 한 여성의 시신 밑에서 극적으로 구조됐다. 여성은 이 아이의 엄마였다.
세계화시대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배웠다. 그리고 예수 안에서 무엇을 배웠고, 어떻게 가르쳤나. 모두들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고, 예수 안에서 평화를 배웠다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이 물음과 답은 6월 보훈의 달에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그렇다. 우리는 얘수님으로부터 사랑을 배웠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인간들을 예수님은 자기 몸처럼
“…당신의 평화를 이 땅에 갈물처럼 끌어들이며/민족들의 평화를 개울물처럼 쏟아져 들이는 일을 이 민족에게 허락하소서/하나님의 말씀과 거짓된 말들을 분별케 하는 성령을 우리에게 허락하소서/하나님. 우리는/이 땅에서 힘 있는 자들이 당신 앞에서 무서워 떠는 날을 대망합니다/이 땅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이들이 당신 앞에서 기억되는 날을 대망합니다/&
필자는 6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명명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했다. 그 기도는 필자가 기도원을 개원한 이후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합에 맞추어져 있었으며, 지금까지 계속해 오고 있다. 그리고 참평화가 무엇인지를 골방에 앉아 묵상했다.과거에는 전쟁만 없으면, 총을 쏘지 않으면, 그래서 사람이 피를 흘리지 않으면, 이것을 평화라고 했다. 그것은 아
세상에 진실만으로 설득되는 것이 있는가? 간혹 “왜 나의 진심을 몰라주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는 철부지들을 본다. 진실에 설득당하고 진실을 인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일인데 타인이 그 진실에 동의해주기를 바라고 그렇지 못하는 경우 그를 비난하거나 자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진실의 수납여부는 오직 자신의 문제이고, 그 진실의 정당성과 진위도 오직 자신
방문객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그는그의 과거와현재와그리고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부서지기 쉬운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만남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좋은 만남은 한
조선일보 김동섭 보건복지전문기자는 저출산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인구 동력'이 해를 거듭하면서 꺼져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통계청의 자료를 인용해, 1980년 1440만명이던 학령인구(6~21세)가 올해 846만명으로 거의 반토막이 났다는 것이다. 통계청은 학령인구가 2040년 640만명, 2060년엔 480만명으로 크게 줄어든다는 전망도 내 놓았다. 이
일천하기는 하지만 나름 세계문명의 발생지를 두어 곳 돌아보며 이렇듯 척박한 곳에서 어떻게 그 토록 찬란한 문명들이 만들어졌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조셉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1889-1975)의 책 ‘도전과 응전’에서 “문명은 계속해서 끊임없이 덮쳐오는 도전에 대응해 성공함으로써 탄생하고 성장한다.”고 했다
본 문1 -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사 그들과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하신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 가서 얻을지니라” (신 1:8)“약속의 땅을 받은 이스라엘”이스라엘 역사 중에 제일 위대한 역사가 가나안입니다.가나안은 약속의 땅입니다.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이 땅을 유업으로 주리라 약속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종교의 본질은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평화이며, 사랑이다. 기독교에 있어서 사랑과 평화, 그리고 정의의 가치는 그 무엇보다도 크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 유교에서 말하는 ‘인’,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 그것을 확대해 보면 궁극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평화’이다. 예수님은 태어났을 때를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고 성격화 했다.그런데 기
맑은 정신을 소유한 목사다운 목사, 교회다운 교회가 없는가(?)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국민들과 교인들은 묻고 있다. 역사학자인 백낙준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오늘 한국교회의 참 목사는 농촌교회를 섬기는 가난한 목사이며, 참 교회는 농촌의 작은교회이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는 도시고, 농촌이고, 이런 목사님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종교인 과세’ 추진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재가열되고 있다. 내년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종교인 과세는 종교계의 반발과 선거철 표심을 의식한 정치계의 소극적 태도로 인해 번번이 무산돼 오다가 지난 2016년 국회 본회의에서 전격 통과된 후 그 시행은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이 끝난 올해 말까지 유예되었다.따라서 시행을 불과 6개월 앞둔 시점에서
6월은 6일 현충일과 6·25 한국전쟁 발발일 등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해 호국보훈의 달로 지킨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6월 호국보훈의 달에 나라 뿐 아니라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 바친 순교자들의 정신을 되새기고 그분들이 남긴 믿음의 유산을 후대에 전승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시기이다.주기철 목사는 일제
요즘 한국사회에서도 교회를 부정적인 종교집단으로 보려는 시각이 높다. 특히 지식이나, 젊은 청년들 사이에서는 이같은 부정적인 시각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이것은 지난 선교초기부터 일본제국주의시대, 해방, 6.25전쟁 이후 보리고개, 70년대 산업화에 이르기까지 개신교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이해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당시 국민들에게는 교회가 가난하
비록 3당 합당의 산물이었지만 최초의 문민정부 김영삼 정권의 초기 지지도는 그야말로 고공행진이었으나 결국 IMF라는 비극으로 끝이 났다. 파산 난 나라를 이어받은 실질적 민주정부인 김대중 정권은 폐허가 된 마당에 홀로 서서 그야말로 고군분투하며 IMF를 극복해내었음에도 결국 그 종말에는 측근들로 인해 몰락을 피해가지 못하였다. 다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라
여름성경학교첨탑의 십자가가 하늘에 대고, 누적된 것을 긁는다. 죄일 수도 희망일 수도 있는. 예수는 지금쯤 교회 지붕에서 투신할 준비를 마쳤을지. 어린이들은 긍휼이라는 달고 시원한 빙과를 조금씩 녹여 먹고 있었다. 올해도 심판은 불발. 나는 어젯밤 술이 덜 깬 일개 교사이며, 성경을 완독한 적이 없다. 상처는 때로 훌륭한 장난감일까. 새 신자의 자살 소식이
오늘 우리가 발을 붙이고 사는 이 땅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어디하나 성한 곳이 없다. 그것은 모두가 인간성을 상실한데서 비롯되었다는데 이의가 없다. 심지어 예수님의 인간화 실현이 좌절되었다는 느낌마저 든다. 새로운 대통령에게 개혁에 대한 기대를 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우리의 머릿속에서 잊혀져 가는 가습기 살균제 파동은, 인간화 상실이 불러온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