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현장에서 목회자가 만나는 문제 중에 아주 난감한 문제가 귀신에게 잡혀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사람을 다루는 것이다. 목회를 하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거나 혹은 심한 공격을 받고 있는 불신자나 기존 성도를 만나게 되는데 이때 어떻게 분별하고 어떻게 지도하고 어떻게 회복의 길로 이끌 것인가가 목회자가 기도하고 고민해야 될 부분이
교회가 구원받은 자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선교하는 공동체인 동시에 악한 영들과 영적 전쟁을 치루며 영혼을 구원하고 양육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회는 작은 교회나 큰 교회나 악한 영의 공격이나 혹은 사람의 잘못이나 실수로 말미암아 항상 시험이 찾아오고 교회나 성도들이 힘들어 하고 아파 할 때가 많이 있다.특히 개척교회 시절은 한
교회 안에 있는 성도나 혹은 외부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결혼 주례를 부탁받을 때 한편으로는 좋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주 조심스럽고 신중해진다. 이유는 남녀가 만나서 혼인예식을 하고 한 가정이 탄생하기까지 비록 결혼 날짜가 잡혔다 해도 여러 가지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식 주례를 인도하기 전에 미리 당사자들인 예비 신랑과 신부를 불러서 신앙을
목회하는 목회자들이 시간이 지나고 교회가 성장하면서 선교사를 돕게 되고 또 선교현장을 방문하면서 해외 선교에 눈을 뜨게 되고 선교사역에 일정 부분을 투자하고 섬기게 된다. 필자 역시 아시아권에 있는 몇 나라를 다녀보고 교회도 세우고 선교지원도 해왔다. 그러면서 주님의 절대 명령인 선교에 대한 나름대로의 부담감도 안고 있어 왔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떻게 하면
교회가 성장하고 세월이 흐르다보면 몇 년마다 일꾼을 세우는 임직식을 하게 된다. 권사, 안수집사, 장로의 직분자로 세울 때 목회자들을 불러 말씀을 전하게 하고 축사나 권면이나 격려사 등의 순서를 맡기는데 재미있는 것은 너무나 스타일이 다르고 변화무쌍하다는 것이다. 교회 예식에 대해서 신학교에서 조금은 언급하지만 실제를 가르치는 부분에 있어서는 많이 부족하다
수년전 은퇴를 앞둔 목사님께서 목회자 모임 후 보신탕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젊은 목회자들이 정신없이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하셨다. 저렇게 많이 먹고 나면 어차피 살을 빼야하는데 왜 어리석은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씀이셨다. 선배 목사님은 젊어서부터 잘 드시고 많이 드시다가 사십대 중반부터 각종 성인병에 노출되어 하루에도 몇 시간씩 런
내 목회에 있어서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였지만 그중에 특별한 것 하나가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있는 병원에 가서 심방할 때 불신자들 대부분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앙을 고백했다는 것이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에 믿어 의롭게 되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되느니라.”는 말씀대로 비록 부끄러운 구원이지만 구원의 자리에 들게 되었다는 것이다.그래
목회자가 모이는 큰 집회에서 큰 목회를 이루시고 부흥회를 다니시는 목사님께서 육십이 훨씬 지나서야 과거에 있었던 자기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부흥회를 하고 숙소에서 잠을 자는데 누군가가 노크를 해서 자는 척하고 가만히 있었더니 그래도 계속 노크를 하기에 옷을 갖추어 입고 문을 열고 나갔더니 젊고 아름다운 여집사가 혼자 사는 자신의 처지를 고백하며 동침을 하겠
목회를 하다보면 강사를 초청할 때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초청받아 갈 때도 종종 있다. 특히 부흥사로 부름을 받은 목회자는 전국 교회를 다니게 되고 목이 터져라 외치게 된다. 우리가 초청을 받았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롭고 선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인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먼저 언제 어떤 교회에서 불러도 달려가서 복음을 담대히 전하기 위해 항상
목회자들이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는 목회현장에 필요에 따라 부흥회나 헌신예배나 세미나 강사를 초청하여 강단에 세울 때 지난번에 말씀 드린 대로 목회 연륜이 있고 덕망이 있는 목회자를 세우되 튼튼한 목회현장을 가지고 있는 목회자를 세워야 강단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사전에 예방할 수가 있고 또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다. 특히 부흥회 때는 초청하는 강사에게 무슨
우리 세대도 은사에 대한 사모함과 갈망이 상당히 긴 시간동안 있어 왔지만 지금도 목회현장에서 뛰고 있는 목회자들 역시 은사에 대한 사모함과 필요성을 대단히 많이 가지고 있다.그 이유를 들자면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가장 큰 이유는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 보아도 개척 목회가 힘들고 또 기존교회가 영적으로 변화되지 않고, 깊이 박힌 바위처럼 정체되어 있기 때문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교회라는 넓은 테두리 속에는 제각기 교단이 다르고 신학사상이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외치는 소리와 방향이 조금씩 다를 때도 있고 혹은 극과 극을 달릴 때도 있다. 때문에 한국교회 전체를 하나로 묶는 작업도 쉽지 않지만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하나의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성도 몇 십명 혹은 몇 백명 몇 천명이 모
이 땅위에 교회를 세우시고 이끌어 가시고 성장시키시고 축복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심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교회에 물질을 공급하시고 사역에 활력을 불어넣으시는 분도 예수님이시다. 그렇다고 해서 성도들이 헌금을 드리지 않거나 소홀이 해도 안 되겠지만 목회자 또한 교회의 재정 관리를 등한시해도 안 된다. 34년째 교역자생활을 하면서 은혜로 터득한 것은 어린
교회 개척예배를 드리고 서너 달이 지났을 때 성도들의 반대를 무릎 쓰고 협력 선교를 하자고 우겨서 네 곳의 선교지에 매달 삼만원씩의 선교비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목화자인 내게 주신 은사대로 교회의 재정을 저축하지 않고 쓰고 나누는 목회를 시작했다. 개척 후 첫 번째 교회를 건축하고자 성전 부지를 구입하기로 제직회에서 결의를 하고 제일 먼저 한 것이
삼십 오년 전에 서울에 상경하여 꾀나 큰 교회를 다닐 때 큰누나가 담임목사에 대한 자랑을 하는데 다름 아닌 목사님의 세심한 배려에 대한 부분으로 주일 낮 예배를 마친 후 식사를 할 때면 목사님이 주방에 들어오셔서 주방봉사자들을 격려해 주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교역자 생활 할 때부터 그런 부분들을 눈여겨보았는데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별 관심 없이 지나치고
청년때 다녔던 교회에서 청년부 멤버였던 형제들 중에 몇 사람의 목회자와 사모가 배출되어 현장에서 열심히 사역들을 감당하고 있다. 그중에서 몇 사람이 목회를 하면서 본인들이 받은 응답들을 나누었고 우리는 그들이 받은 응답에 대해서 이견 없이 그런가 보다하고 수긍을 하고 인정을 해주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받았다고 이야기했던 응답들이 처음도 중간도 지금까
몇 주 전에 연세가 높으신 장로님과 권사님 그리고 자녀들이 우리교회에 등록을 하고 점심식사 후 커피를 마시는 자리에서 연로하신 고참 권사님이 생각지도 않던 말씀을 하셨다. 당신이 우리교회에 오신지가 십년의 세월이 되었는데 우리 목사님은 당신이 처음 왔을 때나 십년이 지난 지금이나 한결같습니다. 하고 거듭 거듭 자랑 삼아 말씀하셨다.칭찬의 말이라 목회자는 미
교회 개척예배를 드리고 일년쯤 지나서 목회자인 내가 하고 있는 예배와 설교의 횟수를 세어보니 심방예배까지 평균 35번의 예배를 인도하고 말씀을 전했다. 특히 주일 낮설교를 준비할 땐 나름대로 진통을 겪으면서 힘들게 준비하게 되고 그 수고의 보람과 결실은 설교시간에 일어나는 반응과 변화되는 성도들의 삶에서 찾게 된다. 말씀을 선포할 때 울먹이면서 말씀을 듣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는데 그중에서 가장 큰 것 세 가지를 들라면 지.정.의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사물이나 이치를 판단하며 분별 할 줄 알고 도 감정을 따라 감사와 기쁨과 평안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미움과 분노와 증오가 끓어오를 때도 있다. 개척하고 10년 만에 땅을 사고 교회를 건축했는데 얼마 있지 않아서 신학교에 다니던
개인적으로 경험한 아주 특별한 경우이지만 수년전 지방에 장례식 참석차 기차로 창원역에 도착해서 사십년 지기의 친구 둘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술집에 가자는 친구를 뒤로하고 급히 숙소로 들어갔다. 큰 빌딩 중간층에 있는 모텔이라 들어가자마자 문을 걸어 잠그고 세수만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피곤해서 일찍 잠들어 아침에 눈을 떴는데 이미 해가 뜨고 방은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