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성공적인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현실은 성공하는 사람보다 실패하는 사람이 더 많은 듯하다. 어떤 사람들은 벌어들인 돈을 세고 있을 때, 다른 어떤 사람들은 빚 문서를 손에 쥐고 괴로워한다. 왜 어떤 사람은 성공의 길로 가고 어떤 사람은 실패의 길로 가게 되는가.실패한 사람들 중에는 실력과 재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기 탓인 아닌 주위 환경이나 이웃 탓으로 어쩔 수 없이 실패한 경우도 있을 것이나 일반적으로 실패한 사람들은 그들의 사고방식이나 삶의 방식이 실패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미국에서 발간되는 월간지(
지난 인류역사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백성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역사를 만드는 교회였다. 교회가 세워지는 땅에는 백성들의 정신이 깨어나고 희망이 살아나곤 했다. 한반도 우리 땅에서도 역시 그랬다. 약 140년 전 복음이 이 땅에 들어온 이후로 잠자던 영혼들이 깨어나고 절망에 빠져 있던 민중들이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그리고 지난 세월 동안 한국교회는 민족의 역사와 함께했다. 민족의 아픔과 영광을 한국교회는 함께 견디고, 누려왔다. 대한민국이 이 만큼 발전하기까지에는 한국교회가 영적, 정신적, 도덕적 뒷받침을 감당했음을 자부한다. 그러나
2022년 오늘의 나라 안팎의 사정이 비상(非常)한 시기(时期)이다. 동유럽 우크라이나를 러시아가 침공하고, 서방의 나라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며 러시아의 침공을 대적하고 나섰다. 원유가격이 배럴당 150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에 유럽전쟁과 상관없을 것 같은 극동아시아의 대한민국도 비상이 걸렸다. 이런 시기에 평범한 사고나 행동으로는 이 국난을 극복하기가 어렵다. 비상시기에 살아남아 번영을 이루려면 몸에 베인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을 넘어서는 발상의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인식 체계(paradigm)의 대전환을 말함이다.지금까지 성
일하고 안식하고, 다시 일하고 안식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요 원리이다.이런 원리적 지혜를 무시하고 중단 없이 전진만 하면 반드시 무리가 쌓여 정도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일만 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일벌레’라 한다. 그러나 정작 벌레들은 일만 하지 않는다. 벌레들은 일하는 틈틈이 쉼을 가진다.하나님이 일하시도록 나를 내어 드림이 중요하다. 이스라엘이 애급의 오랜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가나안 땅으로 행하던 중, 홍해에 이르렀을 때에 뒤에는 바로왕의 기마대가 추격을 하고, 앞에는 홍해 바다가 가로 막는 절체절명의 처지의 때에 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6) 1973년 제작된 [빠삐용]이란 영화가 있다. 프랑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이다. 주인공 빠삐용이 살인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 받고 옥살이를 한다. 수감된 곳은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섬으로 섬 자체가 감옥으로 죽어야 나올 수 있다는 악명 높은 기아나 형무소다.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빠삐용은 죄 없이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유를 갈망하며 탈옥을 계획한다.햇볕도 들지 않는 최악의 독방에서 2년간 격리 후에 풀려난 날, 빠삐용은 자신이 살아온
교회의 교회됨의 3가지 요소가 있다. 그중 하나가 “kerigma” 곧 “말씀”이다. 기독교를 일컬어 말씀의 종교라 하고, 우리 신앙을 말씀의 신앙이라 한다. 그 말씀에는 3가지가 있다.첫째,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신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둘째는 기록된 말씀 곧 ‘성경’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활력이 있다.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 성경은 활동력을 가졌다. 인간을 변
BC 3세기경에 이루어진 70인역(septuaginta, '70'을 의미, LXX은 현재 존재하는 구약성경 번역판 중 가장 오래된 판본 가운데 하나로, BC 300년경에 고대 그리스어(이하 헬라어)로 번역되었으며, 현대 기독교 구약성경의 원본으로 사용되었다.)에서 모세의 4번째 책이라고도 불리는 '광야에서'(히. Bemidbar)를 "민수기"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의 긴 종살이에서 해방된 후 가나안 땅에 진입하기 전 광야에서 보냈던 광야교회 40년 세월의 기록이다. 이 40년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략(戰略.strategy)은 전술(戰術. tactics)보다 상위의 개념으로 전쟁을 전반적으로 이끌어 가는 방법이나 책략을 말한다.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여러 전쟁을 계획, 조직, 수행하는 방책을 이름이다. 작금의 우리 사회 최대 약점으로 전략의 부재를 꼽는다. 국가경영에 대한 전략을 지닌 일꾼이 없음을 말함이다. 아니 있어도 그 전략을 펼칠 수 있는 자리에 발탁되지 못하면 전략가의 존재는 무의미하다. 모세처럼 불세출의 전략을 지닌 사람이라도 그 전략을 펼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면 그냥 세월을 허송하는 수밖에 없다. 한국교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잠 29:18)히브리어 “하존”을 영어성경은 “비전”(Vision)으로 번역하고 우리말 개역개정과 개역성경은 묵시(默示), 바른성경은 “계시”라고 번역하였고,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는 말씀은 쉬운성경은 “백성이 제멋대로 날뛰지만…”이라고 번역하여 ‘망할 짓을 골라서 한다.’는 뜻의 말씀이다. 이 말씀을 쉬운 우리말로 하면 ‘비전이 없는 백성들은 망할 짓을 골라서 행한다.’는 말씀이다. “비전”이 무엇이기에 비전이 없는 백성은 망하는가?"비전"이란 길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는 호흡과 같다. 호흡이 멎으면 금방 생명을 잃는다. 호흡(respiration)은 모든 생물에서 영양물질을 산화시켜 에너지를 얻는 대사과정을 말한다.일반적으로 호흡은 숨을 쉬는 것으로 이해한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산소를 섭취하고, 내쉴 때마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외부 환경으로부터 산소를 섭취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물리적 과정은 생리학적 의미의 호흡이다. 영혼도 죽지 않고 살려면 멈춤 없이 기도해야 한다.에녹처럼, 그리고 노아처럼 세상에 구원의 길을 보여줄 수 있는 구원의 방주 같은 교회가 되기를 기도해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은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원숭이를 사냥할 때, 중국에서는 입구가 원숭이의 주먹이 겨우 들어갈 만한 넓이의 항아리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땅콩을 넣어 원숭이들이 다니는 길목에 둔다. 그러면 원숭이는 항아리 속의 땅콩을 먹으려고 손을 넣어 땅콩을 욕심껏 한 움큼을 움켜쥐지만 항아리에서 손을 빼지 못한다. 도망가려고 애를 쓰지만 손에 쥔 땅콩을 놓지 못해 결국 잡히고 만다.이런 원숭이를 닮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가진 것들을 놓지 못해 새로운 출발을 하지 못한다. 무언가에 매여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도 성장할 수도 없다."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우리들이 누리는 복 중에 다시 시작하는 복이 있다. 이 복을 누리는 데는 꼭 필요한 전제가 “용기”(Courage)이다. 용기 있는 사람들은 다시 시작하는 복을 누릴 수 있고, 용기 없는 사람들은 이미 주신 복이지만 누리지를 못한다.‘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 중의 복이다.인생을 살면서 본의 아니게 좌절할 수 있고, 때로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복이다.숱한 사람들이 좌절의 현장에서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갖지 못하여 결국 낙오하고 만다. 인생
우리는 이 시대에 회복(regain)과 함께 부흥(Revival)이 필요하다. 그러나 부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변화(Transformation)에 이르러야 한다. 부흥과 변화는 어떻게 다른가?부흥이 그 어느 지역과 공동체에 임하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때로는 지역 주민의 절반 이상이 예수님께 나아가기도 한다. 사람들이 주님 앞에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든 자가 나으며, 기사와 이적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고 흥분하고, 하나님이 또 어
로렌 커닝햄(1935~, 국제예수전도단(YWAM) 설립자. 하와이 열방대학 총장 역임)이 쓴 [열방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책]의 서두에서 히말라야 선교사에게 들은 한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다고 경고한다. “여러 해 전에 한 선교사가 히말라야 산맥 중턱에서 설교를 하고 있었다. 그는 장터에 서서 성경을 들고 “이것은 하나님의 책입니다!”라고 외쳤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성경의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설교가 끝나고, 모였던 사람들은 하나 둘 흩어졌다. 그런데 그 마을 전통 의상을 입은 사
바울은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딤전 2:1.2)고 그리스도인을 권면한다. 기도의 영역은 제한될 수가 없다. 아무리 멀리 있는 자도, 삶과 태도가 망가진 자라도,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는 자라도 기도의 대상이 된다.디모데전서를 기록할 당시(A.D. 63-65)년경 바울이 기도하라는 임금은 역사상 가장 잔인한 네로 황제(로마 제5대 황제. A.D.37~68)다.기독교를 핍박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성도들을 죽이는 그 임금을 위해서 기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마 3:3)가 된 세례요한 같은 세상과 기존체제와 권력에 대하여 순응과 적응보다 저항하는 삶을 살지는 못해도 그런 사람을 이 시대는 동경하고 찾는다.'들사람'이란 들에 있는 사람도, 들에 사는 사람도 아닌, 빈들 같은 세상에서 하늘의 소리를 외치는 사람이다. 문명의 상대어로 자연 상태가 들이다.사람이 문명의 옷을 입으면 체면과 형식과 규범을 가진다. 인간의 탈, 껍질이 생기는 것이다. 곧 정치적ㆍ사회적 지위나 직위, 계급이 생기고, 그 입장이 생긴다. 나름 권력이나 지위를 가지면 껍질은 더욱더 두꺼워진다
국가가 강제로 시행하는 사회규범인 법은 헌법을 기준으로 만들어진다. 법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규제하고 보호한다면 헌법은 법의 전체적인 질서를 나타낸다. 법은 법의 법인 헌법에 위배될 수 없다.우리나라 최초의 헌법은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로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만들어 그해 7월 17일에 공포(제헌절)하였다. 나라의 최고법인 헌법은 국민이 직접 결정할 수 있도록 국민투표로 결정해야 한다는 의지에 따라 제3공화국의 제5차 개정헌법(1962.12.26)부터 국회에서 의결한 후, 국민투표를 통해 헌법을 확정했다. 지금 우리 헌법은 19
바이러스 ‘코로나19’와 ‘코로나19’를 방역하는 이 정부의 방역당국이 우리 일상생활을 송두리째 바꿨다. 교회의 예배 형식까지도 훈수를 하고, 신학자이거나 대형교회 목사 그리고 교회 지도자라는 몇몇의 사람들이 앞장을 서서 ‘온라인예배’라는 생소한 형태가 당연한 듯이 바꾸기를 훈수하고, 교회들로 하여금 어찌할 수 없게 강제함으로 ‘주일성수’의 신앙개념을 스스럼없이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시켜버렸다.이제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며 주일을 성수(聖守)하겠다는 사람들이 시대적으로 뒤떨어진 꼰대들의 아집으로 여기는 왜곡의 상황에 처하고 있
모든 사람들은 성공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성공하는 사람들보다 실패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왜 일까? 실패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는 길을 걷는 경우가 많다.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월간지 “Leader’s Digest”에 인생을 실패로 끝나게 할 수 밖에 없는 “실패한 사람들의 여덟 가지 습관”이란 글을 읽었다.자기 자신에 대하여 그릇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실패한다. 타인에게 부정직한 것이 그릇된 것이지만, 그보다 자기 자신에게 그릇된 생각을 하는 경우가 훨씬 더 심각하다. 어떤 경우에도 자기 자신에 대하여 정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