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이 북한의 공산치하에서 도저히 살 수 없어 귀동냥으로 듣던 남한에 가면 최소한 배는 굶지 않겠지 라는 희망을 걸고 2009년 드디어 탈북 해 중국과 태국을 거쳐 한국에 왔다. 중국 동포를 만나 결혼 하여 슬하에 6세 아들을 두었다. 그동안 기초생활 수급비로 생활을 해 왔으나 거의 일 년 간 월세가 밀려 갚지도 못했다고 한다. 지독한 냄새가 난다는 이
야간에 한국교회 옥상에 설치된 십자가 네온의 붉은 불빛이 유난히도 밝게 빛을 발한다. 십자가를 옥상에 단 이유는 이곳이 바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선포하는 곳임을 나타내기 위함에 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인간의 죄를 용서하여 영혼이 구원 얻을 수 있게 하며, 보이지 않는 천국을 세상에 드러내는 곳이다. 구원 받은 백성들로
일제 36년간의 식민지배는 이웃 나라를 한 번도 침략한 일이 없었던 백의민족의 순수성이 훼손됨은 물론 국가의 정체성마저도 짓밟힌 혼탁한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반만년을 살아온 끈질긴 민족성과 생존을 위한 독립투쟁과 자유 우방의 도움으로 독립을 이루었다. 해방의 기쁨이 채 가시기 전 독립을 위해 함께 투쟁하던 민족 지도자들의 좌우 정치성향 갈
지금 시대는 교회 건물에 대한 성경적인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지 헷갈리는 시대인 것 같다. 교회가 주장하는 교회에 대한 진정한 성경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오늘의 모습이다. 그리고 대형 교회의 입당 예배를 두고 갑론을박 하자는 심사도 아니다. 교회란 도대체 무엇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이 오늘의 시각이다. 구약의 솔로몬은 아버지
교회가 이 땅위에 세워진 동기는 세상은 죄로 인해 영원히 멸망 받았기 때문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친히 인간의 죄를 탕감하여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희생하셨다.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교회를 세우셨다. 교회는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신자들의 공동체가 곧 교회다. 이를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고 했다.
기독교와 세상의 일반 종교와 다름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과 우상을 섬기는 차이이다. 기독교의 특징 중에 하나는 보이지 않는 신을 섬기는 것이며 세상의 일반종교들은 대개 눈에 보이는 우상을 신앙하며 섬긴다. 보이지 않는 신을 섬기는 기독교도들은 신자들 자신이 기독교도들이 믿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기에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주님의 몸을 이루
성경에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중 부자는 죽어 꺼지지 않는 뜨거운 불 못에 들어가 고민하고 있었으며, 나사로도 죽어 낙원의 아브라함의 품에 안식하고 있었다고 했다. 부자의 결말은 뜨거운 불 못이고 거지 나사로의 결말은 낙원이다. 부자는 천국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다. 부자가 부에 대해 꿈꾸며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부를 취득한
국내 굴지의 교회가 교회를 성장시킨 담임자가 정년퇴직을 하자 후임 목회자의 목회에 반기를 든 세력과 지지 세력 간의 충돌로 인해 세상 법정에 소송을 제기 하는 사태가 발생 했다. 교회의 운영이 파행을 하자 사법부가 문제에 함몰된 교회에 교회법을 무시하고 세상 법에 의해 임시 당회장을 신자도 아닌 자를 단순히 법조인이라는 이유를 들어 변호사를 파송하여 교회
기독교 신자들은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사람들이 보이는데서 신앙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 드러냄이 더 바람직하다. 항상 하늘에서 하나님이보고 계신다는 영적인 압박 관념 하에서가 아니라 누가 보든지 아니 보던지 항상 신앙이 몸에 배여 있음이 좋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강도만난 자의 비유 가운데 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악의 짐을 지시고 죄인대신 십자가 위에서 고난과 희생을 당하신 이후 무덤에 계신 동안은 죄악의 어두움이 지배하던 암흑시대의 마지막 마침표이며, 삼일 후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과 빛으로 오신 사건 완성의 마침표다. 국가의 경제가 세계 십 위권에 든 것은 대한민국의 밝은 면이다. 그러나 경제 대국의 그늘에 가려 그 혜택을 보
기독교 선교를 위해 꼭 필요한 교회시설 중 하나가 신학교 설립 운영이다. 신학교는 기독교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못자리와 같다. 봄에 쌀농사를 지어야 하는 농부는 4월 초에 볍씨를 물에 넣어 불려 논에 내다 심어야 할 못자리를 만들기 위해 파종 한다. 못자리에서 자란 모는 몇 주후에 논으로 이양하여 벼농사를 짓는다. 이는 쌀농사에 못자리가 매우 중요하다.
동서 갈등과 지역 갈등은 국민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이는 역대 정치인들이 만들어 낸 정당 정치의 당리당략과 정치인 개개인의 정치 생명의 장수를 위한 이기적인 울타리로 만들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또한 지역 유권자들을 정치인들의 정치적인 목마름을 해갈 할 수 있는 저수지처럼 묵어두기 위해 지역 정서와 지역 이기적인 사고들을 부추겨 상대 당을 공략
삼일만세 운동 사건이 일어 난지 100년을 맞는 대한민국 온 국민들은 나라가 세계 속에 우뚝 서서 무역 십대 열강이 되었음을 자부와 긍지를 가진다. 나라의 밑바탕에는 100년 전 조상들이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식민지배에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무릎 쓰고 일어나 항거로 인해 일제의 총칼로 인한 만행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할 때에 흘린 피가 거름이 되었다. 순국선
지금까지는 손에 성경을 들고 교회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모두 신의 존재를 믿는 자들이라고 보았으며, 교회에서 세례(침례)를 받은 자들은 교적부에 이름이 오르게 되니 신도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신자들의 속을 어떻게 들여다보아야 그가 진실한 신자인지 아닌지를 구별 할 수 있을까가 관건이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막연하게나마 교회에 출입하는 모든
삼일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한국교회 지도자와 신자들이 나라를 위한 기도에 대해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임하는지 진단해 보았으면 한다. 기독교 계통의 메스컴이나 언론은 기미독립 만세운동의 100주년에 대해 연일 이슈로 신문 지면을 할에 하고 따라서 이름 있는 지도자들은 너도나도 삼일운동 100주년에 대해 교과서적인 칼럼을 쏟아 낸다. 교회 연합체를 운영하는
지금 타종교에는 막 수능을 치른 예비 대학생들에게 스스로 찾는 프로그램인 탬플스테이 운영을 통해 종교의 저변을 학대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수능에 매여 달렸던 답답한 심정을 과거는 술과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해소 하였지만 시대가 달라져서 입시 경쟁에서 해방된 기회를 방탕과 소비로 긴장했던 마음을 푸는 것보다 조용한 곳에 자신의 피곤한 심신을 안정시켜 줄 수 있
삼백여개 넘는 한국교회 교단이 새해를 맞아 수천 명의 임 역원들이 저마다 새로운 각오로 교단을 위해 힘써 일할 것을 다짐하는 것으로 안다. 참말로 바라는 대로 진정 교단을 위해 공복(公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새해부터는 교단 장을 비롯해 임 역원들이 세상 정치의 잘못된 점들을 재활용하는 부끄러운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대한다. 또한 뿌리가 비슷한
지금 한국 사회의 큰 문제라고 할 것은 바로 적령기 청년들의 결혼 과 취업 문제다. 결혼은 한 나라의 미래 존속에 필수적인 중대한 문제다. 그런데 지금 한국사회는 인구는 늘어나지 않는데 비해 가정 수는 늘어나는 추세다. 왜냐하면 단독 가구 수가 늘어나는데 원인이 있다. 그 단독 가구는 바로 독거노인들도 있겠으나 사실은 적령기의 청년들의 나 홀로 가구 수가
우리나라 사회 현상이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환경이 조성 되고 있다. 독거노인 가정 증가, 취업 준비생 증가, 이탈 학생 증가, 자살자 증가, 돌봄이 없는 소년소녀 가장 증가, 가정 해체로 인한 보육아동 증가 등으로 인해 사회 환경의 어두운 면이 짖게 드리워지는 년 말이다. 곳곳에 십자가를 높이 단 예배당 건물은 붉은 십자수로 화려하게 세상을 비추고 있지만
교회는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값으로 주고 산 신령한 곳이다. 교회와 세상의 경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다. 교회는 세상이라는 세속의 흐름에 빠지거나 침몰 하지 않고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없는 듯이 있어야 하는 신령한 곳이다. 살아 있는 물고기가 물을 거슬러 올라가듯이 교회는 영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