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나는 보슬비를 맞고 씨앗을 심고또 접시처럼 하얀 햇살을 받고 있으면너의 목소리가 내 검은 나뭇가지에 새잎처럼 돋아나네-『문학선』 18년 봄호에서 작품 안에 ‘나와 너’ 두 존재가 갈림을 한다. 그럼 제목인 너는 누굴 말하는 것일까.첫 행과 둘째 행은 보슬비와 햇살이고, 마지막 행은 화자의 감각이다. 전자는 객관적 대상이고 후자는 주관적 자아다. 보슬비
아버지의 빛아버지를 땅에 묻었다하늘이던 아버지가 땅이 되었다땅은 나의 아버지하산하는 길에 발이 오그라들었다 신발을 신고 땅을 밟는 일발톱 저리게 황망하다자갈에 부딪혀도 피가 당긴다. 1999년 시집『아버지의 빛』이 출간되었다. 이 시는「아버지의 빛」연작시 중 맨 처음에 실린 작품이다. 시집 후반부에 시를 위한 아포리즘 형식으로 라는
목련이 진들 목련이 지는 것을 슬퍼하지 말자피었다 지는 것이 목련뿐이랴기쁨으로 피어나 눈물로 지는 것이어디 목련뿐이랴우리네 오월에는 목련보다더 희고 정갈한 순백의 영혼들이꽃잎처럼 떨어졌던 것을해마다 오월은 다시 오고겨우내 얼어붙었던 이 땅에 봄이 오면소리 없이 스러졌던 영혼들이흰빛 꽃잎이 되어우리네 가슴속에 또 하나의목련을 피우는 것을그것은기쁨처럼 환한 아
영혼의 눈 이태리 맹인가수의 노래를 듣는다. 눈먼 가수는 소리로 느티나무 속잎 틔우는 봄비를 보고 미세하게 가라앉는 꽃그늘도 본다. 바람 가는 길을 느리게 따라가거나 푸른 별들이 쉬어가는 샘가에서 생의 긴 그림자를 내려놓기도 한다. 그의 소리는 우주의 흙 냄새와 물 냄새를 뿜어낸다. 은방울꽃 하얀 종을 울린다. 붉은점모시나비 기린초 꿀을 빨게 한다. 금강소
하늘새은밀하고 정결한 시간잠시 일 접어두고하늘 명령 따라꽃나무 숲 바람 타고하늘 향기 노래하며강산이나 수풀이나세상 어느 곳이나상하 좌우 날개 짓하며님의 사랑 키우네-시집 『하늘새』에서*김재덕 시인 : 고려대학교 교육문제연구소 교수. 호주 시드니 포스트문학상, 매월당문학상. 연암문학 예술상. 시의 생명은 수사(metaphor)에 있다. 이 말은 설명을 피하고
봄은 고양이로다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포근한 봄졸음이 떠돌아라.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산수유가 꽃망울 터뜨리는 봄인가 싶더니 꽃샘 추위가 몰아쳐 어린 꽃잎들이 꽃길을 연다. 하르르 흩날리는
내 안의 숲미세먼지 때문에 눈이 아프다고 불평목도 아프다고 투덜투덜폐도 숨 막힌다고내 안에 숲을 만드니눈이 녹색 잎 보며 총총목과 폐에 맑은 공기가 슬슬 들어가고몸은 덩달아 덩실 덩실내 안의 숲이여시나브로 푸르러지거라 『조선문학』 2018년 3월호에서* 김형애 시인: 『조선문학』 시인상. 시집: 『시가 있는 페치카』, 펜문학상(수필), 연세의료원 행정실정(
부활의 새벽차마 믿어지지 않고 아무도 본 이 없었습니다이것이 당신의 뜻입니다총총한 별밤에 무덤은 비고먼뎃바람 같은 아스므레한 기류만이설핀 갈밭인양 머물러 있었습니다이것이 당신의 뜻입니다랍비여 부르던 어느 한 사람조차함께 해 드리질 않아밤새워 드리시는 기도에도 홀로이셨던겟세마니의 산상이며닭 울기 전 세 번을 모른다 했던당신 사랑하신 시몬 베드로며높으신 고독은
라일락 꽃꽃은 진종일 비에 젖어도향기는 젖지 않는다 빗방울 무게도 가누기 힘들어출렁 허리가 휘는 꽃의 오후 꽃은 하루 종일 비에 젖어도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빗물에 연보라 여린 빛이창백하게 흘러내릴 듯 순한 얼굴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꽃은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상반의 균형인 것을 수술 1 주 만에 첫 상차림은 미음 차원의 맨 죽살기위해 굶었다가 살기위해 먹는 이율배반삶이란 게 모순도 되고 합리도 되는 상반의 균형인 것을 *상반(相反)의 (均衡) : 아이러니를 우리말로 풀이한 서로 어긋나면서도 합리가 된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 - 『조선문학』18년 1월호에서 발췌 어화당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박진환 교수의 아호다.
첫 봄나물얼어붙었던 흙이 풀리는 이월 중순 양지바른 비탈언덕에 눈뜨는 생명 있다 아직도 메마른 잔디 사이로 하얀색 조그만 꽃을 피운 냉이와 다닥다닥 노란색 꽃을 피운 꽃다지와 자주색 동그란 꽃을 층층이 매단 광대나물 저 작은 봄나물들이 첫봄으로 푸르다 저 작은 것들이 지난 가을 싹을 틔워 몇 장의 작은 잎으로 땅에 찰싹 붙어 그 모진 삭풍의 겨울을 살아 넘
청보리밭에 오는 봄진눈깨비 날리던 겨울엔 생솔가지 군불 지핀 아랫목 뜨신 맛에 살았다 이불 홑청을 벗기듯 청보리밭 살얼음 녹이는 돌개울 물소리 비늘 돋친 바람에 실리는 씀바귀의 봄 몸살 은쟁기 보습에 뭉툭뭉툭 겨울이 잘려 나간다 젖은 나목의 가지마다 불을 켜는 눈망울들 오요요 기지개 켜는 버들개지 夢精하는 들녘 내 이제 들로 나가 더운 피 흐르는 흙살을 보
새해의 기도새해엔 서두르지 않게 하소서.가장 맑은 눈동자로 당신 가슴에서 물을 긷게 하소서. 기도하는 나무가 되어 새로운 몸짓의 새가 되어 높이 비상하며 영원을 노래하는 악기가 되게 하소서. 새해엔, 아아 가장 고독한 길을 가게 하소서. 당신이 별 사이를 흐르는 혜성으로 찬란히 뜨는 시간 나는 그 하늘 아래 아름다운 글을 쓰며 당신에게 바치는 시집을 준비하
독으로 살아남기숱한 날들을 눕지 못하고 앉아흙빛몸뚱이로 세월을 지켜내고여무진 모습으로 세월을 낚고 있다이름도 없는 것이 재사도 아닌 것이하늘이 준 겸손함과 삶의 의지 하나로 펑퍼짐한 자태로 한세상을 살아간다거처와 용도가 변하여도 자릴 지켜깨질지언정 굽히지 않으려는 자세로때때로 꿈도 꾸고 노래도 부르며장독대나 광 바닥이나 귀퉁이를 집 삼아오늘도 저녁별 돋아오
세한도 가는 길서리 덮인 기러기 죽지로그믐밤을 떠돌던 방황도오십령 고개부터는추사체로 뻗친 길이다천명이 일러주는 세한행歲寒行 그 길이다누구의 눈물로도 녹지 않는 얼음장 길을닳고 터진 알발로뜨겁게 녹여 가라신다매웁고도 아린 향기 자오록한 꽃진 흘려서자욱자욱 붉게붉게 뒤따르게 하라신다 시인의 눈은 특별하다. 그에겐 현미경이나 망원경이 필요하지 않다. 그런 기계나
나의 가난은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 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서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helli
자반고등어가난한 아버지가 가련한 아들을 껴안고 잠든 밤마른 이불과 따끈따끈한 요리를 꿈꾸며 잠든 밤큰 슬픔이 작은 슬픔을 껴안고 잠든 밤소금 같은 싸락눈이 신문지 갈피를 넘기며 염장을 지르는, 지하역의 겨울밤 삶은 어찌 보면 지구별에서 잠시 노숙하다가 떠나가는 것일 수도 있다. 사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종종 배회하다가 삶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 사람
고희먼 산이 보인다그 산이 또렷해졌다-시집 『꼭』에서*유자효: 서울대 불문과. 정지용문학상. 한국문학상 등 다수. SBS 이사. 『시와 시학』 주간 시는 다른 문학 장르와 달리 짧은 것이 특성이다. 이 작품은 더욱 그렇다. 이것은 응축을 통해 많은 의미를 담기 위함이다. 당연히 해석도 다양하게 된다. 시가 전달하려는 정답이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
투명에 대하여 23 _ 눈물이 섞여서까만아프리카 소녀 배고파서혹은두려워서우는 네 눈물이검은 색이 아니고투명하다함께 슬픈황인종의 울음내 눈물이노란색이 아니고투명하다눈물이 섞여서서로 껴안는하나가 되는 투명이다.러시아 문호 톨스토이는 “한 마디의 말로도 사람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라고 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하여 진실함과 단순함처럼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새벽 소묘어둠은 고요를 타고 내렸고바람은 느티나무 잎사귀 밑에숨어 있었네바람의 바람은언제나 자신을 숨기고고즈넉한 어둠을 즐기는 것그러나바람은 또한자신의 약점을 아에갈치 비늘이 느티나무 잎사귀에서 부서질 때끝내거절하지 못하는 달빛의 유혹바람이 느티나무 잎사귀 밑을 벗어나는 순간파르르바람의 날개짓은 시작되고느티나무 잎사귀는살랑살랑 춤을 추네느티나무 잎사귀는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