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37주년을 보내면서 우리 모두에게 시사한 바가 크다. 권력의 탐욕에 어두워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고 정권을 잡은 탐욕이 국가는 물론 가정도 개인도 얼마나 불행하게 만들었던가? 5.18 기념식에서 김소형씨의 애타는 슬픔을 함께 공유하며 눈시울이 붉어진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과 가슴으로 안아준 대통령의 그 모습은 온 국민 모두의 가슴이 미어지도록 감동을
국가는 이념적으로 정부와 구별된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정부는 국가라는 권위를 업고 사람을 다스린다. 그 점에서 “정부는 국가”, “짐이 국가”라고 한 제왕국가와는 전혀 다른 말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국가를 대표한다. 국가라는 이름을 독점, 국민 앞에 나선다. 국가는 사회계약에 의해 형성되었다. 성서는 왕권과 국가의 폐해에 대해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불의한 권력과 회개하지 못하는 백성들을 향해 회개를 촉구한 예언자들이 많다. 그 중에 한사람이 아모스이다. 아모스는 남쪽 유대나라 드고야에 사는 농민의 한사람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목자요, 들에서 무화과를 가꾸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암 7장 14절) 그는 유대와 이스라엘은 물론, 주변나라들의 악행을 보면서, 아파하는 농민이었던 것이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일본은 국내에 거주하는 자국민 20만명 대피령을 내려, 긴장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미국 트럼프와 김정은은 갈수록 날을 세우며, 선제공격을 공헌하고 있다. 중국은 싸드 배치의 보복으로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에 들어갔다.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긴장상태이다. 여기에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구속, 장미대선으로 인한
장미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각 정당 후보들은 저마다 수십여가지 공약을 내걸고, 차기 대통령이 본인이라고 자천하고 있다. 내로라하는 정당의 후보들부터 소싯적 방구깨나 꼈다는 사람들까지 무려 15명의 후보들이 등록을 마쳤다. 어떤 인물이든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바로 세워줄 것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하지만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붉은 빛깔의 고고한 동백을 닮았다고 하여 일명 ‘동백꽃 할머니’로 불리던 위안부 피해자 이순덕 할머니가 지난 4일 별세했다. 1918년생으로 최고령이었던 이순덕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38명만이 남았다. 할머니의 별세 소식에 가슴이 먹먹하면서도 한편으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이순덕 할머니는 생전에 일본 정부의 공식
영국의 허버트는 종교는 시간이 흐르면 타락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모든 갈등의 원인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사제들과 그들의 제의와 교리 때문이라고 했다.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아니 계시종교는 예외 없이 제도화되고, 그 과정에서 사제들 간에 권력투쟁이 일어났다. 세력을 장악한 자들은 교리를 만들어 반대세력을 제거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은 물론, 교리적
국가적으로도 교회적으로도 존경과 신뢰를 받는 제대로 된 지도자가 가물에 콩 나듯 귀한 시대다. 대통령이 비선 실세에 휘둘리다 탄핵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으며 교회 안에서도 수많은 지도자들이 돈과 윤리적인 문제에 결부돼 온갖 사회적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이런 세태 속에서 갈등과 혼란을 수습할 국가적 지도자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한국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3.1절 광화문 광장에선 태극기의 물결이 일렁였다. 98년 전 대한민국 독립을 외쳤던 선열들의 모습이 재현되는 듯 했다. 하지만 현실은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두 동강난 3.1절이었다. 경찰 버스를 결계 삼아 양측으로 갈린 현장에서 휘날리는 태극기는 결코 하나가 되지 못했다. 남북으로 분단된 현실과 마찬가지로, 서로 엇갈렸다. 목숨 바쳐 이 나라를 구했던 선
올해는 일제 강점기에 있던 우리나라 백성들이 일제의 지배에 항거해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을 벌인 지 98주년이 되는 해이다. 일제의 총칼에도 굴하지 않고, 독립을 외마디 외친 그들의 피와 땀이 있었기에 작금의 대한민국이 건재하다. 하지만 오늘날 3.1운동의 위상은 온데간데없이 나라가 또다시 위기에 처했다. 과거 일제의 탐욕에 의해 처절하게 짓밟혔던
예수님의 하나님나라운동은 한마디로 나눔과 섬김을 통한 사랑실천운동이다. 이 운동은 소외된 인간, 단절된 인간관계, 깨어진 공동체를 치유하는 운동이다. 가난의 현실을 넘어 창조자 하나님, 사랑하는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운동이다. 예수님은 죄인들과 더불어 공동체적 삶을 살면서, 부자들에게 가난한 사람들과 나눌 것을 촉구했다.예수님은 부자들이 가진 것을 팔아 가난
최원호 교수가 이란 제목의 책을 출판한다고 한다. 이 제목이 마음에 와 닿는다. 그것은 열등감과 패배주의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교육과정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집트에서 해방된 히브리인들은 곧장 약속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곧바로 들어가지 못했다. 40일이면 들어갈 수 있는 가나안 땅을
한국교회의 부흥운동을 통한 교회성장은 한마디로 자본주의 경제논리와 군사 문화적 승리주의가 결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성장론이 휩쓸고 지나간 현재의 한국기독교는 개인주의와 개별교회주의, 교파주의, 집단이기주의가 만연되어 있다. 이로 인해 한국교회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렸다. 성직자들은 가부장적인 파쇼주의와 경제논리에 의한 전투적 승리주의를
최근 안양의 모 교회가 또 다시 세습논란에 휘말리면서 한동안 잠잠하던 교회세습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대형교회들이 아들이니 사위에게 담임목사 자리를 대물림하면서 적지 않은 곤혹을 치렀다. 이에 따라 감리교나 예장 통합 교단은 총회 차원에서 세습방지법안을 마련하기도 했다.그럼에도 많은 목회자들은 세습 그 자체를 문제 삼는 것에 불편한
최순실 국정농락 사건으로 시국이 어지러운 가운데 맞이하는 새해는 여느 해보다 우울하고 답답하기 그지없다. 일개 개인이 대통령이라는 절대 권력의 뒤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헌정 사상 유래 없는 참사에 마음이 무겁다. 이 지경이 오기까지 기독교인들은 과연 무엇을 했는지 부끄러울 뿐이다.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보면 한국교회는 사회로부터 참 많이도 욕을 먹었다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로 오신 예수는 하나님의 사람의 몸을 입고 임마누엘로 오셨다. 성경은 예수그리스도의 나심 이라고 말한다. 예수의 나심이 아니고 그리스도라는 말이 덧붙여진다. 우리가 모두 아는바와 같이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부음을 받는자 라는 뜻이다. 히브리어로는 메시아이고 헬라어로는 그리스도로 표현한다. 모두가 같은 뜻이다. 기름 부음을 받는
내년도에는 대한민국이 조금은 살맛이 나는 세상으로 변화될 조짐이다. 그동안 사회적으로 가장 큰 문제였던 교육과 복지, 고용 등의 예산이 대폭 늘었기 때문이다. 내년도 예산안이 진통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무려 400조원의 예산이 각 분야별로 책정됐다. 모두 만족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몇몇 부분은 환영할만하다. 우선 일명 ‘최순실 예산’이 대폭 줄어들었다는
한국교회를 향한 사회적 지탄의 목소리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교회의 성도들의 수는 날이 갈수록 급격하게 줄고 있다. 교회를 향한 세상 사람들의 냉소와 비판, 탄식의 목소리도 크다. 이는 한국교회의 위기로 직결되고 있다. 선교와 전도의 문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교회의 대사회적 위상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빛과 소금의 맛은 잃은 지 오래다.이러한
종교개혁 499주년이다. 1년 앞으로 다가온 500주년 기념사업을 위해 각 연합기관을 비롯해 교단, 단체, 교회 등은 저마다 분주하게 이모양 저모양의 행사를 준비하느라고 만반의 채비를 갖췄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이벤트성 행사가 가져오는 의미가 클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종교개혁 500주년의 의미는 기념이 아니라, 실제로 변화됨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