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을 둔 어머니가 있었다. 그 중에 둘째 딸은 자폐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둘째가 어릴 적 자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바로 일을 그만두고, 둘째를 돌보며 지냈다. 그러느라 첫째 딸은 거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혼자 컸다. 첫째가 1등 성적표를 가지고 와도 둘째에게 신경 쓰느라 칭찬 한번 못 했고, 첫째가 실연을 당하고 온 줄도 모르고 둘째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진 지혜와 재물, 그리고 지식을 자랑한다. 하지만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거슬릴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어려움에 닥치게 하면,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것은 우리가 한 분 하나님만을 섬기고, 한분 예수님만을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성서는 모세의 자리에 앉은 종교지도자들과 위선적인 행동을, 하나는 바리새파들을 예로 들며, 제자들
송정림 작가의 글이 너무 좋아 이를 인용해 글을 싣는다.오늘도 집 현관문에는 또 누룽지가 한 봉지 걸려 있다. 이 녀석이 또 다녀갔다는 것을 느낀다. 며칠에 한 번씩 현관문에 누룽지를 걸어놓고 가는 친구, 벨을 누르면 괜히 귀찮을까 봐 살짝 누룽지만 놓고 가는 그 친구는 내가 잘 아는 지인의 군대 친구이다. 그 친구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취업 전선에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항일무장투쟁 하면 대부분 남성들의 전유물로 생각해 왔고, 생각하고 있다. 남성들 못지않게 항일무장투쟁 중심에서 여성들의 활약도 매우 컸다. 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항일무장투쟁의 중심에 있었던 영화 의 주인공인 남자현 선생을 새롭게 만나 본다. 남자현 선생은 1872년 12월 7일 안동에서 유학자 남정한과 어머니 이씨 사이
국가보훈처는 3.1만세운동 100주년인 2019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우리의 영원한 민족의 누나 유관순 열사를 선정했다. 3.1절하면 33인보다도 아우내 장터서 만세운동을 일으킨 한민족의 영원한 누나 유관순 열사를 기억한다. 또 그녀의 올케 조화벽 지사의 뜻도 함께 기린다. 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보훈처가 2019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유관순 열사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시편 37절4 ~ 6절 )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래서 인생은 탄생과 죽음사이의 선택이라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탄생과 죽음의 사이에서 늘 선택하
온 천하가 은혜와 축복이 가득해야할 시기에 세계 곳곳에서 안타까운 비보가 날아온다. 보다 낳은 삶을 위해 조국과 고향을 버리고, 부모와 함께 이웃 나라로 불법 입국하려던 아이가 굶주림에 지쳐 죽임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기아와 전쟁을 피해 지중해를 건너다가 죽임을 당하는 아이들의 참상이 끊이지를 않고 있다. 그것도 기독교국가에서 자유라는 이름 아래
오늘 아침 대한예수교장로회 보수측 소속된 김고현 목사가 희생에 대한 글을 보내왔다. 이 글을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좋은 글이어서 칼럼에 인용한다.어느 아름다운 교회 커플이 결혼을 했다. 행복한 결혼을 보내면서 부인이 임신을 했다. 10달이 지나 출산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 분신인 사내아이를 출산했다. 부인은 방금
정호승 시인의 한편의 시(詩)는 삭막한 세상에서 강팍해지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달래주며, 위로가 된다. 무엇보다도 정 시인의 시 ‘이런 사람’은 정치적·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슬프고도 따뜻한 시어들로 감동을 주기에 조용히 눈을 감고 음미해 본다."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나
예수님은 정화되어 맑은 귀를 가진 사람만이 복음을 받아드릴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 구원받은 자만이 나눌 수 있고, 섬길 수 있다. 이것은 성서의 경제관이고, 선교의 방향이다. 그리고 예언자적 전통과 예수님의 전통이다. 성서의 경제 질서는 아침 일찍 와서 8시간 일한 사람이나, 오후 늦게 와서 일한 사람이나, 똑 같이 대접을 받는 것이다.(마태복음 20장
그 누구보다도 보호를 받고, 사랑받아야 할 권리가 있는 특수학교 여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사의 성폭력사건은, 국민들부터 공분을 사고 있다. 강원도 태백의 한 특수학교 교사는 가장 힘없고 보호를 받아야 할 10대 여학생 2명을 수년간 성폭행을 했다는 소식에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이다. 특수학교 여학생 성폭행 사건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오늘 윤리적, 도
하나님의 나라는 혼자 가는 곳이 아니다. 너와 내가 함께 가야 한다. 남한민족만 가는 곳도 아니다. 남북한민족이 함께 하는 곳이다. 그리고 세계민족이 함께 가야 한다. 그것은 법의 보편적 가치인 정의와 평등, 평화와 사랑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가 이러한 성서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독선과 아집에 묻혀 분열과 갈등을 일삼고 있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목
어려서 들은 말 중에 공수래, 공수 거(公水 來 空手 去)라는 말이 기억난다.나는 손 주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이 말이 더욱 이말 이 실감이 난다 .태어날 때는 빈손으로 나오지만 점차 손 에 무엇인가 쥐려고 하는 욕망을 보게 된다.그러나 사람은 돌아 갈 때가 있는 법 그 순간에는 옷도 신발도 심지어집조차도 필요 없게 되어 진다. 또한 소탐대실(少貪 大失)
양봉을 하는 친척의 형이 청정지역에서 나오는 꿀을 저 렴하게 제공할 터이니 선교에 도움이 되도록 하라는 요청을 해와 인터넷에 올렸더니 종종 문의가 온다.시중에 많이 나와 있지만 산지에서 직접 구입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자세히 설명을 해도 직접 현장에 가봐야 하겠다는 고집을 부려 현지에 안내 하기도 한다.현장에서 나오는 실물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해 하
세기의 장사꾼 트럼프, 불안한 운전자 문재인, 희대의 재주꾼 김정은... 필자가 바라본 삼국 지도자의 모습이다. 실리 앞에서는 동맹도 없고 적도 없는 트럼프의 힘의 정치 앞에 희대의 재주꾼 김정은이 펼치는 묘기 정치가 판을 흔들고 있는데, 양자를 휘어잡을 만한 것이 없음에도 그냥 앞으로만 가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불안한 운전 정치가 이루는 협상이 지금 세계정
이스라엘은 1967년 6월 5일부터 단 6일 만에 세 나라 군대를 차례로 격파하고 대승을 거둠으로써 ‘6일 전쟁’이란 이름의 신화를 남겼다. 6일 전쟁은 여러모로 유명한 전쟁이다. 아랍연합국 인구의 40분의 1에 지나지 않는 250만명을 가진 이스라엘이 아랍연합국을 상대로 승리를 쟁취했다는 점에서 6일 전쟁은 세계 전쟁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었다.전쟁 결
한반도에 새로운 역사가 열렸다. 한민족이 서로를 향해 총칼을 겨누었던 슬픔 역사의 뒤안길에서 분단된 지 73년이 지난 오늘에야 비로소 진정한 평화의 훈풍이 불고 있다. 남과 북 두 정상이 맞잡은 두 손을 놓지 않고, 한민족으로서 평화의 시대,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에서 힘차게 미래를 향해 도약하길 비란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사
오늘 대한민국의 정치는 국민의 수준을 따라잡지를 못하고 있다. 여야는 개헌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논란을 벌여 왔고, 벌이고 있다. 개헌 여부를 논란하기 전에 정치인들은 이 나라의 법이 예수님 당시의 안식일 법처럼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 여야 정치인들은 법이 국민을 위한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 같지가 않다. 당리당략이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전운이 감돌던 한반도에 춘풍이 불어오는 것 같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의 예술단과 태권도 시범단이 남한을 다녀갔고, 남한의 예술단과 태권도 시범단이 북한을 다녀왔다. 남북한의 특사도 다녀갔고, 남한의 특사도 다녀왔다.4월27일 남북정상회담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다. 또한 북미정상회담도 다음달 예정돼 있다.
1920년대는 한국선교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고난주간에 과거 한국교회의 굴절된 역사를 본다. 당시 한국교회를 지도하던 선교사들은 한민족의 새로운 시각이었던 민족의식을 철저하게 봉쇄했다. 당시 남산에는 신사가 세워졌고, 사회주의 사상이 들어와 젊은 청년들이, 여기에 매혹되어 갔다. 당시 선교사들의 보고에 의하면, “청년들이 읽는 잡지들은 ‘진보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