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선교는 서양세력과 불가분했음에도, 선교사들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침략에 대해서는 정치 불간섭의 노선 혹은 중립정책을 처음부터 원칙으로 삼았다. 선교의 정치적 중립노선은 1897년 이래 미국에 의해서 요청되었다. 이것은 1912년 신민회와 관련된 105인 사건을 계기로 해서 영미선교부의 공식정책으로 천명되었다. 1912년 장로교 공의회는 정치불간섭을 공
개신교인은 1990년 1200만명 정점을 찍고, 지금은 700만명이라고 한다. 한국교회의 폭발적인 성장은 1960부터 1990년도까지이다. 역사적으로 한국교회가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동기는, 교회가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국민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을 때 성장했다는 사실. 다시 말해서 한국교회는,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소외되고, 떠돌
열광주의는 종교개혁 당시나, 오늘이나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또한 기독교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고등종교에서 존재한다. 종교적 열광주의는 종교가 다르다 해도, 그 내용과 특성에 있어서 유사한 점이 많다.열광주의는 내면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성향이 있다. 우선 이들의 신앙생활에서 추구하는 내면적 경향은 강한 탈세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세상적
2018년 새해가 되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사람은 어려운 이웃을 도울수 있는 힘을 하나님이 주신다. 옛날에 별난 할아버지가 낮잠을 자는데 장난꾸러기 손자 녀석이 할아버지 코밑에 식초를 발랐다. 할아버지는 잠에서 깨어 일어나서 방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소리쳤다. 다시 밖으로 나오더니 현관에서도 이상한 냄새가난다고 소리쳤다. 사실 할아버지
우리는 포도주가 떨어진 세상에 살고 있다. 한국교회는 중세교회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신년새해를 맞아 한국교회의 변화를 기대해 본다. 오늘 한국교회는 포도주가 떨어진 세상에 있는 것은 아닌지. 성서는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기적을 행하셨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행한 기적이며, 공생애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매섭게 몰아치는 한파는 옷깃을 더욱 여미게 만들고 있다. 온 누리에 평화가 깃든 성탄절이지만, 홀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 이웃들이 있어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바로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살다가 고독한 죽음에 이르는 이른바 ‘고독사’가 갈수록 증가추세에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고독사로 추정할 수 있는 ‘무연고 사망자 처리현황’분석 결과, 2012년
지난주 은 구약성경 한글판 최초번역자 알렉산더 알바트 피터스 목사를 소개했다. 대부분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누가 최초로 구약성경을 한글로 번역했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는다. 누구인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는 필자 역시 피터스 목사가 최초로 한극판 구약성경을 번역했다는 사실을 보도를 보고서야 알았다. 그만큼 한국 기독교역사에 대해서 무지하
5백년전에 일어난 루터의 종교개혁이 이제 한국교회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이제까지 한국교회는 신을 교회당 안에 가두어 놓고, 신을 자신의 입맛대로 이용하지 않았는가. 목회자와 교인들은 신학이니, 교회니 하는 인간학적인 것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교적이라고 말하는 재고품들을 쌓아 놓고, 신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없애 버렸다. 예수님은 “마
나라는 온통 시끄럽다. 한반도에서 제3차 세계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전운이 감돈다. 남북한은 민족의 종말이라도 고하듯 군비경쟁을 소리 높여 외친다. 미국을 비롯한 중국, 소련, 일본 등 주변국들은 적대적인 발언을 쏱아내며, 남북한 긴장을 고조시킨다. 구한말 한반도를 둘러싸고 주변 열강들의 대리 전쟁터가 된 수명을 다한 조선의 국운을 보는 듯 하
보수의 가치를 말하는 한국교회는 보수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생명운동을 비롯하여 하나님의 창조질서운동, 환경운동, 사랑실천운동 등을 시민단체 또는 진보적인 교회에 넘겨주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있어야 할 자리를 빼앗았다. 즉 돈이 신이 되어 버린 것이다. 목회자들의 입에서는 ‘돈’의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제 하나님나라의 척도와 믿음의 척도는 헌금의 액수로 판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이며, 달이다. 천사들은 예수님의 탄생의 의미가 하늘에는 영광, 땅에서는 고난당하며, 갈등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평화라고 노래했다. 바울도 그리스도 찬가에서 “그리스도는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사람과 같이 되었고, 자기를 낮추어 죽기까지 복종했다”(빌립보서 2장 7-8절)고 선언했다.예수님의 시간과 장소는 고난당하는
“민족의 어머니, 역사의 어머니 됨은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고 양육하는 생명의 어머니뿐만 아니라, 역사의 죄악과 투쟁에서의 희생자로서, 남성중심의 봉건사회에서, 역사의 시련과 미래에로 변혁의 밑바닥에서 고난 받은 자 됨에 있다. 역사의 자유와 구원은 바로 어머니의 자유와 구원이다. 어머니의 침묵의 역사는 역사의 구원(하나님나라)이 오는 그날에 드러난다. 이
교회는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한다. 예수님도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셨다. 한마디로 전국 방방곡곡에 세워진 교회들은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봉사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 사회적 약자들을 섬기고, 그들이 중심되는 정의로운 사회, 역동적인 봉사자가 되라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는 하나님이
예수님이 첫 번째로 물리치신 시험은 소유할수록 행복해진다는 물질주의이다. 물질이란 몸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예수님은 일용할 양식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공동체를 이루고자 했다.이것은 바벨탑의 문화를 주장하는 강자들이 물질을 독점하여 압도적인 다수인 떠돌이가 되어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가 없어서 허덕이고 있을 때, 이들을 가난에서 해방시키는
8월 15일은 일제에 빼앗겼던 국권을 회복한 의미 있는 날이다. 36년의 암흑 같은 일제 치하 속에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던 우리 민족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생명의 빛을 발하게 된 광복절이다. 칠흑같이 어둡던 민족의 앞길을 밝게 비추셔 빛을 되찾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목숨을 바쳐 희생한 우리 선열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그리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이언주 의원의 학교급식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비하발언을 감싸기라도 하듯, 이번에는 같은 당 장정숙 의원이 학교 급식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보수단체들의 기자회견을 주선해 논란이 되고 있다.국정교과서 폐지를 반대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도 ‘태극기 집회’에 적극 참가한 대표적 보수시민단체인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전학연) 등은 지난 17일
1920년대 영미 선교사들은 민족의 새로운 시각을 봉쇄했다. 대신 기독교 변호에 급급했다. 당시 선교사들은 사회주의 사상의 동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본국에 보낸 선교보고서에 의하면, “청년들이 읽는 잡지들은 ‘진보된’이념들 혹은 공산주의 이론들로 가득차 있다. 기독교 교리들이 문제가 되고 있으므로 한국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변호론’이다”고 보고했다.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밖으로부터 들어가는 것이 그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마가복음 7장15절)고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교육했다. 예수님의 이 선언은 법의 한계성, 그것의 절대성을 주장할 때에 올 위험을 투시한 것이라는 것이 신학자들의 견해이다. 예수님께서 가장 문제를 삼은 것은,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보수적인 한국교회가 오늘의 정치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그것은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최태민-최순실 국정농단 과정서 보수적인 한국교회가 보여준 행동은, 한국교회사에서도 그대로 관통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보수적인 선교사들에 의해서 한국선교가 시작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 장로교 해외선교부 총무 아서 브라운 박
모든 종교의 본질은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평화이며, 사랑이다. 기독교에 있어서 사랑과 평화, 그리고 정의의 가치는 그 무엇보다도 크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 유교에서 말하는 ‘인’,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 그것을 확대해 보면 궁극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평화’이다. 예수님은 태어났을 때를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고 성격화 했다.그런데 기